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인(乞人)의 손

                                                                                                金素耕

 아침 나절 지하철에서 앉은걸음을 하는 장애인이 동냥을 하고 있다. 롤러가 달린 나무썰매에 앉은 남자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앞으로 나간다. 출근시간이 아니어서 거동하기는 수월해 보이지만, 동냥 그릇으로 적선의 손길은 별로 가지 않는다. 행색이 초라한 그는 그런 바구니를 밀어 놓고 썰매를 지치듯 움직인다.

모르긴 해도 그는 어린날 얼음을 지치면서 썰매를 타 보았을 것이다. 그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기에 지금 손으로 땅을 짚고 다닐까. 장갑 한 짝 끼지 않은 손이 험하기 짝이 없다.

지폐 한 장을 바구니 안에 넣어 주었다. 그는 아무런 표정 없이 또 앞으로 나간다. 앞을 못 보면서 구걸하는 사람도 지폐는 우선 챙기던데, 이 사람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몇 걸음 더 가서 동전 몇 닢이 들어가는데도 역시 반응이 없다. 적선을 구하는 것도 그에게는 직업이라면 직업일 터인데, 어찌해서 저렇게 표정이 굳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당장 어떤 위험이 와도 방어를 할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힘든 몸짓으로 계속 구걸을 하고 있다. 그의 손은 그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도구이다. 장갑도 없이 땅을 쓸고 다니는 손, 그 손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그의 처지가 딱하면서도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는 것 같은 모습이 좋아 보이질 않았다.

음성 꽃동네에서 보내오는 인쇄물에는 동냥을 할 수 있는 것만도 축복이라고 적혀 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최악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맨손으로 땅을 짚으면서 구걸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모습이 축복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도 고단한 몰골이다. 애완견의 발만도 못하게 대접받는 그의 손은 언젠가는 기능에 이상이 올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답답한 심정으로 내리는데, 저쪽 칸에서 그 남자가 내린다. 다음 차를 기다리는 것인지 잠시 쉬고 있는지, 한참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바구니 안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고생스럽겠다고 말을 건넸더니 바구니를 앞으로 내민다. 나는 또 지폐를 넣으면서 장갑을 사라고 했다.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 그의 험한 손을 본 내 심정을 이야기했는데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아무 말이 없다. 사람들에게서 동정을 받으면 고맙다는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역시 무표정으로 대꾸가 없다. 혹시 말을 못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다. 순간 나는 내가 그에게 한 행동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 분간이 서질 않았다. 몇 마디 당부를 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답답할 뿐이었다.

언젠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일본의 노숙자들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니어서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우리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면서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남을 의식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높이는 태도가 아닐까. 한뎃잠을 자는 처지에 넥타이를 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뭐 있겠느냐 싶기도 하지만, 그 나라 국민성을 보는 것 같았다.

걸인은 예나 지금이나 또 어디를 가도 있었다. 하지만 하반신을 못 쓰는 것과 같은 불구의 걸인을 전에는 본 적이 없다. 어릴 때 내 기억 속에 걸인은 남루한 차림으로 끼니 때면 대문으로 와서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면 집안에서는 군말 없이 음식을 내 주었다. 제 발로 걸어다니던 그들은 음식을 받아 들고 으레 절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구걸하는 것도 제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돈을 가로채는 사람이 뒤에 있다는 말이 있고, 그것이 조직화되어 집단적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말을 들은 후 나는 가방 안에 먹을 것을 넣고 다닌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 대신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인데, 내가 이런 것을 주면 그들도 고맙게 받아 먹는다.

맨손으로 땅을 쓸고 다니는 남자도 어떤 조직에 의해 혹사당하는 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가방 안에 장갑을 넣고 다니다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 주는 정도다. 땅을 쓸고 다니는 걸인의 손`─`그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인데, 그가 좀더 자신을 아낄 줄 알면서 구걸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