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강호형

 모처럼 만나 술잔을 부딪치며 ‘우정은 건재’를 확인해 마지않던 친구가 돌연 시비 아닌 시비를 걸고 나섰다.

“자네, 그 담배 아직도 못 끊었어?”

물론 악의로 하는 말이 아닌 줄은 알면서도 좋던 기분이 조금 상하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손가락 사이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담배가 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친구는 하루에 두 갑이나 피우던 담배를 매몰차게 끊어 버리더니 기회 있을 때마다 그걸 자랑삼아 나의 우유부단을 야유해 오던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담배의 치명적 해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걸 끊기까기의 무용담을 입가에 거품이 일도록 늘어놓더니 결론삼아,

“그 담배 당장 끊지 않으면 제 명에 못 죽어!”

이렇게 사뭇 협박에 가까운 선고를 내리는데 그 어조가 부장판사님 못지않게 근엄했다. 담배가 해롭다는 걸 난들 몰라서 못 끊나? 또 그 잔소리만 해도 그렇지, 집에서 아내에게 들은 것만으로도 이미 귀청에 못이 박혔는데, 한때 가장 미더운 애연 동지(愛煙同志)였던 친구까지 이따위로 내 아픈 곳을 찌르고 나선다는 것은 비열하기 짝 없는 배신이 아닐 수 없었다.

속이 상하면 담배 맛은 왜 더 좋아지는가`─`기왕에 생으로 타고 있는 담배를 한 모금 깊숙이 삼켰다가 내뿜으며 생각해 보니 내가 섣불리 금연을 시도했던 것이 실수였다. 차라리 담배 예찬론을 줄기차게 밀고 나갈 일이었다. 요즘처럼 더럽고 아니꼬운 일이 많은 세상에서는 그것을 피우는데서 오는 해독보다 그걸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킴으로써 얻는 이득이 훨씬 크다. 끊고 싶거든 너나 끊고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아라`─`처음부터 이렇게 나갔더라면 얼마나 당당하고 멋있어 보였으랴. 그러나 내가 섣불리 금연에 도전했다가 몇 번씩이나 실패한 전력을 꾀돌이처럼 빤히 알고 있는 친구 앞에 이제 와서 할 말이 있어야지. 그나마 내가 ‘담배와의 전쟁’에서 가장 큰 전과를 올리던 넉 달 동안의 낯뜨거운 추태만은 그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나도 한때 4개월간이나 담배를 끊은 적이 있었다. 비축했던 담배와 대여섯 개나 되던 고급 라이터를 아직도 담배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련한 중생들(?)에게 미련 없이 나누어 주고, 수시로 은단을 씹으며 버텼는데 그 고통이란 여간 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얼마 동안은 한밤중에 도둑고양이처럼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공동 화장실에 걸린 재떨이를 엿보기도 했는데, 그 처량한 꼴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넉 달을 버텼지만 담배의 유혹을 아주 떨쳐 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텁텁한 입맛을 다시게 될 때라든지, 특히 원고지가 잘 메워지지 않을 때는 담배를 끊었다는 친구들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넉 달이나 공들인 탑을 단번에 무너뜨리기도 아까운 노릇이었다.

그러자, 전혀 생각지 않았던 핑곗거리 하나가 저절로 굴러들었다. 담배끊은 지 얼마 후부터 조금씩 불어나던 체중이 7㎏까지 늘더니 바지 허리를 여밀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가뜩이나 난쟁이 배설물에 비유되는 수모도 감수치 않을 수 없는 키에 배까지 이 지경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핑곗거리가 다시 없을 터였다.

“여보, 나 아무래도 담배 다시 피워야겠어!”

머리 자르고 꼬리도 떼고 본론부터 한 마디 던져 놓기는 했으나, 내가 담배를 끊는다고 했을 때, 내친김에 술까지 끊으라며 반색을 하던 아내의 실망을 누그러뜨리는 문제가 시급했다.

“혁대의 길이와 수명은 반비례한다던데 이 지경이니…….”

가만 있어도 부른 배를 맹꽁이처럼 한껏 부풀려 보이며 ‘파계’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는데도 그 효험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어째 이번에는 꽤 오래 버틴다 싶더라니…….”

혀까지 끌끌 차는 아내 보기가 민망하다 한들 담배 참는 고통에 비할소냐.

그러나 숫제 부장판사 행세를 하러 드는 친구 앞에서 피우는 담배 맛이란 내처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이 고약한 기분을 쇄신하려면 화제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정치 얘기만 꺼내면 단번에 애국지사 아니면 정치 평론가가 된다.

“민주당에서 한 명을 더 꿔줬다며?”

그가 골수 야당인 점으로 미루어 이만한 미끼라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국회의원이 보릿자루냐?”로 시작된 성토와 야유와 분노와 탄식이 가히 질풍노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만한 정력이라면 미끼는 또 있었다.

“오죽하면 그 점잖은 서대표까지 정치판을 개판이라고 했겠나. 그건 그렇고, 그 원조교제라는 게 오리지널이라서 元祖인가, 재정 지원을 해 준대서 援助인가?”

상기했던 친구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는 듯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심정적 공범 의식으로 쓴 입맛을 다시면서 개판 정치와 문란한 성윤리와 물질만능주의가 가져올 인간성의 위기에 대하여 성토하고 우려하고 반성하는 동안 어느덧 대등한 우국지사가 되어 있었다.

“그게 다 중독 증상이야! 권력 중독·돈 중독·섹스 중독·인터넷 중독… 내가 담배 못 끊는 것도 중독 증상이지만 그게 자네한테 해 끼친 거 있어?”

친구는 기습당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는데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구제 불능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