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한 길을 따라서

                                                                                                    金泰吉

 1982년에 서울대학교의 전임 자리를 얻었을 때, 나에게도 연구실이 배정되었습니다. 박종홍 선생께서 대학원장으로 가신 뒤에 비워두었던 방을 차지하게 된 것이지요. 말끔히 청소를 하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더구요. 아내에게 상의했더니 부엌일 돕는 아가씨를 데리고 가서 시키면 된다고 간단하게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당시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서 대학 교수들 집에서도 대개 일 돕는 사람을 두게 되었거든요.

그렇지만 같은 또래의 여대생들이 왔다갔다 하는 자리에 데리고 가서 청소를 시킨다는 것이 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 끝에 내가 직접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비로 쓸고 물걸레로 닦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팔을 걷어 붙였지요. 그런데 연구실이 있는 이층에는 수돗물 나오는 곳이 없어서 그 점이 좀 어려웠습니다. 물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거든요.

물이 들어 있는 양동이를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을 때, 남학생 하나가 달려와서 내 양동이를 빼앗았습니다. 빼앗으며 말했습니다.

“교수님, 체통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지 오래 안 되는 철학과 학생이었습니다. 군대에서 장교가 제 손으로 구두를 닦으면 졸병들 눈에 못난 사람으로 보인다며, 교수는 교수로서의 위신을 지키라고 신신 당부했습니다.

대학원 학생과장 일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사무직원이 제법 큰 테이블과 회전의자를 가리키며 그것이 내 자리라고 하더군요. 빼빼 마른 체격이 그 자리에 앉아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공연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말끝마다 ‘과장님’, ‘과장님’ 하는 호칭도 듣기에 쑥스러웠구요.

1970년대 후반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설립 준비위원장의 직책을 맡았을 때는 내 처지가 더욱 어색했습니다. 그 자리가 ‘장관대우’를 받게 되었다며, 이번에는 정말 큰 테이블과 호화로운 회전의자에 앉으라고 밀어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더욱 불편하게 한 것은 운전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였습니다. 그 차를 타고 가다가 서울대학교 교수들의 통근 버스와 마주칠 때는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목이 움츠려지곤 했습니다.

‘장관대우’에게 비서실은 필수적이었습니다. 큼지막한 부속실에 젊은이 두 사람이 늘 대기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들에게 시킬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손님에게 차를 내는 일과 전화를 연결하는 일이 고작이었지요. 밖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비서를 통하도록 장치가 되어 있었지만, 내가 전화를 걸 경우에는 내 손으로 직접 하는 편이 도리어 편할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 시간도 절약되고 상대편에게도 덜 미안할 것 같아서 내 손가락으로 직접 전화번호를 누르곤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식사를 대접할 때는 대개 보자기처럼 큼지막한 종이 냅킨을 줍니다. 식당에서도 그 비슷한 것을 주는 곳이 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그것으로 입가를 슬쩍 닦은 다음에 척척 접어서 식탁 위에 품위 있게 놓아두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채곡채곡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습니다. 콧물이 나올 때 나누어서 휴지 대용으로 쓰기 위해서지요. 화장실에서도 손의 물을 닦기 위한 일회용 종이 수건을 버리지 않고 호주머니에 저장합니다. 궁상맞은 짓인 줄 알지만 버릇이니 도리가 없습니다.

그 궁상맞은 버릇의 덕을 톡톡히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 계림(桂林)에서 일행이 유람선 타는 곳에 도착했을 때, 승선(乘船)까지에 30분 가량의 시간 여유가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용변을 동시에 해결할 심산으로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깨끗한 수세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용변 후에 살펴보니 아무 곳에도 휴지가 없었습니다. 그 당황스러운 순간에 생각난 것이 비행기에서 아껴두었던 종이 냅킨이었습니다.

 

기념식이니 시상식이니 하는 행사에 참석해 보면 대개 단상과 단하의 구별이 있습니다. 단상은 이를테면 소수의 높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나는 대개 단하에 앉게 되는데 마음이 편안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단상으로 올라가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왼쪽 가슴에 꽃송이까지 달고 올라가라고 합니다. 나에게는 그 상황이 어색하고 그 시간이 지루합니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이야기는 그 밖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못났다는 사실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이 없습니다. 잘난 사람은 그 잘났음을 지키기 위하여 항상 신경을 써야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부담이 없어서 도리어 마음이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