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풀과 투명한 강

                                                                                                    한원준

 내 외할아버지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할머니와 자식들을 데리고 피난을 오셨다. 할아버지는 가끔 어린 손주를 앉혀놓고 돌아가지 못할 고향과 그리운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회령은 산골도 작은 마을도 아니었다. 그랬음에도 할아버지의 말에 그곳엔 깊은 숲과 거대한 계곡과 뛰어 노는 아름다운 동물들이 있었다.

할아버지 고향의 풀숲은 하늘보다 짙은 파란색이었다. 너무 짙고 울창해 파란 풀 그 속에 숨어 있는 메뚜기들은, 손으로 풀들을 스치기만 해도 한 손 가득이었다. 서로 몸을 부딪혀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많은 물고기가 사는 강과 바다에 낚시질을 가 메뚜기를 낚시 바늘도 아닌 못을 휘어 만든 바늘에 끼우면 담그기가 무서웠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낚싯대도 필요없었지만, 낚시질을 하는 재미를 위해 메뚜기를 잡았다.

어린 내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아주 먼 별나라나 동화 속의 이야기였다.

내 아버지의 고향은 충청북도 회인이었다. 겨울이면 노루나 고라니가 부엌에까지 들어와 찬밥을 훔쳐먹고, 부엉이 소리가 끝없이 들렸다. 여름 밤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에 나섰다가 수만 가지의 풀벌레 소리를 들었다. 졸리고 발이 저려 일어서면 일시에 울음을 그쳐, 세상에 이렇게 많은 벌레들이 있었나 놀라게 만들었다. 마을 옆을 흐르는 금강은 너무 맑아 어디서나 바닥을 볼 수 있었다. 강바닥엔 바위나 모래 위에 엎드려 입가심을 하는 물고기랑 그 곁을 기어가는 올갱이까지 하나하나 셀 수 있었다. 그러나 눈을 믿고 함부로 뛰어들면 안 되었다. 강이 3m 깊이인지 5m 깊이인지 알 수 없었다. 저녁이면 지는 해에 강이 금빛으로 빛났다. 강에 가까이 가면 강바닥이 모두 금으로 변해 있었다. 강바닥 가득 깔린 금이 눈이 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금빛 강물 위로 큰 소리개가 스쳐지나가며 펄떡이는 물고기를 어린 아버지의 코앞에서 낚아 올렸다. 대부분의 물고기가 소리개의 서슬에 정신을 잃지만, 배짱 좋은 물고기가 몸부림치며 펄떡이면 강 곁에 앉은 어린 내 아버지의 옷에 물이 튀었다.

난 웃었다. 아버지 앞이라 드러내고 웃지는 못했지만, 난 웃으며 아버지도 거짓말을 하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난 지금 내 조카들에게 말한다. 집 뒤에 있는 바로 저기 북한산 자락에만 가더라도 어디든 맑은 물이 흘렀고, 이제는 일급수에만 살아 보기조차 힘든 송사리, 피라미, 가재가 잔뜩 있었다. 그걸 잡느라 정신이 팔렸다간 하루 해가 짧았다. 소주 병, 사이다 병에 잡아온 피라미, 송사리는 어머니께는 골칫덩어리였고, 철없는 아이들을 둔 어머니는 거의 매일 불쌍한 물고기들을 하수구에 버렸다.

버스를 타고 서너 정류장만 가면 논과 밭이 있었고, 논에는 미꾸라지, 장구벌레, 물방개가 셀 수 없이 많았고, 벼 이삭마다 빈틈없이 잠자리들이 앉아 햇빛을 쬐고 있었다. 목이 마르면 엎드려 맑은 논의 물을 마시고, 길까지 내려온 꿩들을 쫓아 뛰었다. 한낮의 열기에 나비들이 개울에 내려와 물을 마시다가 내가 뛰어들면 놀라 모두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해를 가려 그늘을 만들 만큼 많은 나비들이 나는 모습은 불꽃놀이보다 아름다웠다.

내가 말하면 조카들은 웃는다.

“증말야. 저기 저 산 보이지?”

내 말을 증명하려고 창문을 열면, 친구들과 놀러갔던 산이 나무 대신 아파트를 빼곡이 세우고 있다.

“에이, 삼촌은…….”

그들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믿는다.

내가 내 할아버지의 말을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듯,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허풍이라고 생각했듯, 조카들의 웃음에는 ‘삼촌, 거짓말 하고 있어’라는 말이 감추어져 있다.

난 때로 두렵다. 지금 저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어, 내 아버지 나이가 되어 자기의 아이들이나 손주들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할 때, 대체 무엇을 들려 줄 것인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또 뭐라고 생각할까? 웃을까? 내가 그랬고, 내 조카들이 그랬듯.

난 내 조카들의 비웃음 같은 웃음에서, 이제야 할아버지의 파란 풀과 아버지의 투명한 강을 믿는다. 그것이 한치의 거짓이나 과장도 없는 말이었음을.

이제 지나는 사람조차 만날 수 없는 어느 깊은 산골도, 내가 살던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 안에 자리잡은 산기슭보다 더 황폐하게 변해버렸다. 내가 보았던 모든 산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돌아오는 곳곳마다 눈에 아른거리며 옛것들이 떠오른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 아이들의 아이들, 혹은 그의 아이들이 내 할아버지가 본 세상을, 아버지가 본 세상을, 아니 내가 본 세상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그 파란 풀숲과 금으로 가득한 투명한 강과 한꺼번에 날아오르던 수많은 나비를…….

 

 

 

한원준

현 민중서림에 근무.

저서 『감골에서 온 편지』, 『불임의 땅』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