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행복했었다

                                                                                                    서명희

 하루 종일 눈이 올 듯한 날씨가 기분을 잔뜩 가라앉게 하고 있다. 이런 날이면 나는 아이들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이들은 다 자라서 딸애는 시집을 갔고, 아들애는 군대를 갔다. 그러니 저녁이 된다 해도 아이들로 인해 분주해질 일이 없고, 한번 치워놓은 집은 내 손으로 어질기 전에는 그대로이다.

반 지하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던 때 일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나는 조그만 분식집을 하고 있던 때라 늘 바삐 허둥대며 살아도 애들은 엄마를 허기져 했다. 분식집과 살림집이 멀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은놈이 가게에서 밥 먹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아침이면 전기 밥솥에 밥을 해두고 반찬 몇 가지를 챙겨 놓고 나갔다. 그러면 큰애가 동생이랑 찾아 먹었다.

그 날도 오늘처럼 초겨울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오후쯤 작은애가 울먹이며 엄마를 찾아왔다. 커다란 눈에는 눈물을 반쯤 담은 채였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가슴이 짠하게 아프기부터 했다. 작은놈은 무어라 설명도 않고 무턱대고 집으로 가자고 졸라댔다. 집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딸아이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방바닥엔 반찬이랑 밥그릇이 엎어지고 쏟아져 나뒹굴고 있었다. 김치 그릇은 엎어져 국물은 장롱 밑에까지 흘러들어가고, 멸치조림이랑 장아찌는 벽으로 튀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던 나는 놀라 딸아이를 쳐다보았다. 딸아이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를 보더니 더욱 서럽게 울었다. 작은놈은 울음이 섞여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로 설명을 했다. 누나가 밥솥의 밥을 그릇에 담지도 않고 꾸역꾸역 먹으며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 바보처럼 굴어서 방바닥을 두드리며 불렀다고, 그랬더니 화를 내며 반찬 그릇을 집어던지며 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이 이것저것 던지며 싸웠나 보다.

큰애가 엄마 눈치를 살피며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전학을 와서 친구도 없지만 아는 척하는 친구가 있어도 우리 집은 좁고 초라해서 데리고 올 수도 없다고 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려고 해도 동생 밥을 챙겨 주어야 하니 그럴 수도 없고, 동생이랑 둘이서 밥을 먹는 것도 너무 슬퍼서 싫다며 울었다.

어린것들이 어지간히 외롭고 허전했던가 보다. 그 날 하루는 장사를 하지 않고 애들이랑 지내야겠다 싶어 가게문을 일찍 닫았다. 어린애들은 어린애들이었다. 금방 눈을 반짝이며 통닭 먹으러 가자며 생기가 돌았다. 동네 입구에 있는 통닭 집으로 데리고 갔다.

통닭을 먹이려는데 작은놈이 얼른 닭다리를 뚝 떼어 누나에게 주며 “누나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한다. 큰애는 뚱하니 “너 먹어” 하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컥 목이 메인다. 그러나 딸애를 나무라듯 “동생이 주면 받아 먹어” 하면서 애써 참았다.

어린것들이지만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는지 편한 웃음을 보였다. 엄마에게도 고기 한 점 떼어주며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과일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매일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친구 얘기, 선생님 얘기를 번갈아 하더니 엄마 무릎에 눕고, 기대어 잠이 들었다. 예쁘고 착한 딸아이가 가슴에 저려 꼭 껴안았다가 다시 의젓하고 속깊은 아들아이가 미더워 안아 주었다.

단칸방에 몸 부대끼며 살았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튼튼히 굳힌 것이 그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난이 불행만이 아닌 것도 그때 알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 알게 된 가족의 소중함으로 둘의 우애는 남달라 보인다.

아이들의 다정스러운 웃음이 떠오른다. 딸에게 전화를 해서 주말쯤에 동생 면회라도 가자고 해야겠다.

 

천료 소감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나니 봄기운이 날아들듯 등단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많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어떤 관문을 통과한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습니다. 혼자 있을 때면 살포시 미소가 번져나며 글을 쓴다는 것이 희망이 될 수 있는 나이가 된 듯도 싶어 더욱 다행스럽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하고, 꽁꽁 얼어 있던 강물이 쨍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것이 모자라는 글을 뽑아주신 여러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안 된 글이라도 용기를 주기 위해 칭찬을 아끼지 않던 정봉구 선생님과 다정한 신촌 문우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머지않아 봄이 올 것입니다. 이 봄은 얼어 있던 나의 수필세계를 녹여 줄 것이라 믿으며 가슴 가득 행복을 머금고 봄을 기다릴 겁니다.

 

                                                                                                        서명희

시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