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첫 국밥

                                                                                               남민정

 포도밭이 보이는 넓은 들에 봄은 아직 오지 않았나 보다. 포도나무 가지에는 새 싹이 보이지 않는다. 삼월이 지나야 잎이 돋아나는 것일까. 아침부터 나무를 심느라 지친 남편은 느티나무 아래의 돌 위에 앉아 밀짚모자를 벗는다. 바지는 흙투성이다.

몇해 전, 경기도 안성 난실리에 있는 어느 시인의 고향집 편운재를 찾아간 적이 있다. 담쟁이 넝쿨이 벽을 덮은 집에 시인은 없고 그의 시(詩)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다. 마당가는 살구나무로 병풍을 두른 듯했다. 나무마다 노란 살구가 가득 가득 매달려 있었다. 어느 날 고향집 언덕에 누워 하늘을 보니 몇 조각 구름이 흘러가는 것이 보여 즉흥적으로 편운재(片雲齋)라 이름을 지었다는 곳, 뒤쪽에 있는 라일락 숲은 꽃으로 화려했을 때를 상상할 수 있었다. 풍경에 취하여 주인도 없는 마당에 오래 서 있다가 떨어진 살구 몇 개를 주워가지고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도 안성의 동쪽 마을에 넓지 않은 터를 마련했다. 나이 들면 시골에 내려가 사는 것이 남편의 꿈이다. 그 후 그는 일요일만 되면 빈 터에서 지냈다. 집을 지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나무를 심고 가꾸기 위해서이다. 자두, 매실, 대추나무, 엊그제에는 목백일홍 세 그루를 심었다.

평생을 포도밭에서 일하는 농촌 사람들은, 나이 들면 내려와 이웃에 살겠다는 남편에게 포도나무 묘목을 가져와 심어 주기도 하고, 밭에서 채소를 뽑아 살그머니 놓고 가기도 한다. 농사일에 서툰 남편은 막걸리를 권하며 나무 심는 것과 채소 가꾸는 것을 묻는다. 그는 이미 밀짚모자가 잘 어울리는 시골 사람이 되었다.

오늘 모처럼 이곳에 내려왔다. 감나무를 심으러 오는 남편을 따라 온 것이다. 농사 짓기와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그와는 달리 시골로 내려온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내야 하는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일은 도우려 하지 않고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그를 멀리서 보고만 있다. 내가 따라오지 않더라도 남편은 혼자라도 이곳에 내려와 살 것이다.

그이가 아직도 바라보고 있는 넓은 들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민속 설화 ‘개구리 첫 국밥’이 생각난다.

 

어느 봄날, 노인 한 분이 들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따뜻한 바람이 불면 새 싹이 돋아나고 아지랑이도 피어나리라 생각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느 한 곳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나고 있었다.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앉아 연기가 나는 땅속을 들여다보았다. 아! 그런데 그 연기는 겨우내 땅속에 살던 개구리가 막 해산을 한 아내를 위하여 첫 국밥을 끊이는 연기가 아닌가. 어허, 노인은 감탄을 하며 들길을 조심조심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연기는 들판 여기저기에 나오고 있었다. 노인은 연기가 나는 곳마다 들여다보며 즐거워하였다.

 

원래 설화는 금기해야 할 것을 깨우쳐 주거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라는 뜻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설화도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처럼 생각하며 생활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는 이야기이고, 생각을 바꾸면 세상에는 즐거운 일도 많다는 뜻을 지닌 것이라고 한다. 나는 첫 국밥의 설화를 가끔 떠올린다. 설화가 깨우쳐주는 뜻도 다시 생각해보고, 봄이 오는 들에서 꾸부정한 노인이 땅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내 마음을 포근하게 하기 때문이다.

저 들에도 봄이 오면 개구리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끊이는 첫 국밥 연기가 필어날까. 오늘은 남편에게 설화를 들려주며 나도 같이 내려오겠다는 그 동안 망설여온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무에 물을 주며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웃었다. “당신은 꿈을 찾아 이곳으로 오고, 나는 과거를 찾아 이곳으로 오는구나” 한다. 자기는 들판을 바라보면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뛰어 놀던 생각이 떠오른다고 했다. 논둑을 한 줄로 서서 뛰어다니며 연을 날리고 달리기를 하던 아이들, 어둑해지면 저녁 짓는 연기가 한 집 두 집 피어나고, 탱자나무 울타리 안에서 자기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오면 그때서야 날이 저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가자는 형에게 더 놀다 가자고 떼를 쓰던 아우, 형이 아우를 업고 달래면서 걷던 들판,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그리워 들이 보이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시골에 내려오면 이웃과 어울리며 수수하게 살고 싶다. 외로운 대로 불편한 대로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지내려고 한다. 더러는 보내고 더러는 잊으며 기다리지 않으리라. 아무리 나이 들어도 철 따라 피는 꽃들에 묻혀 화사하고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꿈도 꾸어볼까. 자연에서 얻어지는 행복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그 동안 잊고 살아온 것들을 찾아보는 휴식(休息), 한자 뜻 그대로 나무를 벗삼아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날이기를 바래보자.

해가 지려고 한다. 흙 묻은 바지를 입은 남자와 앞으로 흙 묻은 바지를 입겠다고 다짐한 여자가 나란히 포도밭 너머로 펼쳐진 들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는 논둑을 뛰어다니던 옛날을 생각하며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가. 여자는 먼 곳을 바라보며 개구리의 첫 국밥 연기가 피어나는 곳이 어디쯤일까 찾고 있다.

석양빛에 물들은 하늘과 구름이 아름답다.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남민경

예술계에 수필 당선(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