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하나로 남은 할머니

                                                                                                 김수봉

 “잣대는 열 번 대고 가새(가위)는 한 번 대느리라.”

살아 생전 할머니는 이 말을 자주 하셨다. 옷감을 펴놓고 마름질을 할 때, 자[尺]를 대충 대고는 가위로 싹둑 잘라 버렸다가는 지은 옷의 치수가 안 맞아 돌이킬 수 없는 낭패에 이른다는 이 말.

할머니는 바느질에서만 꼭 이 말을 쓰던 것은 아니었다. 농사일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 밥솥 아궁이에 불을 때고 난 후에도 식구들을 타이를 때는 화두(話頭)처럼 이 말을 했었다.

할머니 세상 뜨신 지 어언 삼십 년이 넘어간다. 그 시대 사람으로는 꽤 장수하신 편이었고, 당시 펄펄하던 내 나이로는 할머니의 임종이 그저 당연한 순리로만 여겨졌다. 가슴 미어지는 슬픔이라든가, 눈앞이 캄캄했다던가 하는 육친의 정보다는 담담함 그것이었다.

세월은 모든 것을 변모시킨다. 씻어내기도 하고 퇴색하게도 하고 지워버리기도 한다. 잊지 않으려 했던 감격이 까맣게 잊혀지고, 잊어버리려 했던 일이 많은 세월 뒤에도 문득문득 살아나는 것이 있다.

할머니 가신 지 10년, 20년이 흐른 세월 속에서, 할머니의 유품들이 하나씩 치워지고 버려졌듯이 할머니의 기억도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그 세월이 뒤안길로 가 버린 줄만 알았더니 앞에서는 내 나이가 쌓여지고 있었을 줄이야!

50을 넘어 이순(耳順)에 오르면서 깜짝깜짝 놀라듯 할머니의 말씀들과 그 실행들이 이제야 눈앞에 다가서는 것이다.

할머니는 학력이 전무한 분이었다. 예배당을 열성으로 다니신 덕에 어찌어찌 국문을 깨쳐서는 성경책과 찬송가를 더듬더듬 해독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 마음씀과 올곧은 행실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그것은 할머니의 천성이랄 수도 있으나  ‘삶 속의 겪음’에서 하나씩 얻어진 것들이었다. 바느질감 앞에서나 채마밭 고랑에서도 더불어 사는 일과 돌보는 손길의 이치를 알아냈으리라.

사람이 사람과 이웃해 살면서 지켜야 할 것과 안 해야 할 것을 알았을 뿐인 할머니, 지식이 없었으니 자신을 교묘하게 감출 수도 남의 잘못을 들출 수도 없었으며, 마음 따로 두고 말 따로 꾸며낼 줄도 몰랐다.

그 할머니에 비하면 나는 썩 지식이 많은 편이다. 시대(時代) 덕분에 대학 공부를 했고, 책을 읽고 강(講)을 귀동냥해서 지식을 쌓았고, 스스로 지식인의 반열에 든다고 자부도 해 왔다.

그러나 나의 지식은 할머니의 무식보다 무엇이 더 나았던가. 사람답게 사는 데에 오히려 방해된 것은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이제 할머니의 가위를 앞에 놓고 앉으면 잠언(箴言) 같은 당신의 말씀들이 되살아난다.

“배웠다고 다 같다냐.”

“안다고 다 되는 거 아니다.”

방바닥에 옷감을 펼쳐놓고 앉아서 가위와 잣대를 여러 번 들었다 놓았다 하시던 할머니, 한 다리 부러진 돋보기 안경 너머로 이따금씩 내게도 눈길을 보내던 할머니 모습이 오늘은 수련 잎처럼 떠오른다.

나는 이 가위로 내 지식의 상당 부분을 잘라 내 버리고 싶은 자괴에 빠지는 때가 많다.

 

이태 전 어느 날이었던가. 잡동사니 연장들을 넣어둔 궤짝에서 문득 발견한 가위였다. 그때 나는 못 박는 작은 망치를 찾다가 언제 넣어두었는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가위에 눈이 머문 것이다. 아, 할머니 평생의 손때가 묻은 분신 같은 이 쇠붙이 하나.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조선조 식의 가위다. 오늘날 가위 모습과는 많이 다른, 두 날과 손잡이가 똑같은 모양으로 엇결어서 협상(鋏狀)을 이룬 강철 가위였다. 아마도 어느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장색(匠色)이 연금(鍊金)했음직한 이 가위는 엿장수 가위 비슷하면서도 그것의 반만한 크기로 날렵하게 생겼고 굳센 쇠였다.

옷감이나 창호지만 자르는 것이 아니라 고추도 다듬고, 필요하면 철사토막이나 양철 쪽을 자르는 데도 쓰였었다. 할머니는 때때로 이 가위로 내 손톱을 깎아주면서 이런 말씀을 조용조용 들려주기도 했다.

“손톱 밑에 가시 박힌 것만 알고 염통에 쉬 스는 것 몰라서는 안 되는 거여.”

 

어려서 살던 시골집 바람벽에는 조부님 초상을 위시해서 할머니와 부모님 사진도 색이 바래가면서 걸려 있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나 버린 지금은 언제 어떻게 그것이 없어졌는지도 알 길이 없다.

할머니의 유품들이 값나가는 것이 아니어서, 이사 때마다 낡은 것에 대한 무관심이, 나의 어정뜬 지식이, 그 모두를 유실되게 한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가위 하나가 아직 우리 집 연장 궤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은 우리를 지켜보기 위해서였으리라. 당신의 손자와 증손자와 또 새로 태어난 현손들을 지켜보면서, 밖에서 오는 액(厄)은 잘라주고, 안에서 자라는 사악(邪惡)이 있으면 또한 잘라내기 위해서였으리라.

내일을 살아갈 자손들의 마음 속에 바른 잣대를 갖게 하고 마침내 잘라버려야 할 일이 생길 때는 단호히 자를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