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계단

                                                                                                      유혜자

 로마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테베레 강가, 높다란 ‘천사의 성’ 꼭대기의 천사 조각상이 하늘 속으로 날아올라갈 듯했다. 음습하고 햇빛이 귀한 유럽 지역의 사람들이 옛날부터 하늘 맑은 이탈리아를 자주 찾았다는 말에 수긍이 갔다. 클래식 음악 중에는 작곡가들이 이런 이탈리아의 풍광에 매료되거나 예술작품에 충동받아 쓴 명곡들이 많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이탈리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로마를 방문했을 때 첫날엔 교향곡 ‘이탈리아’의 밝은 멜로디가 먼저 떠올라 스페인 광장과 깜피돌리오 언덕의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랐다. 이튿날,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성당 앞 기념품 가게에 들렀을 때 하늘빛 묵주가 눈길을 끌었다. 베드로 성당 방문 기념으로 사두려고 미화를 꺼내들자, 파란 눈의 수녀가 잔돈이 없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입구의 거대한 계단부터 압도하는 베드로 성당의 내부는 과연 웅장했다. 벽면의 화려한 모자이크에 비치는 햇살, 높다란 돔의 창으로 비춰 들어온 로마의 햇빛은 모자이크의 빛깔을 보다 선명하게 안내하고 있었다. 눈이 나쁜 나는 섬세한 선은 감지하지 못한 대신 빛깔이 인상적이었다.

박쥐는 시력 대신 입에서 초음파를 발사해서 반사해오는 소리로 물체를 느껴서 동굴을 날아다닌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문화 유산들이 있는 바티칸에서 박쥐처럼 예술품에 초음파를 보낼 수 있다면 작가의 심오한 창작 비밀을 캐볼 수 있을 텐데.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계속 따라다녔다.

우회랑 아래쪽에 몰려 있는 사람들, 그들의 어깨를 비집고 보니 화집에서 눈에 익은 하얀 대리석의 ‘피에타’ 상이 있었다.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뉘고 처연하게 바라보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위대한 예술가는 육체 안에 든 마음, 영혼을 표현한다는 말을 실감했었다.

거대한 성당 안의 그림들과 호화스러운 장식의 제단도 시간에 쫓겨 대충대충 스쳐 지나다가 발자국 소리를 죽이기도 했다. 소음과 많은 시선에 아랑곳없이 촛불 제단 앞에 엎드린 여인, 그곳이 어두운 영혼을 밝혀주는 성당임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바티칸 박물관의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분리되어 있는 나선형 계단들을 힘겹게 오르내리며 바티칸의 미술품을 보았다. 그 중 바티칸 미술의 최고봉이라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 화 ‘천지창조’, 그것에 연이어 그린 ‘아담의 창조’, ‘낙원에서의 추방’ 등을 오페라 그라스를 통해 올려다보았다. 4년 5개월에 걸친 천장화 이후 23년 뒤의 작품이라는 벽화 ‘최후의 심판’은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그림 속의 인물이 390여 명이나 된다고 했다. 천장화와 벽화 속의 강렬한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느껴지던 역동적인 맥박, 듣던 대로 종교적인 주제의 다른 그림들이 비슷비슷한데 비해 미켈란젤로의 개성과 독창성이 문외한의 안목에도 벅차게 감지됐다. 미켈란젤로는 사실적인 것보다 완벽함과 절대적 이데아의 구현을 추구하는 창조 과정에서 새로운 역사와 미래로 한 계단 성큼 올라간 것이 아닐까.

멘델스존이 르네상스 문화의 감명으로 창작 의욕이 솟아 스승에게 보낸 편지에 ‘저는 마침내 이탈리아에 왔습니다.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풍물에 접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보는 것이 모두 새롭고 신기합니다’고 썼다는데 바로 시스티나 성당에서 감명받았을 것 같았다. 예술품에서 받은 감동과 충격의 떨림이 음표가 되고 화음을 이뤘을 명곡. 격한 감동이 그의 가슴 안에서 순화되어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 밝은 멜로디를 이뤄냈다.

