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돌

                                                                                            변해명

 부다성(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으로 오르는 언덕길은 옛날에 돌을 깔아 만든 길인 듯 네모난 작은 검은 돌 블록들이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아기 손바닥만한 돌들이 표면이 닳아서 마치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듯 반들거렸고, 디디면 미끄러워 발에 힘이 갔다.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보다 딱딱하지만 돌의 감촉이 발바닥으로 전달되어 와서 걷는 기분이 좋았다.

내 앞에서 정장을 한 여인이 부지런히 걸어가다 구두 굽이 돌 블록 사이에 끼어 넘어지려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자칫 발목을 삘뻔한  몸짓이다. 그 바람에 구두가 캐어 올린 돌 블록 하나가 길 위로 올라와 뒤에서 가던 내 발에 차였다.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돌, 긴 세월 동안 그 자리에 묻혀 사람들 발길에 닦이고 깎이면서 닳아 얇아지고 윤이 나서 보석처럼 빛나는 돌이 마치 종잇장처럼 가벼워진 몸짓으로 길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몇 번이고 내 발끝에 채이면서 무게를 버리고 한 마리 새가 되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팔짝팔짝 자리를 바꾸는 그 돌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면 돌은 또 하나의 생명을 얻게 되리라.

집어들면 체온이 전달되어 올 것만 같은 까만 아름다운 돌, 하나의 돌덩이가 그토록 부드럽고 가벼워진 평면의 모습을 지닌 것은 처음 보았다. 그렇게 두께가 얇아지기까지 겪었을 돌의 세월을 생각해 보면 역사의 아득한 근원으로 거슬러 오를 것도 같았다. 내 발끝에서 살아나 저만치 날아가 앉은 돌. 그 돌은 내게 이미 돌이 아니었다.

로마를 여행할 때였다. 길바닥에 깔았던 돌 블록을 걷어놓고 공사를 하느라 분주한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그때 길바닥에서 빼어놓은 돌 블록은 가로 세로 10㎝쯤의 정사각형이고, 깊이가 50㎝쯤 되어 보이는 돌기둥으로 보였는데, 그 돌들을 다시 활용하여 인도와 차도에 촘촘하게 박아서(깔아서) 포장하는 것을 보았다. 돌을 포장도로용으로 사용해 온 그들의 실용성과 견고함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2천 년을 그렇게 사용해 왔음에도 변하지 않은, 조상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는 현대 로마인의 삶의 태도가 존경스럽기까지 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세계 중심의 도시를 일구어 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동적이기도 했었다. 역사로 포장하는 로마의 길이 그래서 서구의 모든 거리로 파급되고, 서구의 거리는 로마의 돌길로 연결되게 되었는지 모른다.

지금 내 발에 차이던 작은 돌도 처음은 로마의 길에서 보던 포장용 돌 블록처럼 깊이를 지닌 돌이었을 것이다. 그 돌이 어떻게 한 장 종이처럼 얇아져 있을 수 있는지. 수천 년 전 누군가 밟고 갔을 그 흔적 위에 오늘 구두를 신은 한 여인이 지나가기까지, 그리고 이방인인 내게 차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발길들이 탁마의 고리로 작용했을까?

그래서 그 돌은 드디어 불변이란 스스로의 속성을 접고 변화의 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무게, 이제 돌은 돌이 아니라 바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돌을 집어 허공으로 힘껏 날려보냈다.

성채를 따라 옛 요새로 가는 층계를 오르며 나는 그 돌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돌은 청동 기마상 앞에 날아와 있었다. 이 나라가 시작될 즈음 전쟁을 지휘하던 그 나라 왕의 당당한 모습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그 앞에 나비처럼 날아와 있었다. 그 왕이 살았던 날의 찬란함이 낯선 나그네에겐 거리에 깔렸던 한 점 돌 조각만도 못한 무게로 다가왔다. 덧없고 덧없는 것, 모두가 바람인 것을.

어느 이른 봄, 내가 찾아간 우리 나라 안동 하회마을의 길은 해토 무렵의 질퍽거리는 흙탕길로 발이 빠졌었다. 할아버지가 태어났고, 살다 세상을 떠났고, 또 아버지가 태어나고 거기서 자신이 태어나 유년을 보낼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찾아가는 고가(古家) 마을의 길은 옛 할아버지 적 길 그대로였다. 길도 아니요 들판도 아니요 그저 사람이 다녀 열린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마을이 열리고, 고가 몇 채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 길을 질퍽거리며 고향을 찾아온 사람처럼 가슴 설레는 나를 누군가 맞아줄 것만 같아 마음조였지만 나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려 보아도 고개를 내미는 사람조차 없었다. 상청만 놓여 있는 방안의 썰렁함처럼 닫힌 문 찢겨진 문풍지 사이로 바람만 오갔다. 가래 끓는 소리처럼 음습하게 따라붙던 바람 소리. 진흙발로 되돌아서야 했던 그 아쉽고 허전했던 기억이 왜 이 성채에서 떠오르는 것이었을까?

자갈 하나 깔리지 않았던 황톳길은 끈적끈적 내 발의 자국을 찍어냈고, 내 마음의 빗물이 걷히면 흔적도 남겨주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 길로 지나가던 바람이 지금껏 나를 감싸고 있어서일까?

어디에서고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하회마을 사람들, 일찍이 돌조차 깔리지 않았던 그 길을 가던 사람들 자신이 가면(假面) 뒤에 감추고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나는 그것을 모른 채 이국의 성채 앞에 서 있다.

사람의 흔적들로 자신을 탁마해 온 돌은 강을 건너면서 비로소 하회마을의 무심한 진흙길과 만나게 되리라.

나는 다뉴브 강을 굽어보며 다시 한 번 돌을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