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붉은 잎새

                                                                                                       윤삼만

 가을이 가고 있다. 찬바람이 불어온다. 여러날 벼르다가 오늘은 대청소를 했다. 세간을 들어내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었다. 도배도 하고 장판도 새로 깔았다. 아내는 세간을 정리하고, 나는 유리창을 씻고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은, 월아산 장군봉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있는 삼간 초가였다. 낮은 언덕 아래 개울이 흐르고, 마당가에는 남새밭이 있었다. 마루가 있고, 창호지를 바른 격자문, 머름대 위에 문살이 촘촘한 창문도 있었다. 온통 흙벽이었던 그 집은 아늑하고 포근하기가 어머니 품속 같았다.

어리던 나는 두 형과 할머니 방에서 삐댔다. 우리 삼형제는 할머니와 한 이불 밑에서 잤다. 형이 당기면 내가 끌고, 내가 당기면 형이 끌고, 이불은 밤새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할머니께서 장난을 치지 말라고 타이르지만 소 귀에 경 읽기다. 새벽에 일어나 보면 사람은 흩어져 자고, 이불은 구석에서 혼자 자고 있었다.

때때로 할머니께선 창문을 열어젖히고 긴 담뱃대로 담배를 피우시면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곤 하셨다. 무엇을 그렇게 바라보고 계시느냐고 물으면, “창을 ‘요오렇게’ 내다보면 하늘에 계시는 옥황상제가 보이거든” 하셨다.

“안보이는데?”

“파르름한 하늘베로 가렸거든.”

나는 그 뒤에도 몇 번이나 창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말씀하신 옥황상제는 보이지 않았다. 한 송이 흰구름만 흘러가고 있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 때에 세간을 나게 되었다. 전셋집은 그림의 떡이었다. 가진 돈에 맞추면 교통이 불편하고, 교통이 좋으면 돈이 모자랐다. 뒷골목 안에 있는 단칸방을 얻어 신접살이를 났다. 방엔 창이 없었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문득 훈련소 내무반 생활이 떠오른다. 제주도 훈련소는 산방산 자락에 있었다. 큰 종이에 바늘구멍을 뚫어놓은 듯, 환기창이 바꼼바꼼한 막사가 늘어 서 있었다. 그 큰 막사에 겨우 네 개밖에 없는 그 환기창은 작아서 얼굴도 내밀 수 없었지만, 그래도 고된 훈련을 마치고 자리에 누우면 홀쭉한 눈으로 그 창을 바라보곤 했다.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고향 바람과 그리움만 드나들었다.

지긋지긋한 구보, 몽둥이 세례를 받던 날도 나는 자리에 누워 단춧구멍 같은 창을 쳐다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었다. 창을 쳐다볼 수 있는 자리가 내게 주어진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었던가. 그 막사 안에서 부글거렸던 홀쭉이들, 전우가 되어 6·25의 포연 속으로 떠나간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고향을 떠날 때, 아버지께서는 따로 내 집을 지어주졌다. 긴 처마를 드리운 마루, 큰 방엔 작은 봉창이 있는 집이다. 창에 해가 들면 방은 환하고 아늑했다. 지붕엔 징검다리를 놓고 호박덩굴이 서리를 맞으며 누런 호박으로 되살아나고, 남새밭의 고추는 빨갛게 익어 탐스러웠다. 하얀 들찔레꽃이 필 때쯤이면 움에 두었던 고구마도 싹이 텄다.

그땐, 대나무에 둘러싸인 양지바른 산기슭이었다. 울타리 밖엔 아름이 버는 은행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휑하니, 아스팔트길이 생기면서 대밭도 은행나무도 도시의 끝에 묻혀 버렸다. 내가 걷던 길을 밀어내고 이제는 시내버스와 승용차가 줄을 잇는다. 골목길을 따라오던 달마저 먼눈을 품으며 서글퍼한다.

집은 손때가 묻을수록 삭았다. 지붕은 기와로 갈고, 구들은 기름 보일러로 고쳤다. 기둥과 들보엔 꺾쇠를 걸고 잔손질을 한다. 부엌은 입식으로, 뒷간은 수세식으로, 봉창은 유리로 더 크게 만들었다. 여기를 손보면 저기가 보인다.

세간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끝없이 나를 업그레이드하였다. 라디오, 휴대폰, 컴퓨터, 텔레비전, 전기 밥솥, 자동세탁기, 생소한 이름들이 들어앉아 집은 속이 울렁거린다.

“당신 왜 그러고 있어요? 창만 닦다가 해 지울 거예요.”

내가 영 굼떠 보였는지 아내가 채근했다. 어느 새 그늘이 설핏 기울었다. 늦가을 해는 언제나 혼자 바쁘다.

온종일 부산을 피운 덕에 몸이 노곤하다. 방에 누어서 창을 본다. 참 오랜만에 보는 허공이다. 소스라치게 파란 하늘이 가득하다. 옥황상제가 보이던 할머니의 하늘은 어디 있을까. 지대한 공간을 막고 다시 무한에 통하는 텅 빈 가슴으로 산이 들어온다. 저 산엔 진달래 곱던 날이 있었다. 보슬비 소쩍새 따라 울던 날도 있었다. 한때는 오직 초록빛으로 살리라 맹세도 했었건만…….

때 되면 가고 때 되면 오는 것, 계절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산이 붉다.

잎새는 새 생명을 잉태하는 신열을 앓으며 온몸이 붉게 익는다. 그는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낙엽이 된다. 살다가 흙이 되어 다시 생명이 되는 섭리를 그는 안다. 낙엽은 우주의 가장 큰 법칙을 안다고 시인 릴케는 말하지 않았던가.

생명은 자연의 순환이고 무한의 시공에서 형질이 바뀔 뿐이다. 우주가 삶과 죽음이 공유하는 커다란 집일진대, 내 몸은 내 영혼이 사는 작은 집일 것이다. 언젠가는 새 영혼을 보듬고 태어나기를 위해서는 나는 곱게 물들어가는 작은 잎새일 것이다.

회색 바람이 분다. 저녁 놀에 낙엽이 지고 있다.

 

 

 

 천료 소감

 

오늘은 하얀 달빛 아래 친구들과 참외 서리하다가 원두막에 있는 주인에게 들킨 기분이다.

칠칠맞지 못한 세월이 흰 머리카락을 시도 때도 없이 떨궈 놓고 간다. 간 만큼 올 날이 적다는 의미인 것 같다.

끝이란 새로운 시작이다. ‘천료 소감’이란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서약서가 아닌가. 세월은 붙잡아 놓고, 부지런히 할 수밖에 없다. 여긴 정년도 없으니.

이 길로 가게 이끌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윤삼만

 

전 사천초등학교 교장. 경남 서예대전 초대작가.

한시 동호회 ‘晉州詩社’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