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山에서

                                                                                             변해명

 하룻밤을 머문 운곡산장에 짐을 맡기고 간단한 여장만을 챙겨들고 황산 등정에 나섰다. 운곡산장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우물 속에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산봉우리들에 에워싸여 두레박으로 부어지는 물처럼 아침햇살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다. 저 빛줄기를 잡고 황산 위로 오를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일행은 케이블 카에 몸을 싣고 운곡색도(云谷索道)로 황산을 올랐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13분이라 했던가, 다람쥐가 바위 위를 기어오르듯 거의 수직 상승이다. 발 아래 펼쳐지는 바위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짜기는 깊고 아득한데, 정상으로 오르는 돌층계는 끝없이 이어져 있고, 걸어서 4시간이라는 거리를 짐을 지고 오르는 노동자들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동안 1600m 고지에 케이블 카는 가볍게 도착했다.

밖으로 나서는 우리를 처음 맞는 것은 가마꾼들이었다. 대나무로 엮은 의자를 긴 대나무 두 개 위에 얹고 앞뒤의 두 사람이 대나무를 양 어깨에 메고 가는 산행 가마다. 숨이 가빠지는 것 같은 산상에서도 더 높은 봉우리들이 앞다투어 다가서는 산정. 가마의 유혹을 느끼며 돌층계를 따라 걷는다.

우측으로는 백학령(白鶴嶺), 관음봉(觀音峰), 시신봉(始信峰), 선녀봉(仙女峰)이 좌로는 광명정(光明頂), 연화봉(蓮花峰)이 구름 위로 얼굴을 내밀고, 길을 따라 두리번거리며 북해로 들어서니 신기하게도 산상의 여숙(旅宿)들이 나그네를 맞는다. 우리는 북해빈관에 간단한 여장을 풀었다. 이 깊은 산 속에 우리네 절간 같은 건물도 아닌 고급 호텔 같은 여숙이 자리하고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산상에서 바라보는 황산은 차라리 구름의 바다였다. 북해(北海)요 서해(西海)요, 동해(東海)요 전해(前海)요 그리고 가장 높은 곳은 천해(天海)라 구역을 가르는 이름조차 바다가 아니던가. 그 천해의 바다에 광명정이 우뚝하다.

타박타박 돌층계를 따라 광명정(光明頂)을 오른다. 구름을 벗고 환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봉우리를 향해 모두 엎디어 절하듯 부드러운 등줄기만 보이고 골짜기 대신 평원처럼 이어진 능선으로 시야가 막힘이 없다. 나는 거친 숨결을 몰아쉬며 ‘光明頂’ 표지 앞에 서서 혼자 오른 듯한 자랑스런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다. 나도 1800m 산상에 서 본 것이다.

 

저녁 노을이 빗겨 배운정(排雲亭)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구름이 봉우리 허리를 끼고 헤엄쳐 넘나든다는 골짜기, 구름 위로 우뚝한 석상봉(石床峰), 송림봉(松林峰), 단하봉(丹霞峰)들이 금강산 만장대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파도처럼 밀려온다. 가까운 봉우리들은 두 팔을 벌리면 가슴 속으로 안겨올 듯 다가서는데 그 뒤로 수만 군상의 봉우리들이 발돋움하며 밀려와 차라리 팔짱을 끼고 황제처럼 무리 앞에 서 본다. 내 발 밑은 지옥으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낭떠러지. 굽어보는 암벽 사이사이로 뻗은 소나무와 한창 단풍이 들어가는 활엽수들의 어우러진 모습은 검은 암벽에 다양한 색상들로 백화를 수놓은 듯 눈부시게 화려하다. 해를 등지며 스며드는 그늘로 깊고 신비하게 다가서는 음영은 산의 깊이를 더욱더 은근하고 사려깊게 한다.

산이 저토록 웅장하고 당당한 줄은, 저토록 늠름하고 수려한 기상일 줄은, 또 저토록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일 줄은 일찍이 알지 못했다. 거기에 광활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친근하고 소박한, 그러면서 침묵하는 기품이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는 듯하다.

산을 바라보고 있는 그 누구도 목청을 높여 환호하지 않았다. 마주 대하고 서 있을 뿐 벅찬 감격을 그 무어라 수식어를 달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배운정 산허리에 서서, 비로소 산의 바다와 그 바다의 수심을 보았다.

 

케이블 카를 타고 태평색도(太平索道)를 오르내리는 시간은 운해의 바다를 헤엄치는 시간이었다. 봉우리마다 감기고 넘어가는 구름이 선녀의 춤사위 같다. 바람 따라 감기고 풀리고, 그 출렁임 속에 선녀는 내 손을 잡고 구름 속으로 끌어들여 가슴저리게 하다가 다시 구름 밖으로 밀어내어 벼랑의 소나무 가지라도 잡아야 할 것 같은 긴장으로 숨을 몰아쉬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름이 되어 날고 있는 나를 본다. 여기가 천상인 것을. 나는 눈을 감고 하강하는 나를 붙잡는다. 내 옷자락 사이로 산봉우리가 언뜻 언뜻 얼굴을 내민다.

케이블 카에서 굽어보이는 골짜기가 몸이 저리도록 아득하다. 한 뿌리에서 갈라져 마주 선 봉우리들은 구름바다 위에서 연꽃 봉오리로 피어난다. 나도 한 송이 연꽃으로 구름의 바다에 떠 있음을 실감한다. 타오르는 석양이 환상적인 천상의 군무 속을 춤추며 오르내린 기분은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북해빈관에서의 하룻밤은 일출을 보려는 기대로 잠을 설친 밤이었다. 그러나 느닷없이 내리는 새벽 비로 일출을 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우비를 입고 나서는 등정이 구름의 꼬리를 잡고 가는 길이어서 운무 속을 더듬듯 걷는 산행이 아쉬웠으나, 빗속에서 가까이 바라본 황산 소나무들의 당당한 위용과 기상은 천년의 세월을 읽는 듯했다.

바위에 뿌리만을 붙이고 두 팔을 벌려 곧 날아 내릴듯 신기의 몸짓으로 서 있는 소나무의 부드러운 날개짓은, 큰 그늘을 드리우고 당당하게 서 있는 노송의 도승다운 모습과는 사뭇 다른 해학과 멋이 담겨 중국인의 풍류를 보는 것 같았다.

갖가지 모양을 갖춘 봉우리들, 기이한 바위들, 참선하는 부처의 모습에서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신선의 모습까지 산은 갖가지 신기한 모습을 지니고 전설적인 이야기와 태고의 향기로 어디를 보나, 어디를 가나 감동의 연속이요 무아경의 기쁨을 맛보게 했다.

 

서둘러 둘러본 1박 2일의 산행. 이 짧은 시간에 황산을 보았다 말할 수 있을까? 한 점 구름 속에서 운해를 느끼고 산봉우리들 앞에서 황산의 신비를 느꼈기로 감히 산의 바다를 보았다 할 수 있을까? 구름의 바다를 보았다 할 수 있을까?

산을 내려오니 다시 세상이 보였다. 내 머리 위에 하늘이 있고 구름이 흘렀다. 차에 오르자 황산은 내 등 뒤로 멀리 그리고 높아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