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 회 추천 -

 중랑천 왜가리

                                                                                             김문주

 녹천역을 벗어나면서 전철의 속도가 빨라진다. ‘오늘도 볼 수 있을까?’ 왼쪽 창 밖을 향한 두 눈에 기대감이 몰린다.

기찻길을 따라 우뚝우뚝 도열해 있는 몇 채의 아파트 건물들이 한 묶음으로 엮어져서 물러가니 풀어놓은 할머니의 허리끈 같은 중랑천이 쓱 다가온다.

‘아! 있다 있어. 한 마리 두 마리… 와! 오늘은 다섯 마리네!’

기대감에 이어지는 반가움. 세 마리 이상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다섯 마리다. 무슨 의논이라도 하는 듯 가늘고 긴 다리를 물 속에 담근 채 모여 서 있다.

긴 주둥이와 가느다란 목과 다리. 백로과에 속하지만 흰털의 백로와 달리 뿌연 회색의 몸통으로 인해 얼른 눈에 뜨이지 않는 새. 우리 나라의 하천 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 새인 왜가리이다.

덜컹대며 앞으로 내닫는 전철의 뒤로 조금씩 멀어지면서 작아지는 새들의 모습. 그 모습을 따라 나의 고개가 점점 왼쪽으로 돌아가는데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전철이 나란히 흐르던 물줄기를 멀찍이 밀어낸다. 순식간에 새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전철은 주저없이 월계역으로 들어선다. 일 분 남짓한 새들과의 짧은 만남이다.

양주군에서 발원하여 의정부를 거쳐 서울의 북쪽 지역을 지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중랑천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시커멓게 썩은 물이 흐르는 죽은 하천이었다. 그런데 이삼 년 전부터 하천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저렇게 오염된 물에서 고기가 잡힐까? 설령 잡힌다 해도 먹을 수 없을 텐데…….’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들이 한심하기도 하고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부정적인 시각과는 상관없이 하천을 따라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자꾸 늘어갔다.

하천 양변을 따라 드리워지는 낚시대가 늘어나면서 자연 중랑천의 수질에 호기심이 생겼다. 전철을 타고 지나거나 자동차를 타고 동부간선도로를 지날 때 유심히 건너다 본 중랑천은 실제로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썩은 하천이라고 외면하고 다닌 사이 물은 바닥이 보일 만큼 깨끗해져 있었다. 간간이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일 년 반쯤 전이었다. 지금처럼 전철을 타고 녹천역과 월계역 사이를 지날 때였다. 달리는 창 밖으로 낯선 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하천 한복판에 긴 다리를 물에 담그고 서 있는 회색빛 새의 모습이 백로와 비슷했다. 신기했다. 문득 텃새가 아닌 철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같은 장소를 지나면서 다시 보았다.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서 제 갈길로 훨훨 날아가 주기를 바랬다.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달이 지나도록 그 새는 언제나 발을 물 속에 담근 채 거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때론 두세 마리가 보이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그 새가 길을 잘못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찾아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백과사전을 통해 새의 이름이 ‘왜가리’라는 것과 몇 가지 습성을 알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가장자리를 흐르는 하천에 철새가 날아든다는 사실이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곳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새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만나지 못하고 지나치는 날은 혹시 떠난 것이 아닐까 하여 궁금하고 허전했다. 가끔 새들은 회색빛 날개를 한껏 펼치고 물 위를 날기도 했다. 저들을 향한 나의 관심에 대한 답례의 비행 같은 몸짓, 그 모습은 마치 나를 위해 나는 것 같았다.

하천 양쪽의 즐비한 아파트 건물들이 칙칙한 잿빛 숲을 이루고 있는 중랑천에 날아든 왜가리. 비록 일주일에 한두 번 일분간의 스치듯 짧은 만남이지만, 저들은 더러운 찌꺼기들을 모두 걸러내고 본래의 맑은 물줄기를 회복하면 떠났던 새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새들도 날아든다는 평범한 사실 하나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온갖 범죄로 인한 불신이 교차하는 세상에서 적응이라는 보호막을 두르고 영악해진 나, 욕심으로 얼룩진 내 안의 때를 모두 씻어내면 그때에는 내게도 어떤 귀한 손님이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