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기상(氣象)

                                                                                               鄭鳳九

 수필문우회에서 신인 작품 평가를 하게 될 때, 김회장은 종종 글의 기상을 논한다. 그러면 부회장 허교수도 거기에 맞장구를 친다.

모름지기 글의 기상이야 이 두 분의 지론이 아니더라도 문필을 일삼는 사람이면 누구고 고려하며 중히 염두(念頭)에 새길 일이다. ‘글은 사람이다’ 하지만 글의 기상은 작가의 기질을 반영한다고 보아 틀림없다. 가령 글에 기력이 없고 보면 그 작가의 기상마저 흐리게 전달될 것이며, 사상 기질의 유약성마저 엿보이는 결과가 된다.

옛 사람들은 글을 통하여 흔히 그 글을 지은 작가의 인품이며 운명까지도 점치고 예측하였던 듯싶다. 그리고 그 방면에 기울이는 관심도 이 즈음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컸던 것 같다. 아직 내가 글에 대한 식견이 나기 이전의 어렸을 적 일이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사랑방에서 아버지가 친구분과 나누시는 얘기에 귀를 기울인 일이 있었다. 어른들 말씀을 엿듣거나 참견하는 일이 버릇없는 짓으로 알았던 터라 그 말씀을 그냥 흘려듣고 말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유난히 신기하여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그것은 어떤 신동(神童)에 관한 얘기였다. 옛날에 아무개(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가 하도 재주가 뛰어나다 하여 하루는 어른들이 그 아이를 불러놓고 글재주를 시험키로 하였다. 마침 겨울이었다. 어른들은 하얗게 내린 눈을 가리키며 글을 지어 보라 주문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더니 서슴없이 시구(詩句)를 지어 나갔다.

‘흰 눈이 천지에 가득하니(白雪 滿乾坤)/산천이 모두 다 흰옷으로 거상을 입었네/천황님이 돌아가셨느냐 지황님이 돌아가셨느냐/양지쪽 지붕 추녀마다 눈물을 흘린다.’

소년은 거침없이 시를 써내려갔다. 그런데 그 글귀를 지켜보고 있던 어른들은 속으로 걱정이 일었다. 이 아이가 분명히 천재이긴 하나 단명(短命)하겠구나 탄식한 것이다. 그런데 다음 구절이 나오자 어른들은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다.

‘바람이 한 번 불어 휩쓸고 가니 백발 노송이 다시금 소년이 되었네(更少年).’

지금 그 한시(漢詩)의 글귀를 원문 그대로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아버지께 그것을 여쭈어보고 확인하지 못한 일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론이 아니다. 다음 얘기로 가자.

글을 쓴다는 일은 시문이 아니고 산문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글 짓는 이의 온 정신을 투영하는 일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그 작업은 항시 작가가 응축(凝縮)하고 있는 최선의 기상을 담아 마땅할 일이다. 또한 그것은 자연스러운 표현 현상이기도 하다. 설령 그것이 편지 글 같은 일상의 서찰일지라도 매일반이다.

역시 어려서 할머니 치마폭에 매달리던 시절에 들은 이야기다. 할머니가 이웃 할머니와 나누시던 대화였다.

뉘 집 얘기였는지는 모르나 서울로 유학을 보낸 이웃간의 두 아들의 사연이었다. 두 집의 아들이 모두 효자이어서 보름만큼씩 어머니께 편지를 올렸다. 그런데 그 편지의 사연 글투가 각각이었다. 한 댁의 자제는 편지마다 익살과 재롱이 넘쳐서 어머니는 편지를 들고 허리를 펴지 못했다. 예컨대 편지의 사연이 ‘어머니! 저는 하숙집 밥을 얼마나 포식하였던지 오늘도 방귀를 사발로 뀌었습니다. 같이 있는 친구 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뿡 하고 뀌면 그 놈이 질세라 빵 하고 뀝니다. 그러니 뿡 빵 뿡 빵 요란한 방귀의 합창입니다. 이렇게 잘 있으니 제 걱정일랑 조금도 마십시오’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댁 자제의 편지는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 안녕하십니까. 이 아들은 오늘도 어머니 그리움으로 하루 해를 넘겼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흘러 숟가락을 적시고 책을 보면서도 어머니 뵙고 싶어 울었습니다’로 온통 애절한 사연이었다. 그러니 어머니는 편지를 들고 오열할 뿐이었단다.

알랭(Alain)은 “웃는 이는 사람을 웃기고 우는 이는 사람을 울린다”고 하였다. 글을 쓰면서도 기교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장이란 아무리 기교로 수식하고 명구를 도입해도 글 속에 반영되는 기교 이전에 인간성과 기질이 내배이게 마련이다.

중학생 시절 한때 나는 영국 시인 바이런(Byron)에게 이끌린 적이 있었다. 일본말 번역으로 읽은 그의 시는 애절한 실연의 글이었다. ‘いとしき マガレットの はかを おとずれで ; 그리운 마거릿의 무덤을 찾아가서’ 지금껏 그 제목과 문장의 멋이 기억에 남아 있다. 애련에 젖은 강렬한 기상에 이끌리던 소년 시기의 호기심이었다. 그 퇴폐적인 감상이나 로맨티시즘 취향이 매력을 풍겼다. 그러나 거기엔 지나치게 비장한 애상이 담겨 있었다.

결국 시인 바이런은 그 냉소적(冷笑的)이고 방탕했던 시풍의 문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요절하고 말았다. 터키와 싸우는 그리스 독립군에 참가하려던 중 겨우 36세의 나이로 죽었다.

기력이 약하게 처지는 상실의 문장이나 또는 기상이 충천하는 무절제한 글이나 다 함께 문제의 소지는 있다고 본다. 그 글에 반영된 작가의 성격 기상이 정신의 강온(强穩)을 드러내며 혹은 나약하게 혹은 과격하게 인영되고 그로 말미암아 자연스러운 조화 균형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글의 격은 작가와 작품이 서로 상응하는 어울림의 묘가 있어야 될 것이니 글과 사람이 나름으로 짝이 맞아서 적절한 상황을 연출토록 창의성을 발휘할 일이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그것이 어쩌면 사람의 행동거지 처신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하듯 글에서도 단아한 기품을 잃지 말을 일이로되 그 안에 생동하는 기상을 살려서 기개(氣槪)와 풍도(風度)를 지킬 일이라고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