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길

                                                                                                  김혜숙

 가지고 놀 장남감이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에 동네 아이들이 즐겨 갖고 놀았던 것 중에 조개껍질이 있었다. 그때에는 지금보다도 조개가 흔했던지 많이들 조개를 넣고 국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침 상에서 버려지는 조개 중 제법 큰 놈을 골라 손에 쥐고 우리는 양지바른 곳에 모여 조개 머리부분 불룩 나온 곳을 벽에 대고 물질러 구멍을 내었다. 그렇게 구멍을 낸 조개로 무슨 놀이를 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두툼한 조개껍질이 분말로 갈리면서 얇아지다가 급기야 구멍이 뚫어지는 순간의 느낌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것은 뻥 뚫어지는 순간의 급작스러움에서 오는 약간의 당혹감과 일을 마쳤다는 나름의 성취감이 뒤섞인 묘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점점 닳아 얇아지고 있는 나의 남은 시간에 대한 자각과 연결되면서 점점 더 선명해졌다.

어린 시절 시간은 써도 써도 아까울 것 없이 무진장 남아도는 것이었다. 마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에 떠다니는 뭉게구름, 조개구름, 새털구름 따라 둥실 떠서 온갖 공상을 다하고 나도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길었다.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미래는 너무 멀리에 있었다. 시골 여름 한낮의 정적에 갇힌 것처럼 마디게 가는 현재 안에 갇혀 버둥거렸던 시절, 좋았던 순간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이 나는 그렇게 믿었다. 지난 시간들은 따라서 아쉬워할 것이 없었다. 문제는 멈춰버린 것 같은 현재였다. 갈 길은 먼데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헛바퀴만 돌아가는 자전거에 탄 사람처럼 조바심치며 아직 충분히 부풀지 않은 작은 가슴이 어느 아름다운 외국 여배우의 가슴마냥 봉실 솟아오르기를 고대했다.

나의 작은 방에 누워 그렇게 조바심치며 왔다갔다 했던 숱하게 많은 길들은 이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헛바퀴만 돌아가는 줄 알았던 자전거는 어느 새 낯선 길을 질주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로 해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많은 것들은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다. 빠르게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모든 것들은 아쉬움만 남긴 채 지나가 버리고 멀리 있는 줄 여겼던 것들이 어느 새 바로 옆에 와 있었다. 지나간 모든 것들, 심지어는 현재의 것들까지 아쉽고 미래는 너무 가까이에 있다.

하릴없이 부풀었던 가슴은 다시 작아졌지만 하얀 뭉게구름 떠다니는 그곳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가 없다. 아이들과 조개껍질 장난을 했던 인사동 골목은 음식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찾아가 본 옛집은 카페인지 술집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있었고, 높은 축대라고 생각했던 옛 집의 축대는 겨우 몇십 센티미터에 불과했다. 집 옆을 살피며 “여기 좁은 골목이 있었는데”라고 혼자 중얼거리시던 어머니가 가리키는 좁은 골목은 어른 어깨 넓이 정도의 틈새에 불과했다. 어찌하여 이 모든 것들이 스러지고 말면 그뿐인 것임을 왜 진작 그때에 알지 못했던 것일까? 알았더라면 마루에 누워 떠다니는 구름이나 보며 게으름 부리지는 않았을 텐데. 잠을 아껴서라도 세상의 고전이란 고전은 다 찾아 읽었을 것이고, 모든 위대한 이들의 이야기를 샅샅이 뒤져 읽었을 것이며, 세상 곳곳을 여행다니며 많은 풍물과 사람들을 접해 보았을 텐데.

그러나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어, 날 흐린 오늘도 빈둥거리며 하늘을 본다. 구멍이 날 줄 뻔히 알면서도 막상 구멍이 생기면 흠칫 놀라고 마는 어린 날의 어리숙함은 여전히 남아, 구멍 뚫리지 않고 건재한 어제와 오늘에 기대어 어쩌면 내 조개껍질은 너무 두꺼워 구멍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믿음을 잠시 가져도 본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웃고 떠들며 지나간다. 앞은 보이지 않고 훤히 보이는 뒤로는 갈 길이 없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자꾸 서성이게 된다.

 

 

 

김혜숙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현재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