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假面)

                                                                                                 전계숙

 마음이 울적할 땐 익살기 그득한 하회탈 앞에 서 본다. 눈꼬리에 긴 주름을 잡고 파안대소를 하는 양반탈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른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이렇게 웃는 얼굴로 살고 싶다. 때로는 가면이라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음먹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거울 너머로 훤히 보이는 눈 밑의 주름과 뺨의 기미 등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들이 얼굴의 표면을 넓혀 갈 때 그런 생각은 더해진다.

나는 자신을 꾸미는 일에 그리 세련된 편이 못 된다. 얼굴의 화장(化粧)도 간단하다. 파운데이션을 바른 후 눈두덩에 갈색의 음영을 넣고 볼연지를 한번 스쳐준다.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입술이다. 입술 선이 돋보이도록 가는 붓으로 그린 후 두어 가지의 립스틱을 배합해서 바른다. 간단한 과정이지만 화장을 마친 후에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의 내가 거울 속에 있다. 이처럼 화장은 얼굴의 특징을 감추기도 하고 돋보이게도 한다. 개성을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화장의 묘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여성의 본능일 것이다.

어릴 적, 추석이 오면 언니들은 어머니가 밤을 새워 지은 갑사 치마 저고리를 내게 입혔다. 그리고 유독 작고 도드라진 입술에 빨간 루즈를 발라주었다. 사람들의 찬사에 묻혀 그 날 하루를 황홀하게 지내던 것이 생각난다. 이윽고 밤이 오고, 화장을 닦아내면 나는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언젠가 중남미 문화원에서 본 가면들이 떠오른다. 신, 마귀, 동물, 천사 등의 가면 외에 다양하고 그로테스크한 모습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또또낙이라는 멕시코의 인디언들은 그 상징적인 가면을 쓰면, 가면 속의 영혼과 교감한다고 생각했다 한다. 가면으로 얼굴을 덮음으로, 잠시 자신의 영혼을 벗어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자신을 만난다는 것이다.

멕시코 인디언들의 혼(魂)이 내게도 전이되었는지 화장을 하고 나면 마음까지도 밝아진다. 지치고 고달픈 나의 몸과 마음이 화장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감이 넘치는 또 다른 나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런 겉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 누구도 화장 아래 감추어진 나의 이면(裏面)을 모르고 지낸다.

여인들이 자신을 치장하려는 욕망의 기원이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닌 것을 역사 속에서 엿본다. 시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클레오파트라는 그녀의 미색이 사후에 변할 것을 염려하여 독사에게 팔을 물려 생을 마쳤다 하지 않은가. 타고난 얼굴을 몰라보게 바꾸는 성형술이 발달한 것도 내면보다 외모에 더 가치를 두는 인간의 의식구조 때문일 것이다.

허황한 욕심에 사로잡힌 한 여인을 산 속에서 만난 적이 있다. 영조의 어머니가 되는 분의 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큰 무덤이 또 하나 있다 해서, 파주 지리에 밝은 분의 안내를 구했다.

인적 없는 야산의 오솔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거대한 봉분이 한 장 나타났다. 동행한 이들 모두가 호기심에 넘쳐 비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정작 거기에 누운 무덤의 임자는 그럴 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여염의 부인처럼 쓰여 있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자구(字句)며 문맥으로 보아, 자손마저 그 어머니를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 사연을 지닌 여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사연을 대강 짐작하니 우람한 석물(石物)이나 거대한 무덤이 오히려 초라하고 쓸쓸해 연민의 정마저 솟았다. 나는 열일곱에 생긴 얼굴의 흉터를 감추기 위해 80이 넘도록 가면(假面)을 벗지 않았다는 남방의 어느 재상을 떠올렸다.  

가끔 인간의 속성에 대한 의문이 뇌리를 붙든다. 진정한 자아와 가면을 쓴 자신, 어느 쪽이 현실 속의 나일까.

누군가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이름과 가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했듯, 우리는 가면을 쓴 자기의 모습에 만족하고, 그것이 진정한 자아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화장을 한 얼굴을 본연의 모습으로 착각하고 있듯 말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라도 자신을 가리고 싶은 가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게 마련인가 보다.

오늘은 또 어떤 가면을 쓰고 하루를 살아가야 하나. 거울 앞에서 나는 습관처럼 화장을 한다.

 

 

 

 

전계숙

경남 출생. 계간 수필로 등단(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