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을 다녀오고 나서

                                                                                             이정호

 황산(黃山)을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 잠에서 덜깬 듯 뒷골이 띠잉 하면서 몽롱하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정신이 혼란했다. 여독(旅毒)이려니 했다. 해외 여행을 자주 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럴 만도 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고서도 그런 증세는 말끔히 가시지 않았다. 여독치고는 너무 오랜 간 것이다. 이상했다. 그만한 일정에도 견딜 수 없단 말인가. 뛰어난 강건 체질은 아니더라도 남들만큼은 건강에 자신이 있는 나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더욱 답답하고 울적했다.

거의 한 달만에 가까운 산에 올랐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푸른 빛깔을 뿜고 있을 뿐, 잎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가 삭막해 보이긴 해도 좀 멀리 바라보면 잔가지가 입김을 뿜어낸 듯 엷게 안개가 서려 포근해 보인다. 산은 언제 보아도 넉넉하고 푸근하다.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다. 골짜기가 시원히 내려다보이는 너럭바위에 앉아 저 멀리 울멍줄멍한 능선에 시선을 무료히 던져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결엔가 나도 모르게 웅대무한(雄大無限)한 준봉, 구름이 휘돌아 용틀임하는 저 황산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황산, 그 놈의 황산이 나를 괴롭힌 것이구나.

글이나 쓴 답시고 책까지 펴냈지만, 재능도 없는데다가 정식 글쓰기 공부를 한 것도 아니어서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글공부가 될까 해서 일기만큼은 꾸준히 쓰고 있다. 되도록 간단히 쓰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두서너 줄은 넘긴다. 명사(名士)들의 일기를 보면 단 한 줄로도 능히 하루의 삶을 압축하고 있음을 볼 때 나의 문장력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겠다.

그런 나에게도 단 한 줄로 된 날이 있다. 그것도 하루가 아닌 이틀이! 2000년 10월 24일과 25일, 그 날 나는 이렇게 한 마디로 끝내 버렸다.

‘登頂黃山 天下無山.’

이 이상 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말도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황산 여기저기에서 눈에 뜨여 보아둔 글귀다. 내 무딘 글힘으로는 여기에 더해서 무어라 덧붙일 말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머리와 가슴에는 형언하기 힘든 감동이 가득 했음에도 너무 꽉 들어찬 때문일까, 제대로 표현해 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웅자(雄姿), 그 신비, 경이로움과 외경스러움…….

무엇이 신비롭고 외경스럽더냐. 천태만상 기기묘묘한 모양을 다투는 천만봉 바위, 그 바위를 휘감아 피어올라 갖은 형상을 지었다가 이내 홀연히 자취를 거두고는 문득 우뚝한 봉우리 하나 내어미는 비운(飛雲)인가. 한자리에서 천년을 고집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영겁을 욕심내는 와룡송(臥龍松)이던가. 하늘 땅 생겨난 이래로 하루 한번씩 연출하는 효광(曉光)의 신선함, 아니 하루를 조용히 마감하지 못하고 못내 아쉬워 장엄으로 장식하는 만리 황금 운해(萬里黃金雲海) 저녁놀 그것이던가. 천길 만길 깊이를 잴 수 없이 깎아질러 까마득히 현기증 이는 계곡과 아득히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끝없는 연봉(連峰)들인가. 철근 한 개 벽돌 한 장까지도 사람이 일일이 어깨에 메어 올려 지은 해발 1,600m 산정의 현대식 호텔인가.

이곳에선 바람도 잠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가. 반짝 햇살이 빛나 홍옥빛깔 천봉 만봉이 아청(鴉靑) 비취옥빛 하늘과 화사하게 색의 조화를 드러내는 것도 잠깐, 언제 몰아 왔을까,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면 금세 바위 봉우리 하나하나가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하고, 자애로운 할아버지 같던 소나무가 갑자기 쏴아~ 신음 소리를 내며 험상궂게 요동친다. 용의 조화인가, 비바람이 몰아치고 한치 앞도 시야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는다. 비바람 안개비가 걷히고 저 아래 계곡에서 돌연 뿜어오르는 연기 같은 구름이 능선으로 날아 올라와서는 연화봉(蓮花峰) 허리를 휘감아 한 송이 연꽃을 피워낸 다음, 그대로 곤두박질쳐 저쪽 봉우리에 앞자락을 걸치는 듯하면 무지개 모양의 아취 구름다리는 급류로 변해서 약간 낮은 능선을 따라 흐르다가 벼랑을 만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얼마쯤 흘러내리다가는 유속(流速)을 줄여 만상을 조각한 병풍바위에 막혀 흐름을 멈추고 살포시 고여 잔잔한 산정 호수를 이루는데, 이때 때마침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끼면 천신(天神)이 그 호수를 화선지삼아 주홍(朱紅)을 붓에 찍어 휘두름인가, 꽃을 뿌림인가, 붉은 비단을 한껏 펼쳐놓은 듯 보드랍고도 곱다. 서서히 어둠이 깔리고 채운(彩雲)이 수묵빛으로 물들어 저녁이 무겁게 짓눌러 오면 낮 동안 그토록 천태만상 요란하던 황산은 깊은 적막 속으로 빠져든다.

황산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단 이틀 동안 겨우 한 귀퉁이를 보고 와서 이러니 저러니 말한다는 것이 우습고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화가라면 그래도 그림으로 그려내 보일 수 있을까. 내가 화가였다면 당연히 붓을 잡으려 했을 것이다. 글쎄, 황산송(黃山松) 몇 그루와 운해 그리고 묘한 멧뿌리쯤이야 그려 낼 수 있겠지. 푸른 봉우리 위나 벼랑에 빼어난 소나무를 그려놓고는 여기에 ‘객을 맞는 소나무[迎客松]’라고 화제를 써넣을 것이다. 담묵(淡墨)을 풀어 끝없이 펼쳐진 운해(雲海)와 간간이 떠 있는 봉우리를 그려놓고는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 이렇게 화제를 붙일까. 비래석(飛來石)은 거기에 얽힌 설화가 있으니 그 모양 그대로 묘사해 놓고 그냥 비래석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옮겨올 수 있다. 아, 황산! 할 만하게 황산의 혼까지 어떻게 그려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려 낼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설사 내가 화가라 해도 나는 그리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 혼과 오장육부를 몽땅 쥐어짜서 그려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붓을 던지는 순간 내 생명은 끝나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황산에 가기 전에는 황산을 다녀오면 당연히 글 한 편을 거뜬히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천하 명산, 글의 소재로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것이라 했었다. 그런데 막상 다녀오고 나서 그리 못하니 심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황산을 다녀와서 한동안 시름시름 힘겨워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병원을 찾아야 할 만큼 심한 병으로 악화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내린 처방으로 그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황산은 신이 장난스러우면서도 신의(神意)에 벗어나지 않게 마음껏 만들어 놓은 천상의 예술작품,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릴 수도 없고 그려서도 안 된다. 다만 가슴에 담고 경외(敬畏)할 뿐.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머리와 가슴이 후련해졌다. 내 스스로 내린 처방은 이처럼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