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柳致環)의

'쫓겨난 아담'

 

일  시 : 2000년 6월 17일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21명

사  회 : 허세욱

정  리 : 권일주

 

사회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통권 제21호, 2000년 가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회의 대상 작품은 시인 유치환 님의 ‘쫓겨난 아담’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김상용, 이상, 정지용, 조지훈 등 작고(作故) 시인들의 수필을 대상에 올리고 다각적인 합평을 한 바 있습니다. 오늘도 역시 시인, 청마(靑馬) 유치환 님의 수필을 들고 합평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청마의 생애와 학력, 경력, 문단 활동 등을 중요한 것만 골라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청마는 1908년 거제시 둔덕에서 한 한의(韓醫)의 차남으로 출생했으며,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극작가 유치진 선생이 그의 형님입니다. 청마는 세 살 때 통영으로 이사를 나왔는데 교직을 위해서 대구, 경주, 부산 등지에서 생활한 것 외에 거의 평생을 통영에서 살았습니다. 학력을 보면 비교적 단순합니다. 통영초등학교를 거쳐서 일본의 풍산중학교에 입학했다가 귀국하여 동래고보를 졸업했으며, 연전(延專) 문과를 1년 만에 중퇴했습니다. 그 뒤에 잠시 사진 학원에 재학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학력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의 경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직의 생애입니다. 통영여중 교사를 시작으로 경남 안의중학, 경주여고, 부산남여상의 교장으로 이십 년 동안을 교직에 종사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력은 시인으로서의 생애인데, 비록 한때 평양에서 사진관을 경영한 적도 있고, 연쇄점 서기, 농장 관리인 등을 한 적도 있습니다만 문단 경력이 매우 다양합니다.

청마는 1931년에 <문예 월간>지에 시 ‘정적’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1939년 최초의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발간한 뒤에 평생 12권의 시집을 냈으며, 청년문학가협회 회장, 예총 부산지부장, 문인 구국대 대원, 예술원 회원 등을 지냈고, 서울시 문화상, 예술원상, 부산시 문화상 등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분은 시인이었지만 시에 못지않게 수필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처녀 수필집은 1953년에 나온 『예루살렘의 닭』이며, 1959년에 『동방의 느티』, 1963년에 『나는 고독하지 않다』가 정식 수필집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그 후 1976년에 이영도, 최계락 씨가 편찬한 서간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가 있습니다. 또 같은 해인 1976년에 열음사에서 청마의 시와 산문집을 냈는데, 여기에는 앞에 나온 것들에 편입되지 않고 새로 발굴한 것만 100여 편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합평을 할 수필 ‘쫓겨난 아담’은 1959년에서 1963년 사이, 이분의 나이 52세에서 56세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며, 『나는 고독하지 않다』라는 수필집에 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의 토론을 위해서 시인이며 수필가이신 유경환 선생님, 수필 평론에도 관심을 두신 김진식 선생님, 그리고 정선모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을 약정 토론자로 모셨습니다. 먼저 이 글의 주제와 내용을 축약해 주시고, 그 다음에 크게 본 유치환 문학, 즉 유치환의 시와 수필 속에서 이 글이 갖는 위상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토론해 주십시오. 그리고 세 번째이며 마지막으로 이 글의 구성과 기교 문제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변해명 선생님께서 본문을 읽어주시겠습니다.

 

 

(본문)

 

쫓겨난 아담

 

 

