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박한 여행자

                                                                                                   홍혜랑

 무엇을 위하여 어디로 떠나는 순례인지 생각할 것도 없이 여행이라면 무턱대고 떠나고 보려는 나의 여행거식증은 이런저런 일상사에 부딪쳐 그 꿈이 산산히 부서질 때가 허다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나는 ‘떠나야지, 떠나야지’를 수도 없이 되뇌이며 살고 있다.

아메리카 땅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여행에서부터 김삿갓의 방랑 여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인류의 여행을 알고 있지만, 진실로 한 여행자의 삶을 바꾸어 놓고 급기야 한 시대의 이름까지 바꾸어 놓은 여행을 나는 괴테가 쓴 그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보았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싶은 괴테의 소망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나의 유일한 소망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탈리아를 한 번 여행하는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익시온(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불수레에 끌려가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처럼 바퀴에 매달려 로마로 끌려간다 해도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겠다’고 했을까. 당시 문화적 최상류 층에 속했고, 지위와 부를 모두 갖춘 괴테가 이처럼 간절하게 이탈리아 여행을 염원한 걸 보면 그 시대의 이탈리아가 독일에서 얼마나 먼 나라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이야 아시아의 끝에 있는 우리 나라의 보통 사람도 매일 수도 없이 떠나는 로마 관광이 아닌가. 10시간 남짓이면 로마를 이웃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오늘의 우리가 천신만고를 각오하고 마차 여행을 감행한 그 옛날의 괴테만큼 로마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괴테의 나이 38세 때, 그러니까 1786년 드디어 그처럼 애타게 소망하던 이탈리아 여행이 이루어진다. 괴테가 독일 땅을 떠나던 때의 독일 사회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시대를 짓누르고 있던 합리성과 도덕성에 식상한 젊은이들이 모든 전통적인 것에 반항하여 격정을 불태우던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독일문학사는 이 시대를 글자 그대로 ‘질풍노도’라고 이름지었다. 이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대표작이 저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는 10여 년 동안 바이마르에서 국가의 관리직을 맡고 있는 동안 줄곧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공직의 사슬을 끊고 싶어 했다. 드디어 조용히 독일을 탈출하여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 탈출은 후에 독일 문학사를 두 시대로 나누는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

로마에 도착한 괴테는 많은 유적들을 만나면서 그 놀라움과 기쁨을 이렇게 담아냈다.

‘로마에 와보니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개념들은 마치 어릴 적에 신던 신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내부로부터 개조하여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작용이 계속되고 있다.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될수록 더욱 즐겁다.’

자기 부정의 순간이 어찌 괴테 같은 위인에게만 있을까. 우리네 보통 사람에게도 어제까지의 삶을 몽땅 없었던 것으로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도주의 충동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괴테가 로마에서 체험한 자기 부정은 이런 절망과 탄식의 자기 도피가 아니라 전광처럼 번득이는 환희와 놀라움의 자기 발견인 것이다.

특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올려다보던 괴테는 “자연조차도 이 거장만큼의 취향을 갖지 못할 것같다”고 감탄했다. 작품에서 받은 ‘창조’의 영감이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면 몸소 천지를 창조하신 시원적 창조주의 취향보다 이 거장의 취향을 더 우위에 놓고 싶었을까. 자연이란 말이 품고 있는 불가사의한 완벽성을 괴테가 모를 리 없으련만.

그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만나면서 작품의 눈높이대로 자신이 고양되고 있다고 기뻐했다. 자연의 세계는 언제나 인간보다 품위 있게 마련이다. 인간의 영혼을 거쳐 나오는 작품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도 자연을 능가할 수는 없는 법. 예술가의 궁극적 소망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예술가의 노력과 재능이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결코 인간의 작품이 자연과 같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줄 리 없다. 다만 인간에게 자연의 품위를 느낄 수 있는 안목을 부여하신 창조주의 배려가 절묘하지 않은가.

여행에서 돌아온 괴테는 자신이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에 독일 땅에서 품고 있던 저항의식은 기껏해야 시대정신이라는 상황적 자극에 대한 인위적 반동(反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더 높고 더 넓은 본질의 세계에서 바라보면 한 시대의 시대정신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엔 이제 질풍노도의 파토스 대신 자연을 향한 에토스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를 ‘독일 고전주의’라고 부를 만큼 괴테는 다시 태어났고, 그의 시대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 시대의 시대정신은 고사하고 고작해야 하루하루의 반복되는 일상사 속에서 상처받고 근심하는 우리네의 삶에도 구원의 여행은 있을 것인가.

당시 로마를 대충 보고 떠나는 경박한 여행자를 보고 괴테는 저으기 놀랐다고 쓰고 있다. 30여 년 전 뜻하지 않게 로마를 며칠 볼 수 있었던 나도 경박한 여행자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경박한 여행자도 하루 아침에 로마에서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태어난 이 땅도 로마보다는 좀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여행지일 따름이다. 이 특수한 장기 체류의 여행지에서는 역사라는 시간의 열차까지도 내 앞을 쉼없이 달려가면서 나를 이중의 ‘서 있는 여행자’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생애 전체가 여행이거늘 어찌 로마 땅에만 경박한 여행자가 따로 있으리.

괴테가 미켈란젤로의 작품 앞에서 체험한 돈오(頓悟)의 파격을 흉내낼 수 없다는 걸 똑똑히 알면서도 나의 ‘떠나야지’ 증후군은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다.

 

 

 

홍혜랑

한글문학으로 등단.

경희대학교 독일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