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

                                                                                             박철호

 계간 수필로 등단한 신예 작가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모처럼 겨울바다를 찾았다. 인적이 드문 겨울바다는 전례가 끝난 성전처럼 고요하다. 때마침 휘몰아치기 시작한 눈보라가 동해의 겨울을 실감나게 한다. 일행 중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허세욱 교수님의 인도로 낙산사를 거쳐 해수관음상과 의상대 및 홍련암을 돌아보았다. 눈을 맞으면서 고즈넉한 산사를 둘러보고 해변의 암자에 올라 눈 내리는 동해를 내려다보니 느낌이 새롭고 잊었던 동심이 되살아난다. 동안(童顔)의 허교수님도 젊은이들보다 더 흠뻑 동심에 젖으셔서 앞장 서 흥을 돋구신다. 눈과 겨울바다의 절묘한 조화가 나이와 세상사를 잊게 하고 심연에서 꺼져가는 인간의 본성을 되피워올린다. 누구나 그 순간만큼은 생활의 굴레와 인습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다들 이렇게 감성이 풍부해지고 이성이 맑게 닦이는 귀중한 해탈의 시간 속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하는 눈치다. 전에도 여러 차례 동해안의 이곳을 찾은 적이 있지만 오늘처럼 눈 내리는 겨울바다는 흔히 만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추억임을 누구나 예외 없이 공감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번 여행의 백미는 바로 이 ‘사람이 있는 해변의 설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미나를 마치고 바닷가 횟집에 다시 나와 저녁을 먹는 시간에도 눈은 조금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욱 세차게 내린다. 문 앞에서 젊은 사내가 연실 가래질을 하는데도 돌아서면 또 금세 눈이 쌓이곤 한다. 동해안에는 산 쪽에서 눈이 오는 경우와 바다 쪽에서 눈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은 바다 쪽에서 오는 눈이라서 더 많이 쌓인다고 한다. 이대로 밤새껏 내려 쌓이면 바닷가에 줄지어 늘어선 횟집들이 모두 눈 속에 파묻히고 말 것만 같다. 지금도 이미 횟집의 창(窓)을 빼고는 온통 눈으로 뒤덮혔으니 우리들은 설중 회식(雪中會食)을 즐기는 셈이다.

바다에 내리는 눈에 온 신경을 빼앗긴 내 귀엔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파도에 떨어져 산화된 눈송이가 파도 소리를 삼켜버린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눈 내리는 겨울바다는 아무 소리 없이 표정만 삼삼하다. 겉으로는 완고하지만 속내는 정이 깊은 아버지의 근엄한 표정이다.

 

아버지는 남해안의 어느 작은 포구에서 태어나셨다. 청년기까지 고향에서 보내시고 해군에 입대하여 여러 곳을 옮겨 다니시다가 제대를 하셨다. 제대 전 어느 해에 동해안의 어촌에 정박하였다가 그곳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강원도 산골 태생의 어머니와 만나 결혼을 하셨다. 그 뒤로 강원도 사람이 되신 아버지는 영월의 한전 출장소에 근무하시면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지점이 있는 강릉을 다녀오시곤 했다. 아버지가 강릉 출장을 가시는 날이면 어린 나도 따라가 바다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에 아침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그런 간절한 바람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여름방학에 나는 아버지 회사의 노란 픽업 차를 타고 아버지와 함께 동해안 백사장을 찾게 된 것이다.

동해안으로 가는 동안 아버지는 차 안에서 한참 고향 자랑을 늘어 놓으셨다. 그러나 바닷가에 당도하신 뒤론 일체 말씀이 없으셨다. 남쪽 고향바다의 푸른 물결이 마냥 그리운 듯 망연히 바다를 응시하실 뿐이었다. 그 순간 내 눈앞에는 아버지께서 집에 사다 놓으신 ‘바다의 교향시’라는 원로 가수의 음반이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는 밖에서 약주를 드시고 일찍 귀가하시는 날이면 종종 전축을 켜서 그 음반을 트셨다. ‘가자, 가자, 가자, 바다로 가자’고 리듬을 타며 향수에 취하시던 아버지였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연회석이든지 아버지의 십팔번은 2절 가사에 ‘바다’가 들어 있는 오기택의 ‘고향 무정’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연세가 드시면서 주체할 수 없는 향수와 수구초심(首邱初心)을 그렇게 달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의 귀향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고 환갑도 되기 전에 돌아가시어 지금은 춘천 근교의 묘원에 묻혀 계신다. 그 해 겨울 언 땅에 아버지를 묻고 돌아설 때도 지금처럼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친 것을 보면, 고향 바다를 볼 수 없는 타향의 산 중턱에 누운 아버지께서는 못내 바다가 그리워 그토록 회한의 눈물을 뿌리신 게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지의 오랜 비원(悲願)은 해무(海霧)가 되어 떠돌다가 저렇게 무거운 바다의 표정으로 굳어 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 나는 이곳 동해안에서 잊지 못할 눈보라를 만나고 아버지의 고향바다를 몰고 온 파도와도 해후하였다. 바다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웠지만 그 속엔 피 같은 부정(父情)이 있고, 흐트러진 내 삶의 편린들이 해초처럼 떠 있다. 아버지께 효도를 다하지 못한 부끄러운 삶, 아버지의 유훈(遺訓)인 ‘근면과 성실’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사는 나약하고 태만한 생활, 이 모든 것을 바다 앞에서는 감출 수가 없으며, 누군가로부터 어떤 꾸짖음을 들어도 달게 받게 된다. 짧은 여정 속에서나마 밤 늦도록 바닷가에서 눈을 맞으며 자신을 정돈해 보는 이런 시간이야말로 언제나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문우들과의 이번 여행은 비록 내가 먼저 귀가하여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어도 여행 그 자체가 한편의 수필이었음을 느낀다.

 

 

 

박철호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현재 강원대 식물응용과학부 교수. 계간 수필 동인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