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사(奉先寺) 가는 길

                                                                                                           백임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선사라고 하는 큰 절이 있다. 봉선사는 수양대군의 묘소인 광릉의 능사(陵寺)로 1469년 예종 때 세워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일제 말 춘원 이광수 선생이 한때 머물다 간 일화가 있어 교과서까지 그 이름이 실려 있어 웬만큼은 이름이 알려진 절이기도 하다. 절의 규모도 크거니와 무엇보다도 수목원인 광릉 내의 울울창창한 숲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경내의 풍광과 운치가 절 초입에 들어서기만 해도 일상의 잡념을 잊게 한다.

한 달에 두 번, 음력 초하루 보름이면 봉선사에 간다. 특별한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법당의 부처님께 배례하면서 가족의 안위와 돌아간 분들의 명복을 빌고 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나로서는 벼르고 별러서 시작한 것이다. 주변에 독실한 불교 신자가 많아 오래 전부터 권유를 받아 왔으나, 선뜻 내키지 않아서 차일피일 망설여오다가 이곳 의정부로 이사온 후 봉선사에 다니는 후배를 따라 나서게 된 것이다.

해가 거듭되어도 아이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그것이 아무래도 부덕한 어미의 소치인 것 같고, 전생에 어떤 죄업인 것 같기도 해서 어디엔가 매달려 나의 부덕과 죄업을 참회하고 간절한 소망을 기원해 보고 싶었다. 혼자 마음으로야 어느 한순간도 기도 없이 산 날이 없지만, 교회 한 번 안 나가고, 절 마당 한 번 들어서지 않으면서 기도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하늘에 밉보일 것 같았다.

입시철이나 고시 때가 임박하면 전국의 교회나 사찰에서는 수험생을 위해 특별 기도회라는 것이 있는 것으로 안다. 며칠 밤을 철야 기도로 세우다가 과로에 지쳐 쓰러지는 어머니들도 있고, 법당에서 백배, 천배 절을 하다가 혼절을 하였다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러한 소문은 모성의 극치로 세상에 전해지고, 그럴 경우 아이가 성공을 하면 감동적인 미담이 되어 만인의 상찬을 받곤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 또한 어미로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어머니들에 비해 너무 안이하고 무책임한 것 같아서다. 이곳으로 이사와서 후배의 권유를 선뜻 따라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평소에 가지고 있던 마음의 부담을 씻어 보고자 하는 보상 심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절을 찾은 것은 산 응달에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초봄이었다. 그러나 회색빛 잔가지들이 안개처럼 얽혀 있는 겨울 숲을 가만히 보면 보일 듯 말 듯 연녹색 봄기운이 감돌고 있어 어쩐지 희망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시작이 헛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되기도 하였다.

초행이었기 때문에 나는 절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약간의 불전을 봉투에 담고 아들의 이름을 썼다. 그리고 향과 초를 샀다. 후배가 하는 대로 큰 법당 앞에 있는 석탑에 두 번 합장하고 부처님이 모셔 있는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난방이 되지 않은 법당 안은 추웠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작은 염주를 손안으로 굴리며 수없이 절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썰렁한 방에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기구하는 절실한 소망은 무엇일까. 부처님을 향한 그 극진함과 겸허함이 돌아앉은 부처의 마음도 움직일 것처럼 경건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제단 중앙에 눈부신 금빛 부처님이 앉아 계셨다. 언제 보아도 평화로운 미소가 그윽한 대자대비한 모습, 세상의 모든 번뇌를 초탈한 듯한 지고지순한 표정은 중생의 구원이 그 속에 있을 것 같은 안도를 주었다.

처음에는 양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하는 자세로 수없이 절을 되풀이하였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빌었다. 부처님의 음덕으로 아들이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살 수 있는 마지막 길이 오로지 여기에 있는 것처럼 축원하고 또 축원하였다. 그러는 동안 알 수 없는 서러움이 가슴에 차오르며 눈시울이 젖어왔다.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왜 부처님 앞에 서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일까. 왜 서러워지는 것일까. 딱 짚어 설명할 수 없는 착잡한 심경이 가슴을 진동시키며 끝내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다. 일종의 회한 같기도 하고 참회 같기도 한 눈물, 그러나 울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요즘도 초하루 보름이면 거의 거르지 않고 봉선사에 간다. 어언 반년이 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향 피우고 절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돌아온다. 중생을 제도하는 불교의 가르침이나 심오한 진리와는 관심도 없이 순전히 기복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부처를 찾고 있는 행위가 때로 부끄럽고 회의가 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하다가 점차 불교의 교리에 접근하게 된다고 후배는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일에 쉽게 열중하는 성격이 못 되어 불교가 나의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는 날이 있을는지 기약할 수 없다. 다만 이렇게라도 꾸준히 다닐 생각이다. 이 세상 어디에 잠시라도 마음을 기댈 수 있고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오늘은 절에 가는 날이 아닌데도 절에 다녀왔다. 마음이 울적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자주 그런 날이 많다. 몸이 약해져서 마음도 허약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평일이라 경내는 한적했다. 예불을 올리는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가 다른 때 없이 그윽하고 고즈넉했다. 갖가지 수목이 잘 가꾸어져 아름다운 절 뜰을 이곳저곳 혼자 돌면서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서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오늘 왜 우울한가도 되새겨보았다. 상황은 항상 비슷한 일상인데 어느 날은 어둡고 어느 날은 괜찮다. 그렇다면 그것은 마음의 파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인생에 거는 어떤 꿈도 환상이라는 것을 일찍이 체험으로 터득하고 살아 온 사람이다. 그러나 수양이 부족하여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에서 대범하지 못하다. 자신 없고 불안하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욕심과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집착과 미망을 버리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면 희로애락의 부질없는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어쩌면 이러한 마음마저도 버려야할 헛된 욕심인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조금은 기분이 밝아진 것 같다. 정말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집착을 버리는 일일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봉선사 가는 길은 내가 원하는 무엇을 얻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니고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무용한 탐심을 한 가지씩 버리러 가는 무심한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