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의 멋

                                                                                                具良根

 나는 여대에서 교편을 잡은 지 벌써 17년이 되었다. 물론 내가 여대에 근무한다고 해서 여대 찬양론자는 아니다. 꼭 내 진심을 말하라 한다면 오히려 남녀공학 쪽이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면 학교를 위해서나 국가적으로나 남녀공학을 하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대를 지지하는 자들의 이론은 어떤 면에서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에는 아직은 남자대학과 여자대학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위 남녀공학이란 그저 남자대학에 여자가 부속되어 있는 상태에 불과해서 학생장도 남자가 하고, 데모도 남자가 하고, 모든 일을 남자가 주동이 돼서 하고, 여자는 기껏해야 보조적인 역할이나 아니면 보고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위치라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여대에 이력서를 내려 교문을 들어서며 보았던 한 장면은 오래 잊을 수가 없다. 운동장에 텐트를 치려고 여학생 두 명이 무거운 텐트 뭉치를 어깨에 메고 가고, 그 옆에는 말뚝이며 해머를 질머진 여학생이 함께 걷고 있었다.

“여기는 남자도 없나? 여자가 저 무거운 것을 메게.”

아 참! 여기는 남자가 없지. 그때서야 내가 여대의 교정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완전히 여대 교수라는 것이 기정 사실화되었고, 자신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여대에서 가슴 뭉클한 장면들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그것은 확실히 여대생의 멋이었고, 여대에서만 볼 수 있는 풍류도(風流道)였다.

어느 철학자는 한국인에게 최고의 찬사는 “당신 정말 멋있는 사람이오”라는 말이라고 하였고, 또 어느 원로 수필가는 승무(僧舞)에 열중하는 무희의 미끄러지는 장삼자락을 멋있는 모습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나는 여인의 멋스러움이란 남의 도움없이 마이 패스로 헤치고 나가 골인시키는 농구 선수와도 같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교정에서 가끔 그런 멋스런 여학생을 만난다.

미대생이겠지만, 가끔 온갖 물감이 만화경처럼 휘뿌려진 실습복을 입고 태연히 친구와 웃으며 교정을 걷고 있는 여학생을 만난다. 멋져 보이고 자신만만해 보인다.

몇 해 전에는 방통대에서 우리 과에 편입학한 한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혼자 일당 백을 하는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 공부도 본과생들을 제치고 톱으로 올라서는가 하더니, 우리 과에서 전공하는 외국어로 전국 대학생 외국어 웅변대회에서 우등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 학생을 멋있다고 느꼈다. 그 학생은 자기가 처한 일에 최선을 다하였고, 계획했던 대로 취직을 했다.

여대에 있는 교수들의 불만 중 하나가 학생들과 술을 못마신다는 것이다. 특히 여학생과 단 둘이 술을 마신다는 것은 구설수에 오르기에 딱 좋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과의 P학생은 재학 때도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 졸업 후도 가끔 연락이 있더니, 언젠가는 자기가 취직을 했으니 한 잔 사겠다고 나오라 한다. 나가 보니 혼자였다. 계면쩍어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이상했다. 나는 같이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이 학생은 참으로 멋을 아는 학생이라고.

얼마 전에 졸업한 L학생은 공부는 보통이고 말이 없으며 덩치가 상당히 큰 학생이었다. 다니는 모습은 여학생답지 않게 마치 사자가 혼자 으르렁대며 걸어다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가 3학년 때인 어느 날 벽보를 보니 총학생장 출마를 했다. 투표 결과는 압도적 승리였다. 무슨 마력으로 다른 후보자를 누르고 압승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은 전국적 운동권 학생 조직의 일원으로 그 단체에서 밀었다는 후문이었다. 당선 후는 ‘학생의 왕’ 바로 그것이었다. 가끔 학교 신문에 나기도 하는데, 그때는 무서운 군사 독재시대라 학교에도 프락치가 학생으로 가장하고 들락거렸다. 한 번은 학생들이 프락치를 잡아서 학생회실에서 심문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되었다. 보니 사자처럼 생긴 L이 수상한 여자를 다그치며 녹음기를 들이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요새는 TV를 보았더니 시민연대의 여성조직부장인가를 맡고 있었고, 이번 4·13 총선에서는 시민연대에서 선정한 부도덕하고 지방색을 조장한 자들을 모조리 떨어뜨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참으로 장한 모습이었다.

내가 이 학교에 온 그 해인지 다음 해인지에서 보았던 감개무량한 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그 날이 개교 기념일이었다. 개교 기념일에는 전교생 운동 시합이 있었다. 운동장을 두르고 있는 스탠드에는 전교의 학생이 과별로 앉아서 응원을 하는데, 실은 운동 시합보다 그 응원하는 모습이 볼 만하다. 각 과마다 특색을 살리는 복장을 하고, 앞에 나선 응원단은 치어걸 같은 모습으로 멋진 몸놀림을 하여 선수들을 고무시키기도 하고 관중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였다.

다음 차례는 백 미터 경주였다. 각 과의 선수들이 운동장으로 내려오고 경주를 주도하는 측에서는 이것저것을 챙기는 모습이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좀 어수선해지고 뒤숭숭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데모를 주도하는 학생들이 운동선수로 가장하고 사이에 끼어들었고, 미리 그 낌새를 알고 출동한 성북경찰서의 형사들이 활발히 활동을 개시한 것이었다. 그때는 벌써 첫 팀 선수들이 줄지어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형사대에 쫓겨 운동장 가운데로 뛰었다. 건장하게 생긴 한 형사가 그 학생의 뒤를 따라 뛰더니 드디어 따라잡아 학생의 덜미를 나꿔챈다. 이를 신호라도 삼은 듯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던 주동 학생들은 백 미터 경주를 하듯이 운동장 트랙을 뛰었고, 각자의 품속에서 나온 전단이 어지럽게 휘뿌려졌다.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며 스탠드며 운동장이며 구호가 터져나오고, 쫓고 쫓기는 활극이 연출된다. 언제 준비하였는지 여기저기서 핸드 마이크 소리가 들렸고, 이를 뺏으려는 교직원과 형사대, 이를 저항하는 학생들의 비명 소리, 구호 소리가 범벅이 된다.

나는 그때 전단에 씌여진 충격적인 내용을 보고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저처럼 여리기만 하던 여학생의 품속에 그처럼 예리한 비수가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군부 독재하에서 한 마디만 잘못 해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종신 불구가 되도록 얻어맞든지, 전기 고문, 물 고문을 당해서 정신이상자가 되고마는 판국에 정권 퇴진이라니.

이들은 여리고 나약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다. 내 스스로 여대에 대한 사고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