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원진(車雪怨嗔)

                                                                                                金菊子

 신사년(辛巳年)은 벽두(劈頭)부터 눈으로 시작되었다. 세상이 온통 새하얗다. 새해답다.

담 너머로 보이는 산의 모습이 신령스럽고 눈을 맞은 나무들이 눈꽃을 피우고 있는 모양에 감탄사가 나오게 된다. 까치는 힘찬 날개짓으로 나무 위의 눈을 털어내고, 고양이는 발자국을 남기며 모퉁이로 돌아간다. 스키를 메고 언덕으로 올라가는 사람들과 썰매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는 아이들로 길은 점점 반들거려진다. 이렇게 생기 있고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자동차만이 그 위용이 죽는다.

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인간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자동차가 아닐까?

멀리서 소리 없이 달려와서 비단처럼 매끄럽게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편안함이 뛰어나 ‘달리는 별장’이라는 별명도 얻은 자동차, 이처럼 인간에게 안락감을 안겨주는 문명의 이기, 기계의 꽃이라는 자동차를 인간은 목숨까지 바쳐가며 사랑한다.

왇帽耽? 함께 사라지다왏?저자 마가릿 미첼 여사는 택시에 치여 중상을 입은 후 죽었고, 왏譴堧?의 저자 알베르 카뮈도 차를 몰고 가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아 44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뿐이랴 시속 130㎞의 속도로 폴셰 550을 몰고 가다 숨을 거둔 미국 젊은이의 우상 제임스 딘의 죽음은 지금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요절한 명사들의 죽음이 바로 성난 자동차 때문인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인간은 자동차를 아내와 비교할 만큼 사랑하고 있다.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불편한 것이 아내와 자동차라고 농담까지 하면서…….

우리 동네는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 자동차들이 눈을 뒤집어쓰고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어떤 놈은 흰눈 앞에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어떤 놈은 옆으로 기고 있다. 기세 좋게 올라오던 놈도 옆으로 기는 놈 뒤에서 그만 땅에 넙죽 엎드려 항복한다. 앙탈하는 놈, 굉음을 내며 달려드는 놈, 꽁무니를 슬슬 빼는 놈, 덩치 큰 놈도 별수 없다. 서로 엉켜 힘을 합쳐 보지만 상처만 낼 뿐 방법이 없는 듯하다. 눈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차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빙그레 웃고 있는 듯하다.

까맣고 반짝거리는 자동차 한 대가 그 눈 속을 헤치며 기어올라왔다. 세상에 이런 놈도 있다니! 위아래를 훑어보니 바퀴에 그 비력이 있는 듯하다. 발에 쇠가 달린 신형 체인을 찬 모양이다. ‘남이 못한 것을 나는 해 냈어’ 하며 그 자동차는 신나게 달려갔다.

앗! 저놈은 또 무엇일까? 큰 입을 벌리고 네모난 눈을 번뜩이며 눈을 한 입 가득 물고 밀고 올라온다. 포클레인이다. 기던 자동차들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워낙 눈이 많이 와서 큰 효과는 없는 듯하다. 20년만에 처음 많이 온 눈이라고 하니…….

눈은 땅 위에 내려와서 오래 견디지는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만물을 고루고루 만지며 감싸 안다가 조용히 그 자취를 감춘다. 그 모습이 퍽 부드럽고 신비스럽다.

눈이 내리면 무뚝뚝한 이웃도 눈인사를 한다. 가벼이 고요히 내리는 눈은 뾰족한 것은 뾰족한 대로, 둥근 것은 둥근 대로, 네모난 것은 네모난 대로 쓸어안고 사랑한다. 그런 사랑을 받으면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사랑이 움트는 것 같다. 그래서 눈 속에서 나무들은 생명을 잉태하는지 모른다.

이런 시가 있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 내어 님 계신데 보내고자

님께서 보신 후에 녹아진들 어떠리 ─ 정철의 『송강가사(松江歌辭)』

 

가슴 깊이 간직한 그리운 님도 떠오르고, 마음 아픈 일은 잠재워지고, 힘든 일에 여유로워지며, 혼란한 심정이 다독여지는 것 같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 ‘기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것도 잠시, 이렇게 착각에 빠져 있을 수만 없는 일이다. 세상이 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온 눈만 해도 그 적설량이 대관령이 79.8㎝이고, 추풍령이 32.8㎝, 서울은 15.6㎝라고 한다. 항공기는 파행 운행하고 자동차들은 거북이 걸음이다.

세상에는 운명의 이치[命理]로 볼 때 원진(怨嗔)의 관계가 있다고 한다. 호랑이는 닭의 울음소리를 싫어하고(寅酉怨嗔), 쥐는 양의 배설물을 싫어한다(子未怨嗔). 소는 말의 게으름을 싫어하고(丑午怨嗔), 토끼는 원숭이의 궁둥이를 싫어하고(卯申怨嗔), 용은 돼지 면상의 코를 싫어하고(辰亥怨嗔), 뱀은 금속성의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면 허물을 벗다가 죽는다(巳戌怨嗔)는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눈만 보면 설설 기니[車雪怨嗔] 이런 경우도 원진 관계가 성립될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본 것이다.

하지만 설풍년 지조(雪豊年之兆)라고 하니, 辛巳年은 분명 풍년이 올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