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극(自作劇)

                                                                                            金奎鍊

 배우는 평생 해오던 연기를 언젠가는 그만두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때 배우는 후련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서 더러는 눈물을 짓기도 한단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정이리라.

직장인도 정년이 되어 자리에서 물러날 때 이와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퇴직 후 얼마 동안은 바쁘다. 못다 한 집안 일 정리, 국내외 나들이, 여러 모임 참여… 등 오히려 재직시보다 더 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 돈줄이 말라든다. 일거리가 없어진다. 몸에 힘이 빠진다. 정열도 식어간다. 이름 뒤에 붙어다니던 직함도 떨어져 나간다.

어느덧 칠순 고개를 넘기고 나면 시간의 흐름은 급류를 탄다. 일주일이 하루 같다고 할까.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문안 전화도 뜸뜸이 걸려오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뚝 끊기고 만다.

이럴 때 내가 영락없는 노인임을 깨닫게 된다. 노인이 돼봐야 노인 세계를 확연히 볼 수 있다고 할까.

노인들의 삶도 가지가지이다. 노선(老仙)이 있는가 하면 노학(老鶴)이 있고, 노동(老童)이 있는가 하면 노옹(老翁)이 있고, 노광(老狂)이 있는가 하면 노고(老孤)가 있고, 노궁(老窮)이 있는가 하면 노추(老醜)도 있다.

노선은 늙어가면서 신선처럼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미움도 사랑도 놓아버렸다. 성냄도 탐욕도 벗어버렸다. 선도 악도 털어버렸다. 삶에 아무런 걸림이 없다. 건너야 할 피안도 없고 올라야 할 천당도 없고 빠져버릴 지옥도 없다. 무심히 자연 따라 돌아갈 뿐이다.

노학은 늙어서 학처럼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심신이 강건하고 여유가 있어 나라 안팎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산천경개를 유람한다. 그러면서도 검소하여 천박하질 않다. 많은 벗들과 어울려 노닐며 베풀 줄 안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아낌을 받는다. 틈나는 대로 갈고 닦아 학술 논문이며 문예작품들을 펴내기도 한다.

노동은 늙어서 동심으로 돌아가 청소년처럼 사는 사람이다. 이들은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학원 아니면 서원이나 노인 대학에 적을 걸어두고 못다한 공부를 한다. 시경, 주역 등 한문이며 서예며 정치, 경제 상식이며 컴퓨터를 열심히 배운다. 수시로 여성 학우들과 어울려 여행도 하고 노래며 춤도 추고 즐거운 여생을 보낸다.

노옹은 문자 그대로 늙은이로 사는 사람이다. 집에서 손주들이나 봐주고 텅 빈 집이나 지켜준다. 어쩌다 틈이 나면 동네 노인정에 나가서 노인들과 화투나 치고 장기를 두기도 한다. 형편만 허락되면 따로 나와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늘 머리 속에 맴돈다.

노광은 미친 사람처럼 사는 노인이다. 함량 미달에 능력은 부족하고 주변에 존경도 못받는 처지에 감투 욕심은 많아서 온갖 장을 도맡아 한다. 돈이 생기는 곳이라면 체면 불사하고 파리처럼 달라붙는다. 권력의 끄나풀이라도 잡아보려고 늙은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노고는 늙어가면서 아내를 잃고 외로운 삶을 보내는 사람이다. 이십 대의 아내는 애완동물같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삼십 대의 아내는 기호식품 같다고 할까. 사십 대의 아내는 어느덧 없어서는 안 될 가재도구가 돼 버린다. 오십 대가 되면 아내는 가보의 자리를 차지한다. 육십 대의 아내는 지방문화재라고 할까. 그런데 칠십 대가 되면 아내는 국보의 위치에 올라 존중을 받게 된다. 그런 귀하고도 귀한 국보를 잃었으니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노궁은 늙어서 수중에 돈 한푼 없는 사람이다. 아침 한 술 뜨고 나면 집을 나와야 한다. 갈 곳이라곤 공원 광장뿐이다. 점심은 무료 급식소에서 해결한다. 석양이 되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간다. 며느리 눈치 슬슬 보며 밥술 좀 떠넣고 골방에 들어가 한숨 진다. 사는 게 괴롭다.

노추는 늙어서 추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다. 어쩌다 불치의 병을 얻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못 죽어 생존하는 가련한 노인이다.

사람은 누구나 즐겁고 보람 있고 행복한 노후를 갈망한다. 더구나 고종명(考終命)은 말할 것도 없다. 한데도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하느님의 은총이 부족해서일까. 부처님의 가피를 얻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사주나 관상이 나빠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조상의 음덕을 입지 못해서일까.

꼼꼼히 따지고 생각해 보면 어쩐지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여건이며 오랜 생활 습성이며 성격이며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의 결과가 쌓여서 오늘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약간의 운세도 작용한다고 하리라.

어쨌든 사람의 노후는 다양하다고 하겠다. 허나 지상(地上)의 눈과는 달리 천상(天上)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삶이란 찰나의 꿈이 아닌가. 하루살이 같은 삶에 귀천이 어디 있으며 영욕이 따로 있는가.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지 않는가. 가을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갈잎나무의 잎새들과 뭣이 다르랴.

역시 현실은 엄연하구나. 연방 바로 눈앞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것을 또 어찌하랴.

인생은 자기가 스스로 써온 시나리오에 따라 자신이 연출하는 자작극이라 할까. 나는 여태껏 어떤 내용의 각본을 창작해 왔을까. 이젠 고쳐 쓸 수가 없다. 희극이 되든 비극이 되든 아니면 해피 엔드로 끝나든 미소지으며 각본대로 열심히 연출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