독일의 부유한 가정 태생인 멘델스존이 조숙한 천재로 ‘이탈리아’를 쓰던 시기는 창작 열기가 한창 높을 때였다. 시원스럽게 뻗어 나가는 ‘이탈리아’ 1악장의 멜로디는 여유 있는 영감으로 창조력을 발휘한 것을 짐작케 한다.

멘델스존은 본격적인 활동기에 여행으로 견문을 넓히며 창작에의 상승계단을 올랐다. 실제로 본 상황보다 영감과 무한한 상상력, 꿈의 빛깔로 채색하여 새 길을 다시 만들어가는 예술. 계단은 누구에게나 상승욕구를 환기시켜 준다. 그러나 로마의 곳곳에 있는 많은 계단들과 건물이 파괴된 현장에도 뒹굴고 있는 계단 조각들을 보며, 계단이란 인류 상승의 어려움을 상징하고 있다고 느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가는 성공으로의 계단, 실로 영감은 없고 얄팍한 줄글을 써온 처지여서 계단은 내게 오르고 싶은 존재였다. 그러나 어설픈 감성 조각들의 맥을 못 잇는 둔한 처지이기에 계단은 더욱 높아만 보였었다.

로마의 종교 예술품들은 신앙이나 예술혼으로 초월적인 세계에 다가가는 계단을 마련한 것이 아니었을까. 고통의 소산인 예술이 기존의 것을 뛰어넘어 한 계단씩 올라 가까워지는 세계.

 

이탈리아에서 돌아와 멘델스존의 전기를 읽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작곡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1악장은 이탈리아에서 쉽게 완성했으나, 나머지는 이탈리아에 머문 반 년 동안에도 완성을 못한 채 귀국해서 반년 후에야 마무리했다.

천재답게 작품을 쉽게 쓰던 멘델스존이 ‘이탈리아’ 2, 3, 4악장에서 붓방아를 찧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혹시 로마인들의 위대한 걸작을 보고 이전보다 작품 쓰기에 부담이 된 것인가. 유복하게 성장하여 삶의 진한 고통을 모른 것을 자각하고, 깊고 깊은 울림의 작품을 쓰고 싶지 않았을까. 로마에서 새로운 힘도 얻었지만 갈등도 느꼈으리라는 송구한 추측을 해본다.

평범한 우리도 걸작을 대했을 때 뭔가 이루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솟구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재현은 불가능하지만 나의 내부에서 전연 새로운 생명을 얻어서 좋은 작품으로 연결되었으면 하고 바란 일이 있다.

멘델스존은 어렵게 끝낸 이탈리아 교향곡을 자신의 지휘로 초연을 했다. 그러나 다시 불만스러운 것이 발견되어 여러 차례 고치고 또 고쳤다. 2악장의 애수 띤 멜로디와 3악장의 쾌활함, 격렬하고 우아한 이탈리아 춤곡으로 시작되는 4악장 등 명곡을 완성하고 나서의 그의 말이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내가 작곡한 모든 부분들은 내 가슴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믿고 있는 음악의 유일한 가드 라인이다.”

더욱이 로마의 예술품은 천국으로 다가가려던 예술 혼, 종교인의 천국에 대한 염원임을 터득하고, 신자인 멘델스존이 고뇌하고 고치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문화는 꿈과 이상의 추구이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 가는 것, 보이지 않는 미래에 쫓기고 사는 우리에게 계단을 하나씩 오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로마 여행 때 예술품과 은밀한 교신을 못한 아쉬움을 갖는다면 평범한 처지에 가당치도 않다. 그러나 준비성 부족으로 잔돈이 없어 못 산 파란 묵주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박쥐처럼 초음파를 보내서 범인(凡人)이 못 느끼는 것까지 터득해 내는 이들, 그들이 위대한 예술가라는 평범한 진리를 로마에서 터득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베드로 성당, 돔의 유리창을 통해서 프라스코의 빛깔을 선명하게 해주는 햇빛 같은 고마운 것들도 많으리라. 로마 폐허의 공간에서도 생명이 약진하는 음악을 떠올리며 계단을 오를 수 있게 해준 명곡 ‘이탈리아’도 그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