-초회 추천-

자화상

                                                                                                      이은주

 고개를 돌리다 무심결에 거울을 봤을 때, 문득 자신의 모습이 몹시 낯설게 느껴질 때가 더러 있다. 눈가에는 잔주름도 제법 자리잡혀 있고 펑퍼짐해진 얼굴은 윤곽조차 희미해져 참으로 개성 없이 생겼다. 그렇다고 그 동안 살아온 연륜이라도 배어 노련한 원숙미라도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런 건 더욱더 찾아볼 수가 없다.

여학교 시절에 함께 문학 서클을 하던 사람들의 모임에 거의 이십 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들뜨고 그때의 모습들이 하나둘 떠올라 즐겁게 그 날을 기다렸다.

특히 나는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선배 한 분을 뵙게 되면 꼭 용서받고 싶은 게 있었다. 정기적인 모임이 정해진 장소에서 있었지만, 게을렀던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빼먹기 일쑤였다. 때로는 연락도 없이 두어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그 선배는 별 말없이 기다려 주거나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반갑게 맞아주었다.

비단 나에게만 그랬던 게 아니라 모든 후배들에게 그런 자상함과 인내심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훗날 내가 살아오면서 누군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혹은 누구를 기다려야 할 때마다, 그 선배가 떠오르면서 뒤늦게 죄송한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의 내 게으름이 나중에까지 두고두고 미안했기 때문이다.

모임이 있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서로서로 옛 모습들을 기억해 내고는 반가워했다. 이십 년이나 지난 세월이건만 그래도 마음만은 조금도 나이를 먹지 않았는가 보다. 알 만한 사람들과 거의 인사를 끝마쳐 갈 때쯤 그 선배가 보였다. 반가움에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너무 오랜만이죠? 저 기억하시겠어요?”

“아! 네, 네.”

영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기에 상대방이 무안할까 봐 그쯤에서 비켜서서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했다. 한참이 지난 뒤 그 선배가 나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아마도 이제야 기억이 떠올랐는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 선배 앞에 가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 와는 사뭇 다른 반가운 표정이 얼굴 가득하다. 게다가 손까지 덥석 잡으며,

“아이고, 내가 늙었는기라. 자네를 못 알아봤으니.”

“괜찮아요.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렇지요.”

진짜로 별로 섭섭하지 않았다. 아니 흐른 세월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기억해준 게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를 하며 이십 년의 시간을 훌쩍 넘나들었다. 자연스레 옛날 이야기를 꺼내었고, 얘기 난 김에 나는 그 당시의 철없음을 죄송함으로 털어내었다. 선배는 별 걸 다 기억하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주었다. 예전의 자상하고 한없이 너그러웠던 모습 그대로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태도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홀가분해진 마음에 한마디 덧붙였다.

“선배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뭘, 그럴까 봐. 그나저나 아까는 자넬 영 몰라봤어. 도대체 여고생이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나타났으니…….”

“……….”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아줌마면 아줌마지 중년씩이나 보탤 건 또 뭐람. 그러는 자기는 배 불룩하고 머리 훌렁 벗겨진 줄 모르나?

남편의 두상은 아주 독특하게 생겼다. 그러다 보니 이발을 하고 나면 여간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지가 않는다. 작년에 이 동네에 이사를 와서 몇 군데 이용소엘 다녔지만 솜씨가 영 신통치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새로 생긴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남편이 머리를 자르는 동안 옆자리에 앉아 잡지책을 뒤적이고 있으니 녹차를 한 잔 가져다 준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나긋나긋함이 내겐 때로 머쓱스러울 때가 많다. 그 친절함이 사근사근한 대화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다음에는 아줌마도 머리 손질 좀 하세요.”

“네…….”

“고향이 이곳이 아닌가 봐요.”

“예, 제가 사투리가 좀 심하지요.”

겨우 꼬리가 달린 대꾸를 한 마디 하자마자,

“아줌마! 연변에서 오셨죠?”

“……….”

곁에서 다 듣고 있던 남편은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이고, 어벙벙해진 내 얼굴만 거울에 커다랗게 비쳤다. 순간 TV에서나 본 적 있는 조금은 촌스러운 듯한 60년대 우리 나라 아줌마가 떠오르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중년의 연변 아줌마’가 남이 보는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이다. 애써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새 내 자리는 훌쩍 세월을 옮겨 앉았던 것일까? 이제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세상 일에 초연한 듯한 여유로움을 배워야 할 때인 것이다. 무심한 눈빛과 매사 그저 별일 아닌 듯한 너그러운 마음씀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