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의 단상

                                                                                                 김애자

 여름날, 칸나 잎에 빗방울 듣는 운치가 좋아 마당 구석구석 알뿌리를 심었다. 그러나 봄내 가뭄이 들어 좀체 싹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논에 물이 떨어지고 개울마저 바닥을 드러낼 즈음 단비가 이틀간 내리 퍼붓자, 칸나는 마침내 부드러워진 지표를 밀치고 새 순을 내보냈다. 이제부터 칸나의 구근은 새 뿌리가 땅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제 살을 썩히다 흔적없이 스러지고 말 것이다.

생명을 이어주는 이러한 섭리를 생각하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처음으로 장독대 뒤로 작은 밭을 일구고 파씨를 파종했는데 새로 돋은 어린 잎들은 하나같이 까만 껍데기를 달고 나왔다. 실낱 같은 싹이 제 꼴을 갖출 때까지 껍질만 남은 몸으로 수분증발을 막아 주려는 어미씨의 눈물겨운 배려였던 것이다. 아무도 칸나나 파에게 이와 같은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련만 제 스스로 알아서 종족을 보전해 나가는 어미씨들의 거룩한 순절(殉節)은 내게 새로운 차원의 발견이다.

오늘은 해 동갑, 울타리로 심어놓은 주목의 잔가지를 잘라내고 두엄을 퍼다 칸나 뿌리 둘레에 부어주었다. 이어 풀이 자라는 것을 막아주려고 짚을 덮어 주다 보니 날이 저물고 만 것이다. 흙 묻은 신발을 털고 누마루에 올라서니 어둑한 산 뫼가 우뚝 눈앞으로 다가선다. 어린 모가 자라고 있는 다랑 논에선 개구리 울음이 기승차고, 추녀 끝에 달아 놓은 풍경도 간간이 맑은 음향을 보탠다.

남편의 정년을 기회로 찬물내기 산골로 들어온 지 1년이 되어간다. 도시에서 소일거리 없이 세월만 축내느니 남새밭 가꾸는 재미라도 누리자고 시작한 생활이 봄부터 손에서 연장 놓을 날이 없다. 땅을 일구고 거름을 주고 씨를 뿌려 가꾸는 자잘한 일거리가 줄달아 이어지기도 하지만, 일이 뼈에 배지 않은데다 일머리를 몰라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탓이다.

내일은 감자 꽃을 따주고 시간이 남으면 고추와 토마토 곁가지도 쳐줄 생각이다. 감자 꽃이 열매를 맺으면 감자 알이 굵게 들지 않으므로 열매맺기 전 꽃을 따 주어야 한다. 고추와 토마토도 마찬가지다. 곁순이 크면 열매가 실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없이 나오는 곁순을 부지런히 쳐내야 한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게 땅에 생업을 걸고 살아온 농사꾼들의 진언(眞言)이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거반 기계로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트랙터로 논이나 밭을 갈면 쉽고 빠르지만 흙을 깊게 뒤집어 주지 못한다. 겉 흙과 속 흙이 고루 섞이지 않는 결점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모내기와 벼 수확은 어쩔 수 없이 기계를 사용하지만, 논이나 밭갈이는 한사코 소에 쟁기를 매어 부린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모내기철이 지나간 요즈음은 콩밭 매는 품앗이로 바쁘다. 그래도 오가는 도중에 자신들의 전답은 빠짐없이 둘러본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자주 들려주기 위해 그렇게 동동거리다 보면 꿈결같이 계절이 바뀐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지 않은 우리도 공연히 망둥이가 되어 종일 잰걸음을 치다 저녁이 되면 손끝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녹초가 된다. 더러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하여 신문을 펼쳐들지만 내려 감기는 눈까풀을 이겨내지 못해 자리에 들면 그대로 숙면에 빠진다. 어쩌다 꿈을 꾸기도 하지만 깨고 나면 무슨 꿈을 꾸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불면으로 괴로운 밤을 보내고 창백한 아침을 맞는 일은 이제 흔치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사사롭게 정을 나누던 인연들과 소원하게 되어 가끔 전화로 정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전할 뿐이다. 노동은 이렇게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면서도 자신의 일을 소신껏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안겨준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올차게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곳으로 들어온 후 신동문 시인을 자주 생각한다.

그분은 일찍이 지식인의 무료한 일상성에 대해 고뇌하다가 마침내 붓을 꺾고 충북 단양에 있는 적성이란 오지로 들어갔다. 시인이 지향한 순수한 이상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었다.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답답한 목숨의 미련’을 버리고 머슴살이하듯 청춘을 바친 서울을 떠났던 것이다. 시를 쓰던 손에 삽과 괭이를 들고 죽는 날까지 농부로 살면서 심혈을 기울여 배운 침술로 가난한 이웃들의 병을 치료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노동으로 오늘을 살면서 인간애를 실천했던 선각자였던 것이다.

곧 장마가 진다고 한다. 칸나 잎에 빗낱 듣는 운치도 좋지만 큰물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더 간절하다. 민들레꽃처럼 작고 소박하게 살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없기를 바래서다. 농사꾼은 마치 칸나가 땅속에서 제 살을 썩혀 생명을 이어주듯,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먹거리를 위해 일생을 바치다 쓸쓸하게 순절한다. 도시인들은 이 거룩한 순절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그들이 애써 지은 농산물을 돈으로 지불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놓인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소비자가 생산자들의 입장에 서봐야 가능하다. 배부른 이는 빵 한 조각을 구걸하는 자의 비참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

밤이 깊어간다. 번개가 일고 천둥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소나기라도 한 줄금 퍼부을 모양이다.

 

 

 

김애자

수필문학으로 등단(91년).

문인협회 및 충북수필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