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시말서

                                                                                                     鄭明煥

 “철들면 죽는다”고 늘 되뇌면서 갖은 기행을 즐기던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저도 모르게 철이 들었는지 육십 고개를 넘자마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로 말하자면 아직도 철이 안 들어서인지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내 딴에는 차차 철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적어도 술을 옛날처럼 철없이 먹지는 않게 되었다. 마침내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지혜에 가까워지기 시작해서가 아니라, 노쇠하는 육체가 나를 별수 없이 철들게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책없이 퍼마시던 시절의 가지가지의 일들이 자주 머리에 떠오른다. 하기야 유쾌한 일보다도 부끄럽고 후회 막급한 일이 더 많다. 그러나 오랜 시간의 경과가 그런 과거를 덜 씁쓸하게 만들어 주고, 그 회상과 더불어 입가에 엷은 미소조차 떠오르게 한다. 우스갯소리삼아 그 중 한 가지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아직도 밤 열두 시에 시작되는 통행금지 제도가 있었던 시절의 일이다. 프랑스에서 갓 돌아온 한 후배 교수가 반가워서 저녁때 신촌 로터리 부근의 술집에서 만났다. 나는 버릇대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여보, 미안하지만 좀 늦겠오” 하고 양해를 구하려고 하면, 반드시 “술 적게 자시고 일찍 돌아오세요”라는 주문(注文)이 뒤따르니, 먹기 전부터 벌써 술맛이 싹 가져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신없이 마셨다. 속된 말로 술이 사람을 마셔 버릴 정도가 되어 술집 주인에게 쫓겨나다시피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는 열두 시 십오 분 전이었다. 한강변에 사는 후배와 수유리에 집이 있었던 나는 제각기 재주껏 귀가하기로 하고 남북으로 헤어졌다. 나는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자고 했다. 세검정까지는 갈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그 근방의 파출소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호자(虎子)를 얻는다고 했으니, 제 발로 경찰관들 앞에 나타나서 사정을 하고 또 필요하다면 큰소리라도 쳐보면 혹시 특별히 집에 가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차가 파출소 앞에 섰을 때는 벌써 열두 시를 훨씬 넘었고, 나는 통금 시간을 뚫고 거기까지라도 와 준 기사가 고마워서 호주머니에 남은 얼마간의 돈을 모두 털어주었다.

파출소에서의 단판은 나의 완전 패배로 끝났다. 당직 순경은 나의 횡포에 가까운 언행을 능란하게 받아넘기고 함께 근무하고 있던 야경원으로 하여금 나를 부근의 여관으로 데려가게 했다. 2층의 한 방으로 끌려 올라가서 쓰러지듯 누웠으나 돈이 한푼도 없다는 생각이 났다. 하는 수 없이 혀꼬부라진 소리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 통금 시간에 걸려서 세검정의 아무아무 여관에서 자게 되었는데 숙박비가 없소. 미안하지만 내일 아침에 만 원만 갖다주시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다만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로 아내의 시퍼런 노기를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문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세상 모르고 자다가 노크 소리에 잠이 깨었을 때는 벌써 여섯 시 반이었다.

“누구요?”

“저예요.”

“아니, 네가 웬일이냐?”

나는 딸의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문을 열었다.

“너의 엄마는?”

“바깥에 계셔요. 창피하다고 저만 올려보냈어요.”

나는 딸이 건네준 돈으로 여관비를 치르고 나왔다.

여름철이라 벌써 뜨겁게 타오르는 햇빛을 쬐고 아내가 서 있었다. 물론 무슨 말이 오갈 처지가 아니었다. 아내로서는 그 노여움을 표현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고, 나로 말하자면 그 자리에서 무슨 변명이나 사과를 시도하다가는 엄청난 역효과를 낼 것이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 여관 앞을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다. 딸이 앞자리에 앉고 우리 내외는 뒷자리를 차지했다. 차 속에는 무겁고 답답한 침묵만이 겹겹이 고였다.

그 동안 기사는 무슨 야릇한 꼴을 보았는지 마음의 안정을 잃은 듯한 태도였다. 딸에게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다가는 나의 게슴츠레한 표정을 비스듬히 돌아보기도 하고, 또 백 미러를 통해서 제 바로 뒤에 앉은 아내의 부어오른 얼굴을 살피기도 했다. 나는 “왜 그러시오? 운전이나 열심히 하시오” 하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런 말조차도 아내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에 딸이 입을 열었다. 상가(喪家)처럼 침울한 분위기를 다소라도 누그러뜨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 어제 교양 불어 시험을 봤는데 몇 개 틀리고 말았어요” 하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사는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앞만 쳐다보면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자못 실망했다는 말투로 “따님이시군요” 하고 한 마디 내뱉었다.

차에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네 나이 오래 몇이냐!”고 꾸중하시는 어머니를 슬금슬금 피하면서 서재로 달아났다. 어머니야 곧 용서하시겠지만, 아내의 용서를 얻어 내려면 시간도 벌고 또 면밀하게 작전도 짜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 운전기사의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고 웃음부터 새어 나왔다. 틀림없이 그는 한동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꼴 좋게 됐군. 저 인간이 어린 여자와 밤새 희롱하다가 새벽녘에 여관을 습격한 마누라에 꼼짝없이 현행범으로 잡힌 거다. 살펴보니 머리끄덩이를 잡아 끌렸거나 치고 받은 흔적은 없지만, 그게 틀림없다. 저 작자 이제 혼쭐이 날게다.’

그러다가 딸이 느닷없이 던진 한 마디가 그의 ‘신나는’ 상상을 산산이 부셔 버린 것이다. 우리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한 마디가 그의 상상 속에서 여지없이 전락한 우리 세 식구를 구해 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구원이 고맙다기보다도 그의 환멸에 대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남들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행복을 확인한다는 인간의 간사한 심리에 끌렸는지, 혹은 자신도 과거에 그런 변을 당한 일이 있어서 동병상련의 심정이었는지, 혹은 단순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간에 그는 어느 통속극(通俗劇)의 장면보다도 더 실감나는 상상의 세계가 단번에 무너져서 맥이 풀렸을 것이다.

나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런 이야기를 아내나 딸에게 한 일이 없다. 한순간 운전기사의 뇌리에서 일 망정 모녀를 수치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죄를 진 내가 그 이야기를 다시 한다는 것은 두 사람을 또 한 번 전락시키는 꼴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에 와서는, 너무나 때늦은 이 시말서(始末書)를 두 사람이 읽게 되면 담담한 심정으로, 그리고 욕심 같아서는 빙그레 웃기까지 하면서 접수(接受)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 소망이 내가 진정 다소라도 철이 들었다는 증거인지 또는 노년의 뻔뻔한 응석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정명환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교수 역임. 학술원 회원.

저서 『한국 작가와 지성』, 『졸라의 자연주의』, 『문학을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