지난 가을 서울에 갔을 때, 어떤 소간(所幹)으로 신촌 이화대학을 찾아가 본 일이 있다. 그 부근은 내가 연전(延專)에 다닐 때 많이 걸은 곳이지만 근 30년 전 일이라 그 당시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래야 볼 수 없을 만큼이나 변했고, 다만 이대 앞 기차 터널이 그때 그 터널이거니 하고 겨우 짐작이 갈 뿐이었다. 물론 그때는 이대도 거기에 서지 않았고 아현동을 넘어와서는 집 한 채 없는 산골짜기였다. 마침 이대를 찾아간 때는 오후 네 시경의 하교 시간이어서 버스를 내려 교문에 이르니 갖은 복색을 한 이제 한창 청춘이 꽃피는 젊은이들이 책이며 가방들을 들고 제각기 재잘대며 쏟아져 나오는 판이었다. 이 숱한 젊은 여인들! 모두 알맹이가 꽉꽉 충실하여 있는 젊음의 향취와 빛깔! 이제 피어나는 젊은 여인이란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인가? 더구나 그들의 어딘지 지식에 충족스런 듯한 모습과 빛나는 검은 눈매들을 볼 때 흡사 백화요란(百花燎亂)한 꽃동산에나 들어온 거와 같은 황홀함에 발을 멈추고는 못내 감탄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자신 말 못할 서글픔 속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내가 그 꽃 같은 청춘에는 참렬(參列)할 수 없는, 이제야 선망(羨望)도 미칠 길 없는 포기된 자신을 다시 고쳐보는 허무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구내를 들어서니 자욱한 수풀에 에워있는 정결한 건물들 ─ 철따라 우짖는 새 울음소리도 바람 소리도 창으로 들려오리라. 이렇게 한적 속에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그 청춘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이 행복한 전당에서도 이미 쫓겨나지 않았는가? 돌아보아 내게도 그러한 황홀스런 청춘이 있었으리라. 30년 전 ─ 그러나 반드시 있었을 것임에도 틀림없건만 아예 없던 것만 같다. 너무나도 소홀히 써버린 그 회한이 또한 가만히 가슴을 헤집고드는 것이었다. 그러한 입맛 쓴 회한과 허무감을 느끼며 돌아나오려니 문전 가까이 이미 낙엽진 높다란 한목(寒木) 위에 펼쳐 있는 푸른 하늘, 그 하늘이 마음 깊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무한한 안심과 위자(慰藉)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문득 이 아래를 무수히 지나다닌 그 젊은이들도 나와 같이 저 하늘의 푸름에 마음이 끌릴 것인가고 생각이 미치는 것이었다. 아니리라 ─ 아니리라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네들 청춘은 자신들 안에 너무나도 많은 고운 것들로 충족되어 있기 때문에 미처 외부엔 눈이 팔릴 겨를이 없지 않겠는가? 파아란 하늘이라든가 무한이라든가 종교 같은 것에 마음이 끌리고 마음에 스며들게 되는 것은 이미 자신에게서 자신을 잃은 인생, 오후의 석양에 이르른 그때가 아니겠는가?

사회 : 고맙습니다. 그럼 먼저 우연하게도 청마의 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시단의 후배이기도 한 유경환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유경환 :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를 패러디해서 말한다면 ‘상실하였으므로 아름다웠노라’가 사회자께서 맨 처음 주문하신 이 글의 주제라고 봅니다. 그러한 자기 주장을 전개한 글이지요. ‘포기된 자신’, ‘쫓겨나지 않았는가’, ‘소홀히 써버린 회한’, ‘자신을 잃은 인생’, ‘오후의 석양’ 이런 다섯 가지 표현 속에 전부 상실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청춘,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아쉬움, 그러니까 청춘 예찬 플러스 부러움, 청춘 허송 플러스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청춘을 알차게 지내라는 교훈성이 숨은 메시지도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진식 : 이 글은 삶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이대 학생과 50대 초반의 자신, 젊음이 갖고 있는 생명력과 늙어감으로써 비로소 다가오는 푸른 하늘, 거기서 느끼게 되는 철학적인 종교적인 느낌, 그런 것들의 명암, 즉 삶의 명암을 대비시켜 그것을 주제로 삼았다고 봅니다. 저는 유치환 선생님을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1963년에 부산에서 마지막으로 뵈었는데 이분은 두어 시간을 같이 앉아 있어도 서너 마디 밖에 하시지 않는 과묵한 분입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내내 좌절의 인생을 사신 분인데, 이 글에서 그러한 자신의 불우한 과거, 즉 자신의 젊은날의 지나간 삶을 다듬지 않고 너무 많이 노출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 그러니까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한다면 이 글이 ‘좌절의 회한이다’라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말해도 동의하십니까?

김진식 : 예, 그렇습니다.

