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60송이

                                                                                                     姜信玉

 식사가 마악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한 청년이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식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방을 확인한 후 그 꽃바구니를 식탁 전면에 놓고 나갔다. 장미 바구니였다. 의외였다. 누구도 우리 잔치에 꽃바구니를 보낼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미의 출연은 갑자기 방안을 환하게 하였다. 꽃에서 풍기는 향기 또한 우리들의 기분을 한층 들뜨게 하는 느낌이었다.

우리 가족은 물론 축하객들의 시선이 자꾸 꽃바구니 쪽으로 돌아간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 남편은 부지런히 꽃다발 쪽으로 갔다. 바구니에 늘어뜨린 리본을 보고 더욱 놀라는 표정이었다. 놀라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남편 앞으로 장미 꽃바구니가 배달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크고 화려한 붉은 장미다. 신기한 일이라는 듯 박수가 나오고 야단이다.

오늘은 남편의 환갑 잔칫날이다. 가까운 친척과 몇몇의 친구를 초대하여 조촐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남에게 폐를 끼치고 부담을 줄 것을 걱정하여 망설였었다. 가족 회의가 분분했지만, 결국 아들 내외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이런 때 가까운 어른들께 점심 한 번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 그 애들이 우기지 않았으면 그냥 우리 가족끼리만 아침식사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아들의 얇은 월급 봉투를 축낸 일이 안쓰럽기는 했지만, 보람이 있었기에 지나고 나서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나로서는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남편의 환갑을 뜻있게 보낸 일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잔치는 아들 내외가 차린다고 했지만, 나는 아내로서 무엇을 선물할까 궁리하던 끝이다.

흔히 사랑하는 친구나 애인에게 보내 주는 최상의 선물로는 장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서로 좋은 일에나 궂은 일에나 크게 내색을 못하고 덤덤하게만 살아온 바보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만큼은 마음껏 화려하게 축하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누가 장미 다발을 보내 주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점쳐 본 것도 솔직한 고백이다. 환상 어린 마음으로 며칠 전부터 친지와 친구들을 손꼽아 보았지만, 우리 친척 가운데 꽃다발을 들고 나타날 사람은 얼른 꼽아지지 않는다. 봉투를 들고 왔으면 왔지 꽃다발을 기다린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무리한 생각이다. 그렇다고 봉투는 받지 않기로 했으니 꽃으로 대신 하라고 미리 전갈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장미 바구니가 배달된 것이다.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남편과 나는 장미 60송이를 받을 만치 긴 세월을 살면서도 서로간에 남편을 위하여 그리고 아내를 위하여 꽃다발 한 묶음을 보낼 줄 몰랐다.

그런 남편에게 큼직한 꽃다발이 안겨진 것이다. 아내 생일 한 번을 챙겨 주지 않던 남편에게 저렇게 화려한 바구니가 배달되다니 누가 보아도 놀랄 일이다. 어디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며 흥을 돋우는 이도 있었다. 하여간 축하할 일이라며 여기저기서 찬사들이다. 사돈댁에서 보내온 조그만 난 화분과 그 옆에 아무개 씨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남편의 친구가 보낸 아담한 바구니 하나가 60송이 장미 다발을 더 화려하게 받쳐주고 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고 이어서 과일 접시가 오고간다. 그 무렵,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동생댁이 장미 바구니 쪽으로 나가더니 길게 늘어뜨린 분홍색 리본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비로소 꽃을 보내 준 장본인을 알아낸 것이다.

“형님, 형님이 멋있는 분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멋쟁이인 줄은 몰랐어요. 형님 축하해요.”

동생댁이 가만히 옆에 와서 속삭이듯 말문을 열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쑥스럽던지 나는 무슨 잘못을 발각당한 사람처럼 당황했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흘깃 훔쳐봤다. 남편은 여전히 싱글벙글 입이 귀까지 찢어질듯 다물 줄을 모른다. 멋을 모르는 남편, 그러나 그 웃음이 얼마나 순박하고 값진가. 생각하면 오히려 재주를 부릴 줄 모르는 멋없는 남편이 더 고마울 때가 많지 않았던가. 멋을 모르는 남편에게 환갑 선물로 보낸 장미 바구니는 아내인 내가 보낸 것이다. 분홍색 리본에는 이렇게 적었다.

‘은상이 아버지 축하해요. 그 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앞으로도 건강하기를 기도할게요. 은상이 아버지 환갑을 축하하면서, 은상이 엄마가 드립니다.’

꽃가게 주인은 꽃바구니를 만들면서 이렇게 긴 축하 글을 써 보기는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날 긴 머리채를 잘라 남편에게 시계줄을 선물한 델라의 기쁨인들 이만할까. 델라는 오 헨리의 소설 왙㈇?보떽?선물왎?등장하는 가난한 주인공이다. 어쨌든 이렇게 핑계 김에 행복해지고 내 자신 멋쟁이가 돼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집으로 옮겨 놓은 꽃바구니에서는 여전히 향이 흐르고, 귀까지 돌아간 남편의 입은 아직도 다물지 못하고 허허댄다. 내가 한 결단은 아주 작은 일이었는데, 저렇게 좋아하니 오히려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그의 모습은 나를 오래도록 기쁘게 해줄 것이다.

 

 

 

강신옥

계간 수필공원에 추천 완료(97년).

수필집 『창으로 보는 풍경화』(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