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金時憲

 외출을 하려면 세 가지 방법이 다 동원된다. 발로 걷는 것, 버스를 타는 것, 지하철을 타는 것 등이다. 서울에서 안양으로 이사를 와서 다섯 달이 된다. 외출 목적지가 대부분 서울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걸음이 많이 느려졌다. 산에 둘러싸인 자연 환경의 영향이기도 하고 나이 때문이기도 하다. 느릿느릿 걸어나오면 10분 이내에 버스 정거장에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 지하철 역이 나온다. 그 20분이 내게는 많이 상쾌하다. 올막졸막한 가정집과 삐죽삐죽 솟은 고층 건물 위에 터진 하늘이 시원하다. 구름이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으면 청명해서 좋다.

수증기가 올라가서 구름 떼를 만들고 그것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들녘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동물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예술가의 헝클어진 머리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 변화를 과학 아닌 신의 조화로 관찰하는 것은 재미있다. 세상을 온통 과학 일색으로 보는 눈은 너무 단조롭다. 신비스러운 것, 불가사의한 것들이 있어서 오히려 입체감을 준다.

마침내 지하철 역에 도착한다. 금정역, 범계역이 안양시의 출입구가 되고 있다. 역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으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모두 바쁘다. ‘왜 저렇게 바빠야 하나’의 반발이 은근히 살아 나온다. 그래서 우정 나는 천천히 걷는다. 하늘도 보고 산도 보고 오고가는 열차도 본다. 큼직한 벌레가 몸을 엎드리고 바쁘게 달리는 것 같다.

열차 안에 올라 타면서 나는 좌석에 신경을 보낸다. 여간 서둘지 않으면 재빠른 사람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자리를 얻지 못할 때는 어슬렁어슬렁 노인 좌석으로 발을 옮긴다. 공짜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언제부턴지 모르게 좌석에 욕심이 생겼다. 70 고개를 넘어간 연령 때문인 것 같다.

노인석 가까이 가면 청년 아니면 아가씨가 바쁘게 자리를 양보해 준다. 그때는 무조건 그들이 착해 보이고 진실해 보인다. 서울 사람들은 반드시 “고맙습니다” 하는데 나는 아직도 “감사합니다”가 나온다. 습관은 무섭다. 10년을 살았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좌석에 앉고부터 마음을 정돈한다. 잡념이 나오기 전에 착수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잡념은 백해 무익이다. 신경이 피로해지고 마침내 육체까지 피로해진다. 그래서 의식의 여행을 떠난다.

머리에 있는 의식을 가슴, 배, 다리로 내려서 땅속으로 보내는 작업이다. 의식이 가는 길 앞에는 장애물이 없다. 그러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몸에서 빠져 나간 의식은 의식일 뿐 생각은 없다. 생각할 줄도 모른다.깊은 곳까지 내려간 의식은 그곳에서 물체화한다. 자연 상태가 된다고 할까. 흙 속일 때는 흙이 되고, 물 속일 때는 물이 된다. ‘나’이면 ‘나’가 아닌 전체가 된다. 무화(無化)라고 할까.

우주 안에 큰 생명이 흐르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 생명을 에너지라 하는 사람도 있고, 기(氣)라 하는 사람도 있고, 종교에서는 부처님, 하느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나는 그것을 큰 생명으로 보고 싶다.

그 큰 생명이 우주 안에 꽉 차 흐르면서 다른 작은 생명에게로 연결이 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생명을 작은 생명과 연결을 시킨다는 주장은 불가사의한 의문도 준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나도 옛날에는 믿지 않았다. 과학 이외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즘 와서 있을 수 있는 일로 믿어져 간다.

서로가 당기는 힘이 있고 반대로 밀어내는 힘이 있다. 그것들이 엉켜서 움직이는 현상이 에너지, 아니면 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독교 신자가 기도 때 지극한 소원을 가지면 하느님의 응답이 온다고 한다. 그것은 서로가 당기는 작용임에 틀림없다. 기적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많이 따진다. 나도 옛날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니 과학만의 단순에 싫증이 난다. 신비주의에 떨어졌는가 하는 의문도 가지만, 떨어지면 어떠랴?

소년 때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 모르는 세계가 아름답기도 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장막이 걷어지고 속이 환하게 보이게 되었다. 다 보인다는 것은 다행보다 불행 쪽에 가깝다. 안개 같은 장막이 있어야 살맛이 난다고 할까?

그리하여 노력 끝에 나는 신비주의자가 되었다. 땅속으로 여행을 간다는 것도 바로 그것 아닌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고 나무랄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시간이 생기면 나는 의식 여행을 떠난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하늘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바위를 뚫기도 하고 달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이 내게는 즐거운 것을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