정선모 : 저는 이 글의 제목에 주제가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쫓겨난 아담’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가버린 젊음에 대한 회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회한으로 끝내지 않고 ‘하늘’, ‘종교’, ‘무한’이라는 단어를 써서 그것으로 상징되는 영원을 위한 희구,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글이라고 봅니다. ‘충족’, ‘충실’이라는 단어를 세 번씩이나 사용했고, ‘행복’, ‘황홀스런 청춘’ 등의 낱말로 젊음을 표현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자신의 회한을 나타내는 ‘쫓겨난’, ‘회한’, ‘허무감’, ‘자신을 잃은’이라는 낱말을 대비시켜서 자기의 심정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 : 그런 점에서는 아까 유선생님과 비슷하군요. 유선생님은 대체로 상실의 미를 전제하면서 거기에 회고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이 동시에 있다고 하셨구요, 지금 정선생님은 회한과 희구, 그러니까 과거적인 것과 미래적인 것을 동시에 축약했다는 말씀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세 분 말씀이 모두 과거에 대한 아픔을 되새기면서도 그것을 미화했다는 것에는 일치했습니다. 그러면 이 밖에 이 글의 주제에 대한 시각이 다른 회원이 계시면 말씀해 주시지요. 또 이 글의 제목에 ‘아담’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런 성경적 단어를 꼭 써야했는지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선모 : 조금 전 이 글의 주제를 말할 때 저도 그 제목에 주목을 했었다는 말씀을 드렸었는데, 이 글에 나오는 것이 여자대학이거든요, 그리고 또 이 글의 중간 부분에 ‘선망도 미칠 길 없는’이라는 말도 썼습니다. 그러니까 젊음이라는 말속에 의욕, 패기, 꿈, 이런 것뿐만 아니라 이성에 대한 개념도 포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젊음이 가질 수 있는 사랑,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이브’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아담’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김시헌 : 유치환 선생은 탐미적이었고 또 생명에 대한 시를 잘 쓰셨습니다. 그분이 이대에 와서 아름답고 생명까지도 발랄한 듯한 청년들을 바라보았을 때 이제는 그런 것들이 모두 자기에게서는 물러갔고 이미 모두 빼앗겨 버렸다는 것을 느끼고 그 대신 위안을 찾습니다. 그것이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젊을 때는 그것도 감각적이고 충동적이고 탐미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영원이나 종교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까 관조기에 와서 이 작가가 자기 위안의 대상을 찾고 있는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임순 : 이 글의 배경이 된 시기가 바로 제가 학교에 다닐 때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글 제목에 왜 ‘아담’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일까 생각해 볼 때 제 생각에는 여자대학이라는 특수성에서 이분이 느낀 것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에 남자대학에 가면 ‘쫓겨난 이브’ 같은 심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인간으로서의 회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으로서의 회고적인 느낌, 그것을 여자대학에 가서 느끼고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지요. 아까 김시헌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분의 시를 보면 탐미적인 요소가 많고, 생명에 대해 굉장히 강렬한 글을 쓰시지 않습니까. 젊음을 잃었고 아담과 이브의 낙원에서도 쫓겨났지만, 다시 파란 하늘이라든가 무한, 종교에 마음이 끌린다는 것에 이상향을 제시한 글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절망을 하지는 않은 것이지요. 쫓겨난 아담은 그래도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것을 강조한 글, 그러니까 생명력을 한층 더 불어넣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역시 상실은 생성을 뜻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러면 전체 유치환 문학에서 이 글이 갖는 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분의 4권의 수필집을 보면 이분의 수필에 산문시적인 구성이 많습니다. 단상이나 단편 같은 장르를 활용해서 시적인 산문을 많이 썼습니다.

