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금빛 날개

                                                                                                  유혜자

 자주 지나는 지하도 안의 음반 가게, 음반이 빼곡한 레코드 점이 부러웠던 기억 때문인지 요즈음도 얼른 지나치지 못한다. 유리창에 최신 가요 베스트 앨범 자켓과 인기 순위 차트를 붙여놓은 것은 여느 가게와 다름없다. 그런데 성악을 전공한 청순한 목소리의 나나 무스쿠리 노래만 틀어놓는다. 10대가 좋아하는 유행 음악을 틀어야 장사에 도움이 될 텐데도 한결같다. 오늘도 ‘사랑의 기쁨’의 애절한 가락 뒤에 이어지는 노래가 ‘Song for Liberty’여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가게 안으로 향해졌다. 종목별로 잘 진열된 가게의 젊은이는 내가 곡목을 말하기까지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오페라 ‘나부코’ 중 ‘노예들의 합창’을 찾으니, 지금 듣고 있는 것이 그것을 편곡한 노래라고 진지하게 권한다. 나는 선뜻 받아 드는 대신 다른 음반들을 둘러보다가 생각에 잠긴다.

방송에 있으면서 7,`80년대 유신과 5,`6공화국을 거치는 동안 계엄령 선포, 위수령, 비상사태 선언 등으로 정규 방송 대신 파행 방송을 몇 차례나 했었다. 오락적인 분위기를 삼가라는 당국의 지시로 엄숙한 방송을 위해서 음악도 국민 가요나 클래식을 선곡해야 했다. 그때마다 단골로 이용한 것 중의 하나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었다. 오리지널과 함께 팝송으로 편곡된 ‘Song for Liberty’도 많이 틀었었다.

비상사태가 특정인의 집권 연장을 위해서 국민들을 암담한 분위기에 몰아넣었던 것이라고 이제는 잘 알려져 있다. 그때는 석연치 않은 지시로 파행 방송을 하며 내심 심사가 뒤틀렸었다. 그럴 때마다 자유를 구가하는 힘찬 노래를 저항의 말 대신 틀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청신한 멜로디와 힘 있는 합창은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는 듯했다. 특히 이 노래의 유래까지야 알 리 없는 당국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고도 자유를 구가할 수 있어서 PD만이 누릴 수 있는 남모르는 묘미가 있었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우리말로 소개한 일은 없지만, 내심 청취자들에게 속삭여 주고 싶은 구절이었다. PD들의 심중이 은연중에 청취자들에게도 전달이 되었던지 아니면 음악이 좋아서였는지 비상사태가 끝나고 정규 방송이 시작된 후에도 희망곡으로 많이 신청해 왔었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의 가사는 작곡가 베르디를 침체에서 일으켜 세운 구절이다. 베르디는 첫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로 호평을 받고, 다음 작품을 작곡할 무렵 부인과 아들의 잇달은 죽음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의 초연이 실패하자 낙담한 베르디는 붓을 팽개치고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라 스칼라 극장의 주인 메렐리는 재능 있는 작곡가의 좌절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막연한 위로 대신 먼저 작곡 의욕이 솟을 만한 대본을 구하는 일이 급했다. 메렐리는 완벽한 ‘나부코’의 대본을 마련하여 베르디의 집, 책상 위에 슬그머니 두고 왔다.

베르디는 어느 날 낯선 대본을 펼쳐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구절을 발견했다. 전체 내용은 구약성서 열왕기 하편에 나오는 것으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잡혀간 유대인들이 핍박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이야기였다. 그 속에서 조국을 그리며 자유를 구가하는 가사에 빠져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멜로디를 붙여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슬픔에 빠졌던 베르디에게 그야말로 금빛 날개를 달아준 것이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로 시작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었다. 절망에서 희망의 등불을 발견하게 해준 것이다.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

비탈과 언덕에서 날개를 접어라

그곳은 부드럽고 온화한 공기

조국의 공기가 향긋한 곳

맞이하라 요르단 강둑과 무너진 탑

 

메렐리의 격려 속에서 ‘나부코’는 합창곡뿐만 아니라 힘찬 오페라로 완성되어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당시 북부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포로 유대인들과 자신들을 같은 처지로 여기고 노예들의 합창을 국가처럼 불렀다고 한다.

베르디는 ‘나부코’를 시작으로 ‘에르나니’, ‘지오반나 다르코’, ‘아틸라’ 등 애국심 고취와 독립운동에 불붙이는 작품을 많이 써서 국민들의 공감을 계속 얻었다. 특히 극중의 합창들이 절망과 우수에 빠져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줬다. 독립과 통일을 바란 국민들은 베르디를 애국적인 우상으로 삼고, 작품이 나올 때마다 열광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 파행 방송 없이 소신껏 일하는 후배들이 부럽기도 하다.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역할을 해내는 오페라 배우들처럼 생각된다. 퇴역인 나는 무대에 서지 못하는 대신 벅찬 감격이 있는 연극이나 오페라 관람이라도 하고 싶다. 어두운 무대에서 한 줄기 스포트를 받으며 외치는 대사와 아리아에 환상을 누릴 수 있어서이다. 초신성(超新星), 어느 새벽 유난히 초롱초롱한 별빛에 꿈을 의탁했던 시절도 생각하며. 천삼백만 년 전 진화의 최종 단계에서 폭발할 때 태양보다 밝은 빛을 내고 소멸한 별빛을 천삼백 년 후의 우리가 감격으로 바라본 것이라는 이론이 발표되었었다. 시간의 의미가 무색하다는 생각도 거두고, 그 순간 가졌던 아름다운 환상만은 진실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새로운 별, 반짝 스타같이 금방 사라지는 가수보다 나나 무스쿠리처럼 오래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의 노래로 하세요.”

내가 방금 별에 대해 생각한 것을 짐작이나 한 것처럼 가게 주인은 가수를 별로 비유하며 계속 나나 무스쿠리를 권한다. 나는 베르디 오페라의 합창이 영원히 빛을 내는 별빛이라고 우기고 싶은 걸 참는다. 베르디는 당시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별빛처럼 밝혀줬지만, 오늘의 우리에게도 별빛 같은 예술 작품과 빛나는 생애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가 있는 삶인지 참고서처럼 일러줬다. 그는 초기의 애국적인 작품 외에도 ‘운명의 힘’, ‘리골레토’, ‘춘희’, ‘아이다’ 등 불후의 명작들을 썼다. 79세에 쓴 ‘팔스타프’도 극찬을 받았고, 이후에도 성가 등 종교 음악을 썼다니 나이든 세대에게도 의욕을 줄 만하다.

음악가들이 생존시에 인정을 못 받았었는데 베르디는 작품성도 높이 평가받고, 통일운동의 공로로 국회의원으로 추대됐었다. 그러나 예술가 기질의 베르디가 1년만에 임기도 채우지 않고 사임했음은 당연했다.

나는 나나 무스쿠리의 음반을 받아 들고 나오며 발걸음이 가뿐하지가 않다. 10대들이 열광하는 댄스 가수들의 노래를 외면하고 부실 경영을 감수하는 가게 주인도 어떤 예술적인 고집임이 분명하다. 침체해 있는 나와 가게 주인이야말로 자유의 금빛 날개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