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

                                                                                                   金泰吉

 금아(琴兒) 선생의 수필 ‘우정’을 읽었을 때 문득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에게도 여자 친구가 있었던가? 아니면 지금은 있는가?’

대답은 ‘있다’ 아니면 ‘없다’로 명백하게 나와야 옳은 단순한 의문이다. 그러나 그 대답이 생각보다 어렵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만,  솔직하지 못한 내 양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 친구’라는 말의 모호하고 복잡한 의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산마을 앞집에 살던 언년은 나보다 한 살 위였다. 저는 ‘엄마’ 할 테니 나는 ‘아빠’ 하라고 당연한 것처럼 그 아이는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고, 그가 ‘불때 불때’ 하며 흙으로 지은 밥과 잡초로 담근 김치를 사금파리 그릇에 담은 밥상을 ‘맛있다 맛있다’ 하며 받아 먹었다.

그러나 언년을 나의 ‘여자 친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목에 때를 제대로 씻지 않은 언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내 나이 아직 7세가 되기 이전이었다. ‘소꿉친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도대체 ‘여자 친구’라는 말이 없던 시절이다. 설령 그 말이 있었다 하더라도 여자 친구를 갖기에는 너무나 비사교적인 내가 그런 말조차 없던 상황에서 그토록 다채로운 인간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산에 올라서 붕어를 낚는 기적에 가깝다.

우리 나라에서 ‘여자 친구’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내가 그 말에 익숙하게 된 것은 아마 청년기에서 장년기로 넘어가던 무렵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장년기 이후의 내 과거를 돌이켜본다. 돌이켜보아도 ‘있었다’ 또는 ‘없었다’고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여자 친구’라는 말의 의미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 살피고자 금아 선생의 ‘우정’을 다시 읽어 보았다. 다시 읽는 가운데 ‘연정과는 달리 우정은 담박하여 독점욕이 숨어 있지 않다’는 구절이 시선을 끌었다. 요컨대, 비록 억제된 상태로라도 마음 한구석에 독점욕이 숨어 있으면 ‘여자 친구’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완전한 성개방론자들은 독점욕을 갖지 않을 것이니 이성간의 우정을 나누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스스로 성개방론자라고 말하기 어려우니, 나는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역사가 찬양하는 성현이나 전설에 나오는 고승(高僧)의 경우에도 여자 친구를 갖기에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현이나 고승과는 더욱 거리가 머니, 이 경우도 나와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제 오직 한 가닥 길만이 남아 있다. 적당하게 늙어서 욕심이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기력이 쇠진한 사람들은 이성간의 우정을 나누기에 어려움이 적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자가 여자로 보일 정도의 감정은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마저 없어지면 이성 친구와 동성 친구를 구별하는 것조차 의미를 잃는다.

 

팔십 평생을 독신 생활로 일관한 칸트는 요리가 취미였고, 그의 요리 솜씨는 전문가에 가까웠다. 그는 말년의 외로움을 더는 방안으로서 날마다 만찬에 친구 몇 사람을 초대하였다. 사람을 바꾸어가며 여러 친구들을 교대로 초대했던 것이다. 다만 그 여러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만은 예외로 매일 초대를 받았다. 그 특별 대우를 받은 단골손님은 미모의 젊은 여자였기에 화젯거리가 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젊은 여자를 칸트는 언제나 자기의 바른편 옆자리에 앉혔다는 일화이다. 말년에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칸트가 잘 보이는 눈에서 가까운 자리에 여자 친구를 앉도록 한 것이다.

칸트는 원칙을 고수하며 자기에게 엄격했던 도덕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독신을 고집한 것은 독신주의 때문이 아니라 그의 몸이 허약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뼈아픈 실연의 체험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어쩌면 두 가지 원인이 결합하여 결혼을 단념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노년의 칸트와 그의 단골손님과의 사이는 연인의 사이가 아니라 친구의 사이였다고 보는 심증이 굳어진다.

 

노년의 칸트와 그의 여자 손님과의 일화는 노년의 신사가 여자 친구와 담박하고 욕심 없는 우정을 나눈 모범적 사례라고 생각된다. 늙음으로 인하여 욕심이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기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이 도리어 깨끗한 우정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여기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사람은 누구나 늙게 마련이고, 노년에도 노년 나름의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끝이 좋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