유경환  : 흔히 시 ‘깃발’을 유치환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유치환 문학과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문학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 욕심 같아서는 시만 쓰고 수필은 쓰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도 해봅니다. 아까 사회자께서도 시적인 산문이다, 시적인 기운이 감돈다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제가 얘기할 여지가 없습니다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목 위에 펼쳐 있는 푸른 하늘’이라는 표현은 시적 표현의 변형이지 산문 정신에는 어긋납니다. 산문 어법이나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지요. 또 하나, 젊음을 꽃으로 비교했는데 이것이 성숙하고 세련된 발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것도 완전한 시인의 시적 발상입니다. 여대생이라는 이미지와 꽃이라는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수법을 쓰고, 거기에 ‘여인’, ‘청춘’, ‘무르익은’ 그런 말들이 꽃에 대한 비유로 등장합니다. 만일 이분이 단순히 30년 전의 상실된 자아를 찾고자 했다면 자신이 다닌 연세대학에 가서 얼마든지 상실된 젊음을  재발견하려고 노력했을 것인데 구태여 여자대학에 가서 젊음이라는 것을 재발견하려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은 젊음과 꽃에 대한 비유를 여대생에게 둔다고 하는 의도적인 뜻, 즉 시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 이 글의 뒷부분에 가면 ‘그 젊은이들도 나와 같이 저 하늘의 푸르름에 마음이 끌릴 것인가… 아니리라… 많은 고운 것들로 충족되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젊어서는 마음에 빈자리가 없기 때문에 종교나 무한, 푸른 하늘, 영원 같은 것에 눈을 돌릴 수 없고, 그런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은 훨씬 나이를 먹어서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느끼는 것, 즉 인생에서 큰 결실을 얻지 못했고, 자아를 상실한 것 같고, 세월을 낭비한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이 그리 헛된 것만은 아니다. 그 나이를, 그 과정을 지나봐야 종교나 무한, 영원 같은 것에 마음을 두는, 즉 비로소 인생을 다시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글은 그런 뜻으로 자기 합리화를 구한, 그런 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글이 시로 쓰여지지 않고 산문으로 쓰여진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회  : 결국 시적인 이미지를 산문으로 형상화했는데 미흡했다는 말씀이지요. 산문이 시보다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정선모  : 이분의 여러 시집의 서두라든가 『나는 고독하지 않다』라는 수필집 서문에 작품활동에 대한 본인의 자세를 밝힌 글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시인이 일부러 시를 낳으려고 애를 써야 되겠는가, 시라는 것은 저절로 고여서 흘러나오는 것이고, 시와 산문의 엄격한 구별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분은 표현 방식이 시가 맞으면 시로 썼고, 산문적인 표현이 어울리면 산문으로 썼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웅장하고 남성적이고 힘찬 표현 방식이 어울릴 때 시로 쓴 것이고, 산문은 감상이나 정감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산문 형식으로 쓴 것이지요.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 실린 대부분의 글은 감상적이며 생활 속에서 느끼는 단상들인데, 이런 것이 인간의 면모를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본인이 밝혔습니다. 이 ‘쫓겨난 아담’은 비교적 소품에 속하지만 상실과 영원에 대한 희구가 이 글에서 잘 표현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런 산문의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넓은 의미의 이분의 문학 속에서도 이 글은 산문적 요소가 충분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준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회 : 요컨대 단편적이고 잠언 적인 정감을 표현하는데 유리한 형식이 산문이고, 웅장하고 남성적인 정감은 이분이 시로 표현했다는 말씀입니까?

정선모 : 그렇습니다.

