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백임현

 허리를 다쳐 누워 지낸 지 두 달이 되었다. 12번 척추가 골절된 중상이라고 한다. 완치되는데는 많은 시일이 걸리고 적어도 석 달 동안은 반듯하게 누워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치못할 최소한의 움직임만이 허용되었다. 병원 측의 이런 경고가 아니더라도 숨이 막힐 듯한 통증 때문에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육신의 고통을 말할 때 대개 여인이 겪는 출산의 아픔에 비유하지만 나의 이번 고통도 그에 못하지 않을 것 같았다.

불운이란 언제나 한순간에 일어난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났건만 지금도 그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악몽 같다. 아차 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경적을 울리면서 질주하던 구급차, 응급실의 술렁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이동 침대와 황망하게 뛰어 다니던 간호사들의 다급한 발 소리, 텔레비전 화면에서나 보던 일들이 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모든 일이 나와 상관없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절차대로 나는 드디어 입원실로 옮겨지고 그 날부터 꼼짝할 수 없는 환자가 되었다. 입원도 처음이고 환자복에 링거를 꽂고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튼튼한 체질은 아니었지만 그간 무병했었고 평소에 건강하다고 자부해 왔었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싶어 황당했다. 세상에 나와 상관없는 일이란 없었다. 여러 가지 치료를 하고 있었으나 좀처럼 아픔이 가시지 않아 고생스러웠다. 병원 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이 살을 내리게 하는 격렬한 통증이었다. “육신의 평화 없이 정신의 평화 없다”고 한 중국 어느 석학의 말은 조금도 과장 없는 사실이었다. 내 몸이 지금 숨이 막힐 만큼 아프다는 것 이상의 현실보다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없었다.

도대체 육신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을 창조한 신의 형벌인 동시에 은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사람이 육신의 고통을 모른다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 신체상의 손상이 있을 때 그 통증 때문에 서둘러 치료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이 극한 상황에 이르러 더 이상 육신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생명을 잃게 된다. 결국 죽음이란 참을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어선 최후의 승부인 것 같다. 그들이 얼마나 아팠는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한결같이 말이 없으니… 신은 역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죽음 앞에 이런 무서운 장치를 해 놓은 것 같다. 만일 죽음에 이르는 길이 마음 내킬 때 아무 장애 없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사람에게 있어 육신의 고통이란 형벌처럼 괴로운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인류의 존속을 위한 신의 은총이 아닌가 싶다.

투병의 날이 계속 되고 있다. 구태여 ‘투병’이라는 거친 말을 쓰는 것은 고통을 견디는 힘겨움이 싸움에 가깝기 때문이다. 신의 뜻이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해도 어디가 아프다는 것은 괴롭다. 퇴원 후에는 특별한 치료가 없이 다만 움직이지 말고 충분한 영양 섭취를 하면 된다고 하였다.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누워서 지낸다. 평생에 이렇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다. 마음놓고 게을러도, 마음대로 놀고 먹어도 환자라는 당당한 명분은 이 모든 사치를 허용한다. 찰스 램의 수필 ‘회복기의 환자’가 자주 생각난다. 회복기의 환자가 누리는 특권에 대해 쓴 글이다. 그러나 나는 찰스 램처럼 행복한 환자가 못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일도 할 수 없이 되고 보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평생을 일을 하며 살았다.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근면을 최고의 미덕으로 가르쳤다. 따라서 게으르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부덕이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였다. 그것은 특별히 부지런해서라기보다 어릴 때부터의 습성이었다. 처음 삼 개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이었던 것은 그간에 겪을 고생도 고생이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집안 일은 물론, 글 한 줄 쓸 수가 없었다. 정다운 사람들이 다녀가도 그 기쁨을 적어 놓을 수가 없고, 투병생활에서 느끼는 고통과 외로움 등 갖가지 상념이 많으나 그것을 마음 속에 접어두어야 하며, 먼 산, 가까운 산에 설경이 기막혀도 그 감탄을 글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이 끝없이 계속 된다면 생활이 얼마나 메마르고 허전할까. 어설프나마 글을 쓰면서 살아왔다는 것이 매우 소중한 자산이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사람은 불편에도 적응이 되는가 보다. 병이 시작된 지 여러 날 되고 보니 처음에 느꼈던 불편과 거기에서 비롯된 심정의 동요가 이제는 많이 안정되어 마음이 평온하다. 삼사 개월만 참으면 낫는다고 하니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본다.

내가 병이 난 것은 11월 중순, 낙엽이 지기 시작할 때였다. 그 무렵 가을 낙엽을 좋아하는 후배와 모처럼 태릉으로 낙엽을 밟으러 간다고 벼르던 중이었다. 그리고 남한강의 늦가을 풍경도 너무 좋아 그 스산한 정취에 젖어 보자고 날이 잡혀 있었다. 앓아 누워서 생각하니 그것은 지금 내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꿈이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모처럼 계획한 호사스런 가을 외출이 몸이 아파 허사가 되고 말았다.

병상의 머리맡에도 세월은 흘러 어수선한 연말 연시도 가고 설날 명절도 지나 창가의 햇살이 제법 따뜻하다. 거기엔 봄의 숨결이 스며 있다. 입원할 때 의사의 말대로라면 나의 건강이 봄이면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희망을 준다. 산천에 흰 눈이 가득할 때도, 혹한의 추위가 계속되는 엄동에도 나는 봄을 기다렸다. 내 마음을 아는 듯이 어떤 친구가 봄 철쭉이 화사하게 핀 카드를 보내 주었다. 그것을 보면 마음이 밝아진다. 춥고 지루한 겨울의 터널을 벗어나면 거기에 눈부신 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흰 눈이 녹지 않고 있는 앞산을 바라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린다. 틀림없이 봄은 올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가을을 기다리는 것보다 그래도 소망스러운 꿈이 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봄이 오면 세상의 모든 신입생들은 새 옷을 입고 학교에 갈 것이다. 앞산에 새 잎이 피어나면 나도 산에 가서 꽃향기를 맡을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초등학교 아동들이 부르는 ‘새해의 노래’ 마지막 구절을 좋아하셨다.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봄날의 기쁨을 위해 나와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기나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