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포장마차의 소녀

 

                                                                                            강인희

 

나는 스토커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파트 동쪽 베란다에서 훤히 보이는 생활도로 보도블록 쪽에 주황색 천막의 포장마차가 생기고 나서부터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 자리는 1톤 트럭이나 승용차 주차장이었다. 밤에 세워두었다가 새벽에 없어지는 임시 주차장인 양.

그 포장마차의 스토커가 되던 날, 등골이 서늘할 만큼 유년 시절의 내 눈과 꼭 닮은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겁먹은 눈동자의 소녀도 시선을 의식했는지 얼른 포장마차 안으로 몸을 사린다.

“할머니, 막걸리 2되 주소.”

“옛수. 꼭꼭 눌러 담았수.”

“바다 따라 30년 떠돈 인생살이지만 할머니 막걸리만큼 입안에 척 감기는 술은 없었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 할머니와 어부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방의 잠긴 문을 또 확인했었다. 행여 누가 막걸리를 사러 올까 가슴조이며 콩콩이던 어린 시절, 유리문이 드르륵 열리면 얼른 장지문 뒤로 몸을 숨기곤 했었다. 그때 나이 일곱 살. 철부지였음에도 할머니가 부끄러웠고, 막걸리를 만들어 몰래 파시는 할머니가 창피했다. 찝찔한 바다 내음, 비릿한 내음, 햇볕에 그을린 어부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새벽같이 들리는 어협이 자리한 바닷가 동네. 내 유년 시절의 기가 죽어지내던 가슴 아픈 곳의 기억이다.

“밤에 시끄러워 편히 자겠나? 경찰서에 전화하든지 무슨 조치를 취해야지.”

“먹고 살겠다고 하는데 눈 좀 감아 줍시다. 업고 끌고 애들도 있는 것 같은데…….”

아파트 내에서 동 주민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악쓰며 우는 동생을 업고 달래다 기진맥진 축 늘어지는 소녀의 두 팔에 내 팔을 분질러 끼워주고 싶은 충동에 몸이 떨린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2시, 동쪽 베란다가 소란스럽다.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한 번만 봐 주세요…….”

잘못을 비는 모든 구사어가 포장마차 메뉴처럼 튀어나온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불법 포장마차 단속하는 날 내게 미리 알려 달라고 할까?

그 뒤 한 달 내내 포장마차는 도로의 먼지만 삼키고 있었다. 나는 안절부절 베란다 밖을 내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세무서 직원이 밀주 단속하는 날이면 할머니는 보리짚 속에 막걸리들을 깊숙이 감추고, 우리 형제들은 보리짚 더미 위에 앉게 하고 맷돌을 돌리곤 하셨다. 맷돌을 돌릴 때마다 곡식 낟알들은 형체가 사라져 가루가 되어 둥그런 멍석 위에 수북히 쌓였다.

가끔 내 뼈가 맷돌에 갈려 가루가 되는 악몽에 소스라쳐 잠을 깨면 별들이 와르르 내게로 쏟아졌다. 이 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수호천사라고 믿었다.

“니 할아버지가 있는 재산 술로 다 말아먹었다. 술이라면 지긋지긋한데, 이 팔자가 무신 놈의 팔잔지!”

할머니는 막걸리를 빚으시다 한숨을 쉬시며 푸념을 하셨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건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더 작아지곤 하였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어머니의 죽음, 다섯 손자 손녀의 뒤치다꺼리에 항상 입을 다물 날이 없던 우리 할머니!

포장마차 스토커에 다시 열을 올렸다. 생머리를 한 갈래로 질끈 동여맸던 소녀 머리가 짧아졌다. 여중생 때 귀밑 바싹 자른 내 단발머리처럼.

열대야 현상으로 밤잠을 설치는 날들이 이어진다. 술꾼들은 여느 때보다 더 술을 마시나 보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밤 내내 포장마차는 시끄러웠다.

삶에 지쳐 초라한 뒷모습의 아버지를 닮은 남정네들의 긴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에 휘청거렸다.

새어머니가 오신 후 채 이 년도 안 돼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셨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아버지는 부두에서 하역업자와 노조원 거느리기가 힘드셨나 보다. 폭음과 식은땀으로 며칠 밤을 괴로워하셨다. 상좀녀(물질을 잘하는 해녀)인 어머니는 가게를 차려 살림을 꾸려가셨다.

바다 속의 해산물들이 새어머니 두렁박 속에서 돈으로 변했다. 생활력이 강한 새어머니와 무력한 아버지, 늘어가는 새어머니의 푸념에 비례하여 말수가 적어지고 주량만 늘어가는 아버지.

볼 때마다 작아지는 아버지의 어깨를 보며 습관적으로 커피를 끊였다. 병 속에서 굳은 커피 덩어리를 쇠수저로 긁노라면 내 마음의 응어리를 파내는 쾌감을 느끼곤 했다. 코에 은은히 스며드는 커피 향이 돌아가신 어머니 체취와 흡사하리라는 믿음에서였을까? 커피를 끓이고 나면 주눅 든 마음이 다소 나아졌다. 지금도 찻집 앞을 지나다 진한 커피 향이 코끝에 스미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술이 웬수라던 할머니께서 술을 몰래 빚어 가슴조이며 파셨던 일을 이해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버지께서 삶에 지쳐 술을 잡수시는 것도, 새어머니가 입에 대지도 않은 소주 2홉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밤새 미친 여자처럼 허우적거리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 적도 여고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내 기억 뒤편에 있어서일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결혼할 쯤 아버지와 가족 묘지에 갔었다. 한라산 중산간 오름에 위치한 묘지는 온통 주위가 억새밭이었다. 자줏빛을 띤 황갈색의 이삭으로 된 억새꽃들이 물결을 이루는 들판의 한가운데 앉았다. 아버지께서는 할머니 묘에 막걸리를, 어머니 묘에는 커피를 올렸다. 커피 잔을 상석 앞에 놓는 아버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땅 속에서 니 에미가 내 말 듣고 있을 게다. 마음이 따뜻한 여자였지. 속상할 때 차 한잔 끓여와 마음을 녹여주곤 했다. 너도 엄마처럼 남편에게 마음이 따뜻한 아내가 되거라. 네가 끓여주는 커피를 보면 니 에미 생각나더구나.”

술 중독으로 손가락을 파르르 떠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미움과 연민으로 가슴저미던 시절. 아버지 닮은 남자와는 절대 결혼을 안 하리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던가.

‘죄송해요. 아버지’를 마음 속으로 수천 번 되뇌이며 이 날처럼 운 날이 내 생애에 또 있을까? 이 날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까지 가슴이 따뜻한 아버지로 내 마음에 있다.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포장마차 스토커도 막을 내렸다. 주황색 포장마차가 단장하면서 주인이 바꾸었기 때문이다.

“엄마, 달님이 자꾸 나에게로 와요.”

동쪽 베란다에서 까치발로 달을 쳐다보고 좋아하며 손뼉치는 딸의 옆에서 나는 포장마차 소녀를 생각한다. 한 여름, 등골을 서늘케 했던 소녀의 눈빛이 밤하늘의 별이 되어 내 가슴에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