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대하여

                                                                                                    최민자

 나는 늘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며 살았지.

새 시집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조촐한 모임에서 여학교 은사이신 노(老) 시인이 말했다. 애틋하고 절절한 마음을 삭히고 가라앉혀 환(丸)을 빚듯 시를 쓰며 평생을 살아왔다는 시인의 눈빛이 잔잔해 보인다. 주름진 얼굴 위에 엷은 미소가 스쳐간다. 그렇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그리움에 바쳐진 수많은 시간을 그리워하는 눈빛이었다.

누구를, 무엇을 그리워하며 살았느냐고 나는 묻지 않았다. 그의 시 속에 함축된 쓸쓸한 애수가 가슴 속 내밀한 그리움 때문임을 안 이상,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따위는 이미 진부한 호기심일 터였다.

그리움. 그것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백이다. 산사의 아침처럼, 검불 하나 없이 비질해 놓은 고요한 빈터에 일렁이는 바람이다. 한 줄기 바람에도 파문이 이는 잔잔한 호수다. 제 얼굴을 스치고 툼벙 가라앉은 낯모르는 돌멩이도, 무심히 날아가 버린 새 그림자도 오래오래 반추하는 속 깊은 물이다. 아니면 그 물빛 사이로 흘러가는 뜬구름의 넋이다.

마음이 흐르다 머무는 곳에 그리움이 고인다. 여울물처럼 소리내어 흐르다가 우물처럼 가라앉기도 하고, 미풍 한 자락에 출렁이는 소용돌이었다가 침묵으로 잠잠히 가라앉기도 하고, 바람인 듯, 물인 듯, 구름인 듯 스쳐가는 알 수 없는 향기가 그리움 아니던가.

그리움은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열정의 불꽃을 잠재우고 지그시 견디어야 하는 황홀한 슬픔이다. 아릿한 감미(甘味)다. 그리움에는 열망이 섞이지 않아야 한다. 닿지 못할 것에 대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은 마음자리를 산란하게 한다. 펄펄 끓고 있는 뜨거운 물로는 차맛을 제대로 우려내지 못한다. 귀때그릇에 물을 부어 적당한 온도로 식힌 다음에 찻주전자에 옮겨 넣어야 맑고 향기로운 차가 우러나듯, 사랑이 익어 그리움이 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열정은 식히고 갈망은 가라앉혀야 비로소 아련한 향기가 난다. 그리움에도 품격이 있다 할까. 그리움이 향이 되고 시가 되려면 천천히 눈을 감고 기다릴 일이다.

그리움은 휘발성이다. 후미진 가슴 안에 응축되어 있다가도 시나브로 허공중에 피어오른다. 그리움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으면 추억을 꼭꼭 여며 봉인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는 일에 지쳐 있을 때, 현재나 미래에서 아무런 위안을 얻지 못할 때, 홀로 익어 숙성된 귀한 술 같은 지나간 날의 향기에 취해 볼 수 있다. 알싸한 취기에 젖어들어 한바탕 몸살을 할 때마다 그리움이 텅 빈 충만임을 아프게 깨닫게 될 것이다. 찬 듯 허전하고, 빈 듯 차오르는 썩지 않는 슬픔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갈꽃이 바람에게

애타게 몸 비비는 일이다

저물녘 강물이 풀뿌리를 잡으며 놓치며

속울음으로 애잔히 흐르는 일이다

정녕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은

산등성이 위의 전설이

여윈 제 몸의 안간힘으로

안타까이 햇살에 반짝이는 일이다.

 ─ 김영석 시, ‘그리움’ 전문

그리움이 향이 되고 시가 되게 하는 데에 나는 번번이 실패를 하였다. 누구를 좋아하면 뜻밖에도 격정적이 되어 버리는 나는 그것이 제대로 발효되고 숙성될 때까지 진득하게 참아내지 못한다. 끓어 넘치거나 차게 얼어 어떻게든 끝장을 내버려야 하는 성 마른 기질 때문이다. 그리움은 내게 힘이 되지 못했다. 창조적인 원동력이 되지도 못하였다. 마주보는 일을 열망한 나머지 목적지도 이정표도 잃고 말았다. 너무 젊었던 탓일 것이다.

내 안에 그리움이라 이름 붙일 만한 편린들이 아직 남아 있는가 더듬어 본다. 독한 열병과도, 무의미한 자기최면과도 같던 빛나던 시간들은 이제 담담한 빛깔로 퇴적되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바래고 부서진 마른 꽃잎처럼 향기도 빛깔도 잃어버린 기억의 잔해만이 수석에 박힌 불연속 무늬인 양 희미하게 떠 보일 뿐이다.

추억이 없는 삶은 종교가 없는 삶처럼 허전하기도 하고 황량하기도 하다. 말라가는 풀 내음 같은 그리움으로 되새겨 볼 기억이 있다면 가는 세월이 덧없지만은 않을 것 같다. 희망이 일상의 추진력이 되듯 그리움도 삶의 에너지가 된다. 땅 속에 묻혀 있는 동식물의 유기체가 훗날 훌륭한 화석 에너지가 되듯, 빛바랜 기억들이 때로는 거대한 분출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무엇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만큼 시가 되고 음악이 되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일이 어디 그리 흔할 것인가.

 

 

 

최민자

수필공원으로 등단(98년).

공저 "사계", "마루가 있는 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