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同志)

                                                                                         강호형

 아파트 정문 앞에서 차도를 건너 논둑길로 들어섰다. 자동차 한 대가 넉넉히 다닐 만한 넓이에 시멘트 포장이 말끔하게 돼 있는데다가 늘 한적해서 걷기에 기분이 좋은 길이다. 길 양쪽에는 곧 배동이 설 만큼 탐스럽게 자란 벼포기들이 사열받는 병정들처럼 늘어 서 있어, 직선으로 한 300m쯤 뻗어 있는 이 길을 지날 때는 열병식하는 장군이 되어 으스대도 아니꼽게 볼 사람이 없어 더욱 좋다.

논길이 끝나고 집 모퉁이를 돌아서자 서천아줌마가 배추를 한아름 안고 가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인사를 한다. 모시로 유명한 한산에서 이곳으로 시집와서 음식점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 집 단골손님이다.

구멍가게 앞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올라서는데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윤대장(大匠)이 두 손을 내밀며 반색을 한다. 내가 도자기에 금강경을 쓸 때, 발 물레로 그 항아리를 빚은, 요즘은 흔치 않은 도공이다. 나이가 환갑에 가깝지만 아직도 자기 공방(工房)이 없이 이곳저곳 불려다니는 터라 만난 지가 벌써 여러 해만이다. 윤대장이 탈 버스가 먼저 와서 그를 싣고 바람을 일으키며 멀어져 가자, 곧 내가 탈 버스가 왔다.

비좁은 읍내를 지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시원스럽게 달린다. 이윽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굴다리 밑을 지나자 서울시가 나온다. 이곳도 본래는 광주군이었지만 세월을 잘 만나 특별시에 편입되더니 차마(車馬)의 쾌속 질주에 제동을 걸며 인색하게 구는 폼이 상감의 총애를 받는 빈궁마마 같다. 시계를 보니 결혼식이 시작되는 두 시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다. 무더운 날씨지만 시간 넉넉하겠다 버스 안에는 냉방도 잘 되겠다 걱정할 것이 뭐람.

길은 4차선에서 8차선으로 넓어졌는데도 자동차들의 경주는 영 맥이 풀려 있다. 나는 남의 꼬리 물고, 남은 내 꼬리 물고 줄달음을 치지만 신통한 대표 선수도, 2군으로 처질 선수도 없는 지루한 경주다. 저만큼 노란 신호등이 보이는가 싶더니 빨간 불로 바뀌면서 차들이 멈췄다. 기사가 창문을 열고 옆 차로에 서 있는 버스 기사에게 큰 소리로 묻는다.

“어제 뭐했어?”

“고스톱 쳤지.”

“땄어?”

“내가 언제 따는 거 봤어?”

“또 깨졌어?”

그러나 이처럼 얼굴을 맞대고 말을 주고받는 것은 원시인들이나 하던 방식이다. 바로 옆자리에서, 난데없는 음악 소리가 방정맞게 울리더니 시골풍의 아직 덜 늙은 아저씨가 휴대폰을 꺼내들고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꽥꽥 소리를 질러댄다.

“뭐라구?”

“…….”

“그 새끼가 환장을 했나. 그게 말이 되는 소리여 시방.”

“…….”

“알았어. 내 금방 갈 테니까…….”

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변역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다. 이층 승차 대기장에서 내려다보면 우글거리는 인파가 개미 군단 같다. 신호등이 바뀌자 건너편 동서울터미널 쪽 인파와 강변역 쪽 인파가 우르르 몰려오고 몰려간다. 사람이 많을수록 나는 점점 외로워진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아는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외로움이 그들의 죄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외롭다고 그들이 방해를 받을 리가 없으니 자유로워서 좋다.

인파와 자동차 행렬이 강물처럼 흐르는 거리에는 성스러운 음악도 함께 흐르고 있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내게 샘솟는 기쁨 내게 샘솟는 기쁨, 내게 샘솟는 기쁨 넘치네…….”

음악의 진원지는 길가 공중전화 부스 옆에 놓인 동전 바구니 밑이고, 그 주인은 양쪽 다리 대신 허리께부터 자동차 튜브를 늘어뜨린 채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장애인이다. 그러므로 그는 동서남북에서 모여든 인파와 팔도강산에서 달려온 자동차들이 도도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이 도시에 ‘강 같은 평화’와 ‘샘솟는 기쁨’을 배달하러 온 공급자다. 그러나 이 거래는 항상 균형이 맞지 않는다. 수요자가 없기 때문인데,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관능을 자극하지도 못하는 ‘평화’와 ‘기쁨’이 인기를 끌 리가 없다. 더구나 그걸 공짜로 들어도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

성당 안은 벌써 하객들로 붐볐다. 주연상 받으러 나온 영화배우가 아닌가 싶을 만큼 우아한 남박사 부부와 남씨라는 것을 도저히 속일 수 없을 듯싶은 신랑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시계를 보니 아직도 30분이나 남았다. 금강산도 밥먹고 봐야 더 좋다니 밥부터 먹자.

식당에 아직 손님이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가서 보니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작취미성(昨醉未醒)으로 아침밥도 안 먹은 터라 주섬주섬 담아 들고 아무 식탁에나 끼여 앉아 먹다 보니, 저쪽에서 김선생이 부인을 동반하여 식사를 하다가 반가워서 손을 번쩍 들어 보이는데, 정작 나는 들켰구나 싶었다. 얼마 전에도 와 봤는데 나는 성당의 의식 절차에 익숙치 않아 지루했기에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둑 고양이처럼 성당을 벗어나 허둥지둥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다가 최선생을 만났다. 또 들켰구나. 아니나 다를까 “왜 벌써 가?”

할 말이 없어 머리만 긁적이다가 헌병에게 잡힌 도망병 꼴이 되어 성당으로 되돌아갔다. 식당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식이 끝났는지 아는 얼굴들이 속속 모여든다. 유유상종`─`문우회 동지들만 한 테이블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혼주와 새로 동지 결연식을 마친 신랑 신부의 인사까지 받았으니 잡혀오기를 썩 잘했다. 남박사야 내가 도망치다가 잡혀온 줄 알 리 없으니 꽤 의리가 있는 친구로 여길 테고…….

성내역에서 문여사가 떨어지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최선생마저 배웅하고 나니 나만 남았다.

인파는 여전한데 ‘평화’와 ‘기쁨’으로 약삭빠른 도시인들의 줄 끊어진 심금을 울려보려던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 동지 하나를 잃은 기분이다. 돈도 안 되는 수필 쓰는 나나 인기 없는 평화와 기쁨을 파는 그나 처지가 비슷하니 동지가 아니랄 수도 없을 것이다.

어서 버스나 타자. 면사무소 앞에 내려 굴다리 지나 논둑길 열병식 마치고 엘리베이터 타고 팔층에 내리면 거기 내 동지 하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30년이나 살을 비비며 살았으니 저도 동지 아니랄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오동지, 나 왔오” 하고 들어서면, ‘이 사람이 날씨가 더우니까 실성을 했나?’ 하고 눈이 휘둥그래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