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행

                                                                                     정태헌

 그들을 만난 것을 산비탈을 오를 무렵이다. 두 사람은 너럭바위에 앉아 땀을 들이고 있었다. 가까이 이르자 그들은 이내 털고 일어선다. 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숲길 양쪽엔 유월의 신록이 짙푸르다. 낙엽 쌓인 부드러운 흙길을 밟는 촉감이 그만이다. 입산객들의 왕래가 잦은 저쪽 길보다 인적이 뜨음하고 적요한 이 산길이 더 마음을 끈다. 솔향으로 기분이 상쾌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오늘은 야트막한 구난봉(峯)에라도 오르리라 작정하고 혼자 나선 길이다.

단출한 차림들이다. 산길은 꽉 낀 옷보다는 헐렁하고 가벼운 옷차림이 제격이다. 또 청산에 들어가는데 격식은 어설궂다. 늙숙한 할머니가 앞장을 서고 다음은 까까머리 청년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뒤따른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일행이 된 셈이다.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으며 걷는다. 한데 청년의 말은 어둔하고 뜨덤뜨덤하다.

“할머~이, 이~거 뭐~여?”

“오냐, 나무가 잠을 잔단다.”

연전에 태풍으로 쓰러진 상수리나무를 가리키며 묻고 답한다. 할머니는 조용하고 나슨한 목소리다. 마음을 숲속에 풀어놓고 유유자적하게 오래도록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저같은 목소리가 되는 걸까. 곳곳에 소나무들도 뿌리 뽑혀 누워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도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이처럼 무력한가 보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이 이상하게도 조화를 이룬다.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구난봉으로 오르는 길이요, 왼편은 창창울울한 숲길이다. 왼편 길은 기웃거리기만 했던 미지의 길이다. 오른쪽 길을 접어드는 순간,

“이쪽도 좋은 길이라우.”

할머니는 동행을 요청한다. 청년도 빨간 등산모를 손에 들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끌림도 있었지만, 왠지 동행 요구를 거절하고 싶지가 않았다. 청산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곳이라 했던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흰나비가 길라잡이를 하듯 길섶에서 맴을 돈다.

동편 산마루 위로 먹장구름이 흐른다. 또 비가 올 모양인가.

“찌찌 찌찌 찌르릉.”

산새가 지척에서 우짖는다. 여전히 청년은 묻고 할머니는 연신 대답을 한다.

“할머~이 할머~이, 이~거 뭐~어?”

“오냐 오냐, 복분자여.”

근방에 다문다문 산딸기가 널려 있다. 청년은 따먹기에 여념이 없다. 할머니는 곧 비가 올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도 풀섶에 앉는다. 한 줄기 바람이 인다. 숲에 파도가 이는 건 바다로 나들이갔던 바람 한 떼가 숲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저편의 청년을 바라보며 말문을 연다.

“산밑 각화 마을에 사는 놈이라우. 달포 전부터 날마다 산길을 같이 오르는 동무가 됐어. 스무 살 남짓 됐는데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상해 저렇게 백치가 됐다나. 옛날의 기억을 잊어버린 천치가 됐다우. 나이와 이름도 모르는… 날마다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앞에서 해죽거리며 맴돌고 있기에 산동무삼아 동행한다우.”

할머니는 팔순의 나이답지 않게 다부지고 정갈하다. 문할머니라 불러 달란다. 그리고 저 빨간 모자를 구해 준 사람은 문할머니다. 까까머리 뒤통수의 심한 수술자국이 흉해 등산모를 사 주었더니 저렇게 쓰지 않고 들고만 다닌다는 게다. 이름은 그냥 섭이라 부르기로 했단다.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지만 묻지 않았다.

섭이는 보이지 않는다. 복분자 따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계곡에서 푸드등 푸드등 산꿩 뛰는 소리가 기운차게 들려온다. 섭이가 돌팔매질이라도 했을까.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문할머니는 섭이를 찾는다. 덤불 속에서 벌쭉 웃으며 그가 나타난다. 섭이는 문할머니와 나에게 빨간 모자 속에 든 산딸기를 한 줌씩 집어준다. 이젠 섭이와도 무언중에 교분을 튼 셈이다. 빗방울이 편백 잎을 두들기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린다.

섭이는 굵어지는 빗줄기를 손바닥으로 받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문할머니도 느긋한 표정이다. 조급하게 구는 사람은 나뿐, 두 사람은 태연하다. 안절부절 못하는 내가 우스꽝스럽다. 문할머니는 다음 능선까지 가려 했는데 아쉽다는 표정이다.

“할머~이 할머~이, 이~거 뭐~여?”

“오냐 오냐 뻐꾸기 소리여.”

섭이와 할머니는 다정한 연인 같다. 간간이 빗속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가 숲속에 일렁인다.

작달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후득후득 나뭇잎을 두들기는 빗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한 줄로 서서 우린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섭이가 앞장서고, 다음은 나, 마지막이 문할머니다.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섭이의 목소리는 커지고, 대답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간다.

산어귀 마을 정자나무에 도착했을 때 우린 비에 흠뻑 젖었다.

섭이는 나를 보며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인다. 그리고 누런 이를 내보이면서 마을 쪽으로 달린다. 내일도 네 시에 만나자는 신호라며 문할머니는 언제든 동행하려면 이곳 정자나무에서 만나잔다. 이제 섭이도 문할머니도 나를 산동무로 끼워주려는 모양이다. 뜻밖에 오늘은 행운의 날이다. 청산에서 두 사람과 동행한 것이 마냥 하뭇하다. 한데 문할머니는 왜 그 숲길로 동행을 권유했을까.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뒤돌아본다.

산허리엔 문할머니와 섭이의 목소리가 빗속에서 아직도 도란도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