김진식  : 청마의 시에도 산문적인 기법을 사용해서 완성한 것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되는 것이 ‘선한 나무’입니다. ‘진실로 현실은 한 그루 나무를 길가에 세워 바람에 울리느니보다 빠개어 육신의 더움을 취함에 미치지 못하겠거늘, 내 애석하여 그가 섰던 자리에 서서 팔을 높이 허공에 올려보았으나, 그러나 어찌 나의 손바닥에 그 유현(幽玄)한 솔바람 소리 생길 리 있으랴.’ 이것은 완전히 산문 형식을 빈 산문시입니다. 이렇게 청마의 시는 산문적인 색채가 강하고 그의 평론이나 서간문 역시 그렇습니다. 특히 이영도 여사에게 보낸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에 비해서 이분이 수필이라고 쓴 글들은 오히려 시가 잘 안 될 때 그냥 쉽게 내던지듯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보다 훨씬 뒤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사회 : 청마 수필 연구가 몇 분의 논문 가운데 참고할 만한 것이 있어서 잠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남송우 씨는 ‘청마 산문의 다양한 모습’이라는 논문 속에서 청마의 수필은 단상, 일기, 여행기, 칼럼, 자연 예찬, 서한 등 여섯 가지이다 라고 했고, ‘청마 산문의 숨결’이라는 논문 속에서 박철석 씨는 청마의 수필을 크게 단상적인 것과 칼럼적인 것으로 양분했습니다. 칼럼을 2대 지주의 하나로 한 것이 주목할 만합니다. 또 조연현 선생은 ‘청마의 문학과 인간’에서 『예루살렘의 닭』 같은 데서는 잠언과 산문을 구별하기가 힘들 만큼 혼합상태에 들어가 있었다고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시헌 : 어떤 책을 보니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나를 두고 의지의 시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나를 잘못 본 것이다. ‘바위’ 같은 시를 보고 바위 같은 의지, 불변, 그런 것을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줄 알지만 난 사실 그 반대이다. 나는 늘 불안해 하고 흔들리고 방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정지시키고 바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정작 평론가들은 자기를 의지의 시인이라고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진권  : 저는 이 글을 읽고 공감이 별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포기된 자신’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이든 남자가 여대에 가서 아름다운 처녀애들을 보고 나는 이제 저런 애들과 연애도 한 번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그런 말을 쓴 것인지, 혹시 그렇다 해도 이제 쉰이 남짓한 남자의 표현으로서 ‘포기된 자신’이라는 것에 공감이 안가는 것입니다. 다소 과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또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저는 오히려 대학에 다닐 때 푸른 하늘이라든지 무한, 종교, 영원, 그런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생각하기도 싫어지고 잊혀지기도 했는데, 이 글에서 보면 저하고는 거꾸로입니다. 이 글에서는 젊은애들은 속이 다른 것으로 차 있기 때문에 파아란 하늘이라든지 무한, 종교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이미 자기가 자신을 잃은 오후의 인생, 50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공감이 안 가는 것입니다. 또 젊은애들이 자신들 안에 너무나 ‘많은 고운 것들’이 충족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파란 하늘이나 그런 것들은 ‘많은 고운 것들’ 속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잘 몰라서 공감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회 : 그러니까 이미지를 다양하게 구사했는데 통일된 것을 얻지 못하겠다는 말씀인가요?

정진권 : 물론 수필이라는 것이 각자 자기의 체험을 쓰는 것이지만 저하고는 그 체험이 달라서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사회 :  젊은 측에서 한 번 말씀해보시지요.

최순희 : 지금까지 여기서 작고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다루었는데 그런 것들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저는 상당히 이 글에서 공감대가 많았습니다. 지금 정선생님의 말씀대로 파란 하늘이나 무한, 종교 같은 것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서 젊은 시절에 더 많이 탐구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여기서 그 문장을 따로 떼어내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외적인 다른 것을 보는 눈 같은 것, 외적인 다른 것에 대한 관심 정도로 뭉뚱그려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잖습니까. 자신이 언제 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가 할 때, 꽃놀이에 관심이 없어지고 단풍놀이에 더 관심이 있어질 때라는 말 말입니다. 이 글에는 그런 인생의 흐름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거기에 공감을 하며 읽었습니다. 나이를 먹어 가는 사람이 젊은이들을 볼 때, 즉 나이 든 남자 분이 여자대학에 가서 여대생들을 보며 거기서 느끼는 쓸쓸함, 그런 것에 공감을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그러했습니다.

 

