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의 사색

                                                                                             金奎鍊

 산행은 귀로의 사색이 즐겁다.

오늘은 호거산(虎踞山)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있다.

아침에 오를 때는 우람한 산세며 첩첩한 산과 산이며 깊은 계곡이며 짙은 녹음과 파란 하늘이 내 가슴 깊숙한 곳을 움직이게 했다. 호거산에는 사리암(邪離庵)이 있고, 사리암은 운문사(雲門寺)에 달려 있는 암자다. 간간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을 뿐 사위는 적요 속에 묻혀 있었다.

칠월은 아침 햇볕도 따갑다. 그래도 산세를 보려고 그늘에서 벗어나 사방을 둘러보곤 했다. 계곡 건너 우뚝 솟은 학산은 금시라도 날개를 펴고 날아올 것만 같았다.

멀리 펼쳐진 수림의 녹색과 오늘 따라 파란 하늘의 청색이 마주치는 끝자락에 시선이 멎었다. 그 순간 느껴지는 묵시. 청·녹은 태초의 빛깔이요 생명의 빛깔이요 축복의 빛깔이렸다.

깊은 산중의 상큼한 기(氣)와 정(精)은 내 심혼까지 번지고 들어온 세속의 풍진을 연신 털며 씻어 주곤 했다.

한 줄기 실바람도 불지 않는다. 무거운 침묵은 계속 되고 있다. 수목이며 잡초며 산짐승과 미물까지도 입선(入禪)의 경지에 들어간 모양이다.

이제 부질없는 망념의 짐을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삿된 온갖 바람을 놓아버려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에 쫓겨 헐떡이던 숨결을 고르게 해야 할 것이다. 사리암은 간사할 사(邪)와 떠날 리(離)가 합쳐져 된 암자라 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아 모여들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근엄한 표정들이다. 간절한 소망을 간직한 듯 말이 없었다. 나도 그들과 섞여 연방 땀을 훔치며 산을 오르고 있다.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여승의 기도하는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려퍼졌다. 온 산의 수목들도 일제히 합장하여 기도하는 자세였다. 나도 숙연해져서 내면을 정돈하며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드디어 사리암에 다달았다. 호거산의 정상 부근이다. 더 이상 오를 산길이 없다. 사리암은 나반존자(那畔尊者) 기도처로 신통력이 있다는 소문이 나 있다. 나도 소원 하나 내밀어 볼까. 은근히 욕심이 머리를 들어올린다. 사리(邪離)를 하기엔 나는 아직도 공부가 크게 부족한가 보다.

천태각(天台閣)에 모셔진 나반존자에게 한가닥 향을 사르고 관음전에 들렸다. 예배를 드리며 한참 동안 하심(下心) 수련을 해봤다.

늘 한 생각이 열세이다.

문득 한 생각 깨치면 내가 곧 관음인데 관음이 앉아서 관음을 찾는다 했던가. 한 생각 고쳐 먹으면 백팔 번뇌가 백팔 은덕으로 바뀐다고 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은혜로움을 백팔 개만 찾아 낸다면 예토(穢土)가 정토(淨土)로 변한다고 했다. 그러면 인생 고해가 인생 낙해(樂海)로 승화되는 것은 아닐까.

법당 뜰에서 뜻밖에 옛 동료를 만났다. 서로의 쭈그러진 얼굴 모습을 보고 서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늙을 수가 있을까, 그 곱던 얼굴들이. 이십여 년만의 만남이었다. 세월의 풍상이 스쳐간 자리가 이토록 허망할 줄이야. 벌써 이승을 등진 옛 동료가 두 손으로 셈이 된다며 우리는 빈 웃음을 남기고 헤어졌다.

하산길에 그 친구의 쓸쓸한 표정이 좀체로 가시워지지 않았다. 허나 친구여, 무상함이 어찌 덧없음뿐이겠는가. 무상하기 때문에 변하고 변하기 때문에 아기가 청년이 되고 씨알이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지 않는가. 무상함이 곧 환희가 될 수도 있단다네.

내려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길섶에 앉아 숨을 돌린다. 숲에선 산새들이며 곤충들이며 벌레 떼들이 저마다 기기묘묘한 소리를 내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이제 방선(放禪)인가. 바람 소리도 들리고 수목들도 흔들리고 있다.

불현듯 노자의 언어들이 나무 그늘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다.

‘사람은 땅을 본받아야 하고, 땅은 하늘을 본받아야 하며, 하늘은 도를 본받아야 하고, 도는 자연을 본받아야 한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 유행가 가사처럼 번지고 있다.

자연은 함이 없으면서 하지 아니함이 없단다. 자연은 욕심도 거짓도 억지도 없고, 오직 순리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자연은 언제나 그렇게 있을 뿐 선악도 미추도 진위도 없는가 하면 고락도 영욕도 없다고 했다. 자연은 으뜸의 스승이기에 자연에서 배우라고 한다.

허나 자연 속에 온몸으로 뛰어들어 자세히 살펴보라. 얼마나 처절한 다툼과 살육과 대립이 숨어 있는가. 약자는 죽고 강자만 살아 남는 정글 법칙이 엄존하지 않는가.

사람 사는 세상은 아무런 힘없고 능력 없는 사람도 더불어 살아가는 인도의 법칙이 살아 있어야 하리라.

인도는 세 갈래의 뿌리를 가져야 되지 않을까. 하나는 인간 존엄이요, 또 하나는 온갖 생명에의 외경이요, 나머지 하나는 천하 만물이 나와 함께 동일체라는 신념이리라.

계곡에 내려와 바위에 앉아 있다. 오랜 가뭄으로 바위와 돌멩이들은 하얀 배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도 상류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피로가 온몸을 엄습해 온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십여 리를 걸어야 한다. 구도의 자세로 걷기로 했던 마음이 흔들린다. 또 나의 껍데기가 나를 유혹한 것이다.

껍데기에의 시봉.

이것이 내 삶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껍데기가 없으면 내가 존재할 집이 없기에 모든 것을 껍데기에 바쳐왔다.

끝없는 껍데기의 겉치레, 껍데기의 욕구. 이제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나의 참모습을 찾고 싶다. 껍데기의 꾀임을 뿌리치고 뚜벅뚜벅 걷고 싶다. 몇 굽이를 더 돌아 나가야 버스를 탈 수 있다.

때로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경계도 있음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