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가기

                                                                                          林明姬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니 말대꾸할 힘도 없다. 그래도 막차를 타자면 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사정이므로 남은 기력을 모은다. 기껏 삼백여 미터 거리, 나름으로는 애를 써서 완행버스 승강장에 거의 다 왔는데 버스가 그냥 휙! 지난다.

태안 쪽을 향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꽤 먼 거리를 걸었다. 걸음이 더해지면서 지친 몸이 조금씩 살아나는 기분이긴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이제 인가가 없는 산길이 계속될 것이므로 이쯤에서 걸음을 멈춰야지 하면서도 발길은 자꾸만 앞으로 나아간다.

뻐꾸기가 운다. 밤뻐꾸기가 울면 나쁜 일이 생긴다던 외할머니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아스팔트길에 그려진 희끄무레한 선을 따라가는 낯선 산굽이 길, 뻐꾸기 울음소리가 제격으로 흉흉한데 별도 없이 캄캄한 길은 내가 디뎌오기를 바라는 듯 음흉하게 늘어져 있다. 기왕에 사서하는 고생, 즐겁게나 걷자 마음을 고쳐먹어도 승강장에서 그냥 택시를 부를 걸 괜한 짓을 했구나 자꾸만 후회스럽다.

더러는 차들이 환하게 나타났다가 어두움만 보태놓고는 쏜살같이 사라진다. 차량 꽁무니의 붉은 불빛조차 어쩐지 불길해 보이는 밤, 오늘따라 지나는 택시도 없다. 여기가 대체 어디쯤일까? 불편한 구두를 신고 절룩거린 걸 감안한다 하여도 한바탕 걸어왔으니 수월찮은 거리를 왔을 터인데, 위치가 짐작이 안 된다. 앞도 뒤도 울창한 소나무들의 검은 형상만 다가올 뿐 빛이 안 보이는 길, 그렇지 않아도 난감한데 후둑! 빗낱까지 듣는다.

이마에 맞은 빗방울을 닦으며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든다. 어둠 속에서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더듬더듬 찾는다. 바로 그때였다. 파란 택시등을 빛내며 택시 한 대가 달려오고 있다. ‘하이고 오메여’싶은 심사로 차를 세운다.

그러나 설 듯 말 듯 주춤거리던 택시가 그냥 달아난다. 분명 아무도 타지 않은 빈 차였는데 무슨 일일까? 어이없어 했던 그 까닭은 택시회사에 전화를 해보고서야 어렴풋이 짐작이 됐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일명 여수고개 근처였던 것. 여우가 나타난다고 비오는 날이면 밤길에 지나길 꺼린다는 소문을 들은 듯한데 내가 흰 옷을 입은 탓인가? 그래도 그렇지 요즘 세상에 그런 전설 때문에 승객을 께름하게 여길 귀여운 택시기사가 다 있다니, 웃어야 할지 어쩔지 모르겠다. 여우가 둔갑했다면 젊고 요염한 모습일 테지 아무려면 이렇게 운치 없이 퍼진 느슨한 모양새이랴. 그 택시기사의 상상력도 참 한심한 수준이라고 애써 우스개를 만들어 봐도 가야 할 길이 걱정은 걱정이다.

가뜩이나 무섭던 길, 사정을 알고 보니 무서움이 더럭 커진다. 발을 몇 번 떼어놓지도 못하고 뒤를 돌아보게 되고, 또 몇 발짝을 걷고 돌아보고 정확한 위치를 몰라 택시를 보낼 수 없다는 택시회사를 원망하며 또 몇 걸음, 무언가가 뒷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길을 그래도 걷는다.

그래, 이런 느낌이 어제 오늘뿐이랴. 내가 선 위치를 몰라 절절매며 남에게 내 선 곳을 설명할 방법이 없던 세월을 참 많이 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이 얼른 공감할 만한 언어를 못 가졌으므로 늘 이렇게 캄캄하게 혼자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어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에서 통용되는 모든 것에서 따돌려져 살아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

세상에 내세울 것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걸리는 게 없는 내가 가는 길, 하다 못해 단순 노동이나 필요한 공장에 들어가려 해도 제도권에서 취득한 게 아무것도 없으므로 문이 열리지 않던 세월을 살았다. 남들이라고 무슨 수월한 길을 걸었으랴만 안팎으로 인정받을 것 하나 없이 세상을 살아낸다는 것, 등불 없는 밤길 가기였다. 불필요하게 큰 힘으로 군림하려드는 세상을 나 또한 필요 이상으로 겁먹으며 용케도 예까지 왔구나 싶을 때가 있다. 정당한 요금을 냈으면서도 주눅이 잔뜩 든 모습으로 세월에 승차한 승객 같다는 생각이 드는 때문인가, 가슴 속엔 할 말이 부글거려 더부룩한 느낌에 부대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몇몇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쓸 게 없다는 말이다. 쓸 게 없다고? 얼마나 편한 속이면 그렇게 할 말이 없을까. 그래그래 맞장구쳐 줄 대상 하나 없는 자리에서 바라보면 그런 판판한 마음으로 사는 이들이 슬그머니 부러웠다.

저 고개를 넘으면 인가가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나무숲에 가려져 내가 불빛을 못 찾는 것일 뿐, 따뜻한 희망들이 여기저기서 반짝이고 있는지도 몰라. 어쨌든 오늘 밤은 내가 맡은 역할이 좋다. 여우로 오해받을 수 있을 만큼 모처럼 괜찮은 배역, 나를 겁내고 달아난 택시기사를 떠올리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어느 경우든 잠깐만 선 자리를 바꿔 생각해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거기에 있다고 했지? 어둠 속에 서서 눈을 크게 떠본다. 스스로 누구의 불빛 노릇을 해보겠다는 뜻은 못 세우고 빌미만 있으면 주저앉아서 어둡다고, 무섭다고 오금을 못 폈던 딱한 내 모습이 환하게 보이는 길, 발이 부르트는지 디딜 때마다 뜨끔거린다. 밤새 걷는다면 내일 출근할 일이 걱정이지만, 핸드폰 뚜껑을 딸깍딸깍 여닫으며 그래도 발걸음에 힘을 준다. 반딧불이가 내뿜는 빛보다는 수십 배나 밝은 전화기 자판의 야광이 어둠 속에서 깜빡인다. 사방은 칠흑, 누구의 어둡고 힘든 걸음 위에 이런 조그만 깜빡임이라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삶이랴.

나는 작은 발광체가 되리, 희떠운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니 무서움이 한결 누그러진다.

 

 

 

임명희

시집 "생존 연습" (90년),

수필집 "쑥같은 사람", "신나는 호주머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