사회 : 제가 보기에 수필이다, 시다 해서 장르의 차별성은 현격하지만 그 이미지의 구사는 상당히 통일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깃발’에 나오는 이미지와 이 수필에 나오는 ‘파란 하늘’, 또 ‘나는 고독하지 않다’의 첫 줄이 ‘오늘도 나는 나의 생명이 누리고 있는 저 무궁의 푸른 하늘을 보고’로 시작되는데 쓰는 차이는 있지만, 이미지는 공동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경환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경환  : 시적 표현이라든가 시적 기교, 시적 구성에서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지 않고 생략이 됩니다. 그런 기법으로 시가 쓰여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쓰여진 시를 통해서 유치환 문학을 감지할 때는 한 차원 높은 유치환 문학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산문으로 구체화시키고 노출시켜 놓으니까 모든 것이 다 드러나 그의 문학이 평가절하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아쉽고 섭섭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아까도 유치환의 시만 존재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문 구사 방법과 시적 구사 방법에는 차이가 있고 일치하지 못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김진식 : 구조적으로 저는 사회자가 말씀하신 것에 공감을 하는 편입니다. 시에는 대구(對句)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 이 글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신촌 대학가, 젊은이들의 아름다움, 여학생들의 생명력 등을 말하며 자기의 회한과 허무감을 피력했고, 자연과의 교감, 새 소리, 바람 소리 그런 것의 상대로 30년 전의 자기, 또 ‘한목의 푸른 하늘’의 상대로 ‘무한한 안심과 위자’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런 상대적 접근은 청마의 시 ‘바위’나 ‘울릉도’ 등에서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즉 긍정과 부정, 명암을 교차시키는 그 수법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지금 토론을 하다 보니 우리가 제3제에서 토론할 부분도 이미 상당히 나오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제안한 것이 이 글의 기교와 구성 문제였습니다. 먼저 약정한 분들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정선모 : 이 글의 구성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단순 구성입니다. 여자대학에 가서 보고 느끼는 부분이 첫번째 부분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두 번째 부분입니다. 전형적인 수필의 형식을 취했다고 봅니다. 기교 면을 보면 지금 우리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아현동을 넘어와서는 집 한 채 없는 산골짜기였다’ 도 이해는 하지만 어색한 문장이었고, 첫 단락의 끝부분에 나오는 ‘참렬할 수 없는’, ‘미칠 길 없는’, ‘포기된 자신을 다시 고쳐보는’ 등의 중복 문장 때문에 의미가 선명하게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또 이 글의 마지막에 ‘마음에 끌리고 마음에 스며들게 되는 것은…’도 ‘마음에~ 마음에’가 중복되어 오히려 그 의미가 더 애매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그리고’, ‘그리고는’, ‘그러한’, ‘그러나’ 등의 접속사가 남발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많이 퇴고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쉽게 써 내려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김진식 :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이 여기에 해당이 되겠습니다. 즉 구조적으로 이 글은 명암이 상호 의존적으로 다루어져 있습니다.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글 쓴 의도는 분명히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 글의 문장구성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청마가 시에서는 무척 엄격하고 퇴고도 많이 하는데 산문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또 도입 부분과 끝이 정돈되어 있지 않고 산만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쓰고 싶은 푸른 하늘, 영혼, 종교 같은 허무의지를 쓰기 위해서 어법 자체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유경환 : 이 글은 200자 원고지 6장 정도의 분량입니다. 짧은 수필이지만 문단을 4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단 구성의 기본 공식, 즉 기, 승, 전, 결을 정확히 맞추어 썼습니다. ‘기’에 해당하는 것이 이대라는 무대 설정이고, ‘승’에 해당하는 것이 여대생을 보고 황홀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소홀히 써버린 그 회한이고,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것이 역시 나이가 들어야 인생을 알 수 있다고 쓴 부분입니다. 기승전결의 문단 형식에 딱 들어맞는 구성입니다. 기교 면에서 이 글을 보면 이 글은 당시의 문장 스타일로 보면 무척 깔끔한 글입니다만 오늘날의 문장 기준으로 보면 토씨를 생략할 부분이 많습니다. 또 이 글 가운데 표현에서 의문이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가정법을 쓴 부분입니다. 자기가 지금 이대 교정에 들어와 있는데 ‘들려오리라’ 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발상이고 산문정신에는 어긋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진권 : 유경환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집 한 채 없는 산골짜기였다’가 서두이고, 끝부분 ‘파란 하늘이라든가…’부터가 결에 해당됩니다. 또 표현에서 ‘검은 눈매’라는 말이 나오는데, ‘눈매’라는 것은 부드럽다든지 싸늘하다든지 하는 수식어를 받는 말이지 검다든가 빨갛다든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끝부분에 ‘그네들 청춘은 자신들 안에 너무나도 많은 고운 것들로 충족되어 있기 때문에’에서 ‘것들로’는 ‘것들이’로 되어야 문법이 맞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이지요.

