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과 파리

                                                                                                    박철호

 교육을 통하여 진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생활 속에서 그대로 인정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 파리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 파리는 해충이라고 배웠다. 파리에는 집파리, 똥파리 등 종류도 많다. 그런 파리들이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아도 나는 파리를 언제나 불결하고 백해무익한 존재로만 여겼다. 집안에서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면 즉각 파리채를 휘둘러댔고, 바깥 음식점에서는 파리 때문에 공연히 그 집의 위생이며 음식 맛까지 트집을 잡곤 했다. 그런데 요즘 내게 파리는 익충이다. 그 동안 익충의 정상을 굳건히 지켜온 벌보다는 내게 파리가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연인즉은 이렇다.

나는 요즘 메밀의 신품종을 육성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메밀은 충매로 수분이 되어 종자가 생기는 식물이므로 수분 매개충이 꼭 필요하다. 더군다나 메밀꽃에는 긴 암술을 갖는 꽃(장주화)과 짧은 암술을 갖는 꽃(단주화)이 따로 있어서 장주화는 단주화 수술의 꽃가루로, 단주화는 장주화 수술의 꽃가루로 수분이 되어야만 제대로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것을 적법수분이라고 하는데, 요즘 이 작업을 파리가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육종 계통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 계통별로 망을 씌우고 그 안에 서너 마리의 파리를 잡아넣었다. 그랬더니 그 안에서 파리들이 부지런히 이 꽃 저 꽃을 옮겨다니며 수분을 시켜주었다. 처음에는 벌을 잡아넣었었다. 그런데 벌은 아예 꽃에는 앉지도 않고 망에 착 달라붙어서 몸부림치기만 하다가 하루도 못 가서 죽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재수 없게 붙잡혀 온 데 대한 울분을 삭이지 못한데다 망을 빠져 나가려고 애써 보았지만 여의치 않자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결국 화병으로 죽은 것 같다. 그러니 수분은커녕 애꿎은 생명만 죽인 셈이 되었다. 메밀밭에서는 그렇게 윙윙대며 잘도 수분을 시켜주던 벌이 망 속에 갇히고 나서는 그야말로 ‘파리만도 못한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파리는 달랐다. 망 속에서 며칠 동안을 살면서 특유의 손놀림으로 꽃마다 수분을 시켜주어 많은 종자를 생기게 해주는 것이다. 사람이 직접 붓을 들고 인공 교배를 하려면 며칠을 해도 다 못할 그렇게 많은 일을 순식간에 거뜬히 해치우니 내게는 이 파리가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정말 ‘쓸만한 일꾼’인 셈이다. 문득 어렸을 때 읽은 동화 ‘개미와 베짱이’가 생각난다. 열심히 일하는 파리는 개미에, 도망치려다 죽은 벌은 베짱이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 가끔씩 포충망을 들고 밭 주변을 돌며 똥파리가 아닌 일파리를 잡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망 안에 파리를 잡아넣고 날마다 새로 핀 꽃에 얼마나 종자가 생기는지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장마철 무더위마저 잊게 해준다. 올 여름 나의 메밀 육종 작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파리가 그처럼 고마울 수가 없으니 이제 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충에서 익충으로 바꿔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저질렀던 파리에 대한 살상도 속죄하고, 앞으로는 파리를 잡지 말고 쫓아버리는 정도로 그쳐야 할 것 같다.

이처럼 파리의 효용성을 직접 체험을 통해 인식하고 보니 이제까지 잘 느끼지 못했던 삶의 교훈마저 터득하게 된다. 나는 지금 망 속의 벌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파리로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이다.

현재의 내 삶은 세상이란 망 속에서 과연 누군가의 성숙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며 망 속의 파리에 자신을 투영해 본다. 행여나 망 속의 벌처럼 남과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고 주어진 여건과 환경을 거부하고 요구되는 시대적 소명을 외면한 채 자기 본위로만 살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게 무모한 고집과 오만한 투쟁 끝에 결국은 자멸하고 마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 과거와 현재의 나의 삶을 한 꺼풀씩 벗겨보는 것이다.

내 딴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는 어떤 정해진 틀에 박혀 하나밖에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오만한 사람으로 비쳐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하찮게 보여지는 어떤 미물조차도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으리라는 유연한 사고와 여유 있는 인식이 필요하다.

퇴근길에 들른 메밀밭에서 메밀꽃에 앉은 파리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묵은 변명을 헤쳐보는데 어디선가 “사람이 파리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일갈이 귀청을 때린다.

 

 

 

박철호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현 강원대 식물응용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