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無所有

                                                                                              李尙圭

 오늘은 모처럼 도봉산을 올랐다. 감기 기가 있어서 산행이 어떨지 다소 염려스럽기도 하였지만, 막상 나서고 보니 그런대로 걸을 만하였다. 산길에는 벌써 낙엽이 쌓이고, 헐벗기 시작한 나무들은 겨울 채비라도 하듯이 몇 잎 남지 않은 잎들을 마구 떨구고 있다.

선인봉을 향해서 한참을 올라가려니까 멀리서 목탁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면서 천축사가 가까워짐을 알려주었다. 도봉산 길은 등산을 즐기던 30여 년 전에 자주 다니던 곳이라서 낯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척 정답게 느껴졌다. 등산길을 좀 다듬어 놓은 것을 빼고는 거의 옛 모습 그대로였다. 집채 같은 바윗덩어리, 아람들이 참나무와 졸졸 흐르는 개울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천축사에서는 사시(巳時) 불공이 한창이었다. 법당에 들려 예불을 마친 다음, 곧장 무문관(無門關)에로 원공(圓空) 스님을 찾았다. 인기척조차 없이 조용한 무문관의 뒤로 돌아 조그마한 외짝 문을 노크하니, 안에서 스님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린다. 예나 같은 모습의 스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으시면서 큰절을 하려는 우리를 한사코 만류하고 서로 반배(半拜)로 끝내자고 하신다. 거추장스런 일은 쑥스럽고 싫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반배를 한 다음 앉으려니까, 스님께서는 대추차를 끓여 놓았다고 하시면서 부엌 아닌 부엌으로 나가시더니 커다란 주전자 하나와 컵 세 개를 들고 오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컵이란 것이 하나는 스테인레스로 된 등산용 컵이고, 다른 두 개는 종이컵이다. 스님은 손수 주전자를 들고 종이컵에 대추차를 따라 주시면서, 종이컵을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은 아깝지만, 여러 사람들이 마시는 컵을 그대로 돌릴 수도 없어서 손님에게만은 종이컵을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분의 성품대로다.

불가(佛家)에서는 무소유(無所有)의 마음가짐을 강조하지만, 특히 출가승(出家僧)의 경우는 무소유의 규범이 강하여 삼의일발(三衣一鉢)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즉, 옷 세 벌과 발우 하나면 족하다는 뜻이다. 탁발(托鉢)도 무소유의 관념과 연관된 것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그것들을 챙기고 간수하느라 그에 매이게 되고, 나아가 갖게 되면 더 가지려는 마음이 생겨 수행에 걸림이 된다는 것이다.

원공 스님의 방은 문자 그대로 무소유를 보인 수행승(修行僧)의 거처였다. 네 평 반쯤 되어 보이는 방은 모든 벽과 천장이 한지로 정결하게 도벽이 되었고, 그 방안에는 손수 짠 엉성한 침상 하나와 겨우 책 몇 권을 올려놓고 볼 만한 책상(?) 하나가 놓인 것이 전부였다. 그 책상이라는 것도 이름이 책상이지 나무 몇 토막을 이어서 만든 책상 같은 것이다. 그 책상에 쓸 의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침상에 앉으면 그곳이 곧 의자인 셈이다. 그 흔해 빠진 벽걸이 시계 하나가 없고 심지어 달력조차 걸린 것이 없다. 해가 뜨면 아침이고 해가 지면 저녁이지, 구태여 날짜와 시간을 셈 하면서 그것에 매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단출하기 짝이 없는 속에서 오히려 충만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소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열두 시 반쯤 되자, 스님은 점심 준비를 할 테니 함께 먹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살 한 분이 시골에서 올라오며 집에서 띄운 청국장을 가져왔는데 그것을 끓여보자고 하시면서 부엌으로 나가신다. 같이 간 내자가 함께 따라나섰다. 부엌이래야 한쪽에는 수세식 화장기가 있고, 그 반대편에 취사도구가 몇 개 놓인 것이 전부이다. 그러니 그곳은 화장실이면서 부엌인 셈이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스님은 밥이 다 되었다고 하시면서 압력밥솥 채 들고 들어오시고, 그 뒤를 따라 내자는 청국장을 끓인 냄비와 김치 주발을 들고 왔다. 그런데 막상 놓여야 할 밥상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의아해 하는 눈치를 채신 스님께서는 밥상도 거추장스러워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밥 그릇과 국 그릇도 따로 없다. 스테인레스로 된 사발에 밥을 뜨고 거기에 청국장 찌개와 김치를 얹어서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셋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젖으면서 풍성한 점심을 든 것이다. 정말 모처럼 맛이 있는 점심을 들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고 하지만, 그 뜻을 참으로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가진 것에 매이지 않고 가질 것에 마음을 쓰지 않는 가운데 마음의 평안이 가득한 것 같다. 입으로는 쉽게 ‘무소유’를 말하지만, 실제로 무소유를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런 예를 보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오늘 원공 스님의 처소에서 참된 ‘무소유’가 무엇인지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변호사. 대한변협 변호사 연수원장. 전 문교부차관. 고려대 법대 교수.

저서로 『미행정법론』, 『신행정법』, 『행정쟁송법』 『금강경의 세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