이응백  : 유경환 선생님이나 정진권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글은 4단계로 나뉘어져 좋습니다. 또 ‘검은 눈매’라는 표현은 나는 정선생님과는 반대로 그 당시의 순수함이 살아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목’이라는 단어는 갑작스럽게 갖다 붙인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위의 분위기로는 한목의 캠퍼스에 들어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또 ‘파아란’은 ‘파란’이라고 해야 합니다. 요즈음 철자에는 장음이 없습니다.

구양근 : 제가 여대에 있기 때문인지 저는 모처럼 아주 감명 깊게 이 글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오빠 같은 느낌이 들더니 이제는 아버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읽고 쓸쓸했습니다. 석양을 등진 노신사의 모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구성과 기교 면에서 이 글을 볼 때는 너무 짧다는 느낌입니다. 또 지금 우리에게 맞지 않는 생소한 단어, ‘소간’이라든지 ‘참렬’, ‘위자’ 같은 것들이 나와서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공덕룡 : 이 정도로 하나의 작품이다, 수필이다 할 수가 없습니다. 역시 유치환 선생은 시가 좋습니다. 지금 몇 분이 이 글이 기승전결의 공식에 맞는다고 했는데 그것도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됩니다. 물론 그렇게 갖다 붙이면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한 문단이 너무 길어서 답답한 느낌이 드는 곳이 많고, ‘소간’이니 뭐니 하는 어휘의 선택도 이상하고 어색한 표현이 많습니다. 나는 역시 다시 유치환 선생의 시나 읽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송규호 : 문장에서 아까 어느 분이 너무 어려운 말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런  단어는 그 당시로서는 보통 사용되던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문장이 길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한 문장의 길이에 대해서 저도 가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한 문장이 아무리 길어도 200자 원고 용지 4줄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 다음에 여러분의 고견을 한번 듣고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의 맨 끝 대목이 마음에 듭니다. ‘황혼의 나이가 되어 보니 인간이 너무 아름다운 것만 쫓다가 이 나이가 된 것 같다, 너희들도 내 나이가 되어 보아라. 이 마음을 알 것이’라는 것이지요.

 

사회 : 시간이 어느덧 80여 분이 지났습니다. 우송 선생님께서 이 글의 종합적인 인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태길 : 종합적이랄 것도 없습니다만, 나는 유치환 선생이 우리 나라 문학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시인이라는 선입견을 떠나 우리보다 조금 먼저 사신 분의 수필이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은 이분이 시인의 주관으로 이대 캠퍼스를 보고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냉철한 관찰 속에서 학생들의 마음 속이라든가 그런 것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시인의 주관으로 상상하고 그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좋게 말하면 순진무구한 글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잇살이나 먹어 가지고 여대 캠퍼스에 가서 나는 이제 저런 아이들과 연애도 못하겠구나 하는 것을 쓰는 것이 무척 쑥스러운데, 그런 것을 쓴 것을 보면 어린애 같은 순진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쁘게 말한다면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같은 것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 : 사회자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글에서 ‘한목’이나 ‘푸르름’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청마가 이 글을 쓸 때가 어떤 분과 열렬할 때라서 정서적으로 그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숫자상의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자, 이제 합평회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약정하신 세 분의 말씀을 대강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이 글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상실의 미, 좌절의 회한과 희구, 강렬한 탐미의식과 생명의식이 배어 있는 수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다음 이분의 전체 문학에서 이 수필을 조명하는 시각에서는 대체로 시적인 이미지의 구사가 있었다, 이 산문은 그의 시보다는 못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시와 산문의 기능이 적절히 교차되었고, 이미지를 공용해서 상당한 기교가 보이는 작품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구성과 기교 면에 대한 토론에서는 중복과 애매한 어법, 접속사의 남발, 어법의 잉여, 토씨의 과용, 산만, 퇴고의 미비 등의 단점을 지적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한편 전형적인 구성이고 기승전결을 잘 갖춘 좋은 구성이었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오늘 이 합평을 하기 전, 맨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이제까지 많은 시인들의 수필을 가지고 토론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시인의 좋은 수필을 몇 분 더 골라본 뒤에 시인들이 쓰는 수필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에 관해 종합적으로 여러분과 토론, 합평할 날을 가져볼까 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