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뇌물

                                                                                                 김예경

 종이 접기를 배우러 다니던 작은아이가 색다른 장신구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헌 잡지책을 이용한 반지와 귀걸이 그리고 격조 있는 색깔의 한지로 만든 붉은 꽃 브로치다. 섬세하게 각을 지어 접은 솜씨가 반지와 귀걸이에 오밀조밀 붙어 있는 모양이 앙증맞고, 종이 브로치의 우아한 색감이 제법 신선하다. “엄마,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진짜 보석 사 드릴게요”라는 작은아이의 애교는 선물받는 즐거움을 더하게 했다.

선물받아서 싫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으니 아마도 선물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꼭 값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보낸 경우라 하더라도 일단은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선물이다. 어린아이들은 선생님에게서 받은 가정통신문 한 장을 마치 큰 선물이라도 받은 양 자랑스레 흔들며 집으로 간다. 아직 선물의 의미나 가치를 이해할 만한 나이가 아닌데도 무엇이든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선물받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은 어쩌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받고 싶기보다는 무엇이든 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생기니 말이다. 학창 시절에 좋아하는 짝이나 친하고 싶은 친구에게 하다못해 지우개 한 개, 색연필 한 자루라도 주지 못해 안달했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면 선물을 주어야 한다고 배운 것도 아닌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으레 선물이 주고 싶어지는 것을 보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감성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랑이란 꼭 이성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넓은 의미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딸아이들에게 선물이 없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 선물을 주지 않는 남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더라도 절대 믿지 말라고 이른다. 그래서 작은아이가 가끔 남자 친구에게서 선물을 받아오는 것을 보며, 아마도 그 친구가 딸아이를 사랑하고 있나 보다고 내심 혼자 짐작으로 즐거워한다. 선물이랬자 머리핀이나 손지갑 또는 수첩 같은 작은 소지품들이지만, 자주 선물을 주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 남자 친구의 사랑이 가짜는 아니리라고 나름대로 가늠해 보기도 한다. 꽤 넉넉한 형편이지만 늦게까지 부모 돈으로 공부하고 있는 처지에 비추어 알맞은 선물을 주는 점도 마음에 드니, 그 선물들은 내가 그 청년에게 믿음성을 느끼게 하는 역할까지도 단단히 하는 셈이다.

선물의 가치는 그 물건값의 고하로 따질 수 없고 따져서도 안 되는 그야말로 성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이나 순수한 마음이나 또는 기쁨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의 가치들만이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물을 하는 행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색종이 한 장이나 작은 머리핀 한 개로도 충분히 가치를 발휘하는,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 투명한 작업이다.

선물을 가장 빛나는 의미로 이름짓는 사람들은 뭐니뭐니 해도 연인들이다. 선물은 완전한 사랑, 즉 쌍방의 사랑을 바탕으로 할 때에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때로는 일방적인 사랑으로 선물이 주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물질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한 선물임에는 틀림없지만 받는 기쁨은 반감될 수도 있기에 진정한 선물이랄 수는 없다. 소위 말하는 짝사랑을 완전한 사랑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처녀 적에 꽤 오랜 기간을 두고 내게 선물을 보낸 사람이 있었다. 선물이 쌓여 갈수록 처음의 즐거움은 줄어들고 대신 부담감이 늘어갔다. 내게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일방적인 사랑으로는 선물이 주는 기쁨을 자유롭게 즐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값비싼 그의 선물들보다는 잠시의 만남으로 끝냄을 안타까워했던 S씨가 어느 산사에서 보낸 붉은 단풍잎 한 장이 내게는 오히려 더 오랫동안 선물로 간직되었었다.

물질을 주고받는 점에서 선물과 흡사하게 보이나 사실은 전혀 다른 것으로 뇌물을 들 수 있다. 아무 사심 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순수한 것이 선물인 것에 비해, 뇌물은 사랑과는 전혀 무관하게 주고받으며 그 뒤에는 물질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무언의 협박 내지는 치졸한 계산이 숨어 있다.

그러니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매우 자명한데도 그 두 단어를 애써 바꾸어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보아도 뇌물로 생각되는 거액의 거래를 굳이 선물이라고 주장하는 부패 권력가들이 그들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거금을 준 사람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었다 하고 받은 사람 역시 아무 청탁도 받은 바 없다 하니, 그들 사이에 사랑만 돈독하다면 그 돈은 선물이라고 주장할 만하다. 부모 형제나 인척 지간이라면 또 모를까 생판 남남끼리 거액의 재산을 무상으로 주고받았다는 것이 보통의 정서로서는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그들이 서로 네것 내것 없이 나누어 쓸 만치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 한다면 그런대로 이해가 갈 듯도 하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이, 장본인들이 서로 만나 본 적도 없다거나 한두 번 만난 사이일 뿐이라고 주장하지 않던가? 아무리 따져보아도 뇌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 분명한데도 자꾸 선물이라고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들의 국어 교육이 잘못된 탓이 아닐까?

선물은 아무런 물질적 조건이나 요구를 수반하지 않으니 선물을 주고받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구속이 없다. 그들은 그저 선물이 주는 행복감을 자유롭게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뇌물을 주고받은 사람들은 서로 셈해야 할 계산이 남아 있는 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계산이 끝난 후에도 그 자유를 돌려받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보인다. 근간에 보다시피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데, 언제 어디서 그 계산서가 튀어나와 패가망신할지 모르니 아무래도 옛날의 자유를 회복하기는 힘들리라. 기쁨과 자유가 선물의 본분이라면 뇌물의 본분은 계산과 구속이라고나 할까?

사람은 자유가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는 존재라고도 하고 명예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 귀중한 자유와 명예를 뇌물과 바꾼 사람들에게는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 세도가를 부러워할 일도 없고 권세 누리기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으니, 종이 브로치처럼 가볍고 선물 받은 마음처럼 자유로운 내 삶이 이만하면 족하다.

 

 

 

김예경

수필공원으로 등단(98년).

저서 『단감찾기』, 『가까이 더 가까이』(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