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立場)

                                                                                          許世旭

 핸들을 잡으면 이 나이에도 물고기가 되고 싶다. 저 넓은 강폭을 마음대로 활개치면서 늘어지게 뻐꾸기를 듣고 싶다. 하얗게 물을 가르거나 수면에 잠긴 하얀 구름을 부수면서 솨솨 달리고 싶다.

활짝 열린 길을 클랙슨 누르면서 호기를 부리고 싶은데 금방 신호를 만나고 촘촘한 차선에 묶이고 만다. 나 혼자 여기 한마당을 독차지하고픈데 피라미와 망둥이, 쏘가리와 잉어가 여기저기서 팔딱거린다. 마음조이며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데 집채만한 대형 버스의 까만 범퍼가 가로막고, 살짝쿵 차선을 바꿀 참에 어디서 불거진 피라미로 짜증이 난다.

파란 신호와 함께 막 출발하려는데 쏜살같이 스쳐가는 외국제 쏘가리에 덜컥 혼이 빠진다. 그래서 멈칫할 때 부르릉 망둥이들이 뿌연 먼지를 날리며 오도방정을 떤다. 거기다 깜둥이 메기는 벌컥 성질을 부리더니 앙칼지도록 유턴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땀나게 한 것은 내 헤드라이트로 살짝 스쳐가는 행인의 옷자락이 보일 때다. 그럴 때면 아서라 후회를 한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는가고.

어쩌다가 버스를 탄다. 운이 좋아 운전석 뒷자리 팔걸이 의자에 앉으면 상좌에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가재는 게편이라고 어느 새 기사의 편이 된다. 그냥 시원스레 달리고 싶다. 빨간 조무래기가 썰매를 타듯 새치기하면 기사랑 함께 된소리 욕이 튀어나온다. 그러다가도 우리 버스가 냉큼 남을 추월하면 박수라도 치고 싶지만 시치미를 떼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신호를 받고 출발을 서두르는데 아직도 늑장을 부리며 휘적휘적 걸어오는 행인이 밉살스럽다.

버스는 허우대가 큰데다 속도 넓었다. 피라미나 망둥이쯤이야 덤벼보라는 듯 배짱이 두둑했다. 그 고대광실에서 사방을 살피면 든든했었다. 제아무리 번쩍거리는 외제 쏘가리도 내 발 아래로 머물고, 제아무리 번개 같은 날쌔기도 슬금슬금 버스를 피해 갔다. 공연히 으스대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내 발로 걷는 행인이 되었을 때의 생각은 딴판이었다.

가로수 우거지고 아스팔트 말끔한 보도를 뚜벅뚜벅 걷노라면 오랫동안 빼앗겼던 강토에 돌아온 환희를 느낀다. 보도에서 손을 뻗으면 금방 손가락이 잘릴듯 수레들이 소낙비처럼 광분하고 있었다. 자치 관서가 하얗게 금을 그어 횡단보도, 그 안전지대를 만들었지만 겨우 파아란 신호가 켜졌을 때뿐이었다. 그토록 짧았던 안전 시간마저 앞뒤로 짤리기 마련이다. 노란 신호, 그 깜빡이는 시간마저 차량들에게 빼앗기기 일쑤였다. 그 길에 쇳덩이의 까만 바퀴가 밀고 들어오면 꼼짝할 수 없었다. 심지어 파아란 신호가 분명할 때도 그렇게 무도한 폭력은 감행되었다. 누가 뭐라 해도 씽씽 굴러가는 무쇠덩어리에 덤비기란 사마귀가 팔뚝을 걷어 올리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횡포를 몇 번인가 목도한 뒤, 차량은 행인을 윽박지르는 흉기로 보였다. 그들이 떼를 지어서 붕붕 덤벼올 때는 심지어 적으로 보였다. 두 눈에 불을 켜고 두 팔에 철봉을 든 네 개의 쇠바퀴는 물론 미꾸라지처럼 비인 구멍을 용케 찾아 단 두 개의 바퀴로 도깨비의 바람처럼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수레들이 무서워진 것이다.

그것들은 아주 옛날 가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선망을 샀었다. 양반이나 벼슬아치가 아기작거리며 수염을 쓰다듬다가 노비의 부축으로 가마에 올랐었다. 그를 배행하는 수레, 그가 다스리는 병거가 많을수록 지체가 높았다. 천자나 제후, 공경·대부의 신분적 차등이 그렇게 갈라졌건만 그래도 흉기는 아니었다. 다만 무섭고 미울지언정.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차를 보면 반가웠다. 한국전쟁이 막바지일 때 휘발유가 모자랐던지 트럭은 운전대 옆에 기관차를 방불케 목탄을 태우는 보일러를 달고 하얗게 연기를 뿜었다. 발진할 때면 범퍼 한복판 깊숙한 구멍에다 제트(Z)형 쇠막대를 꽂고 근육이 불거진 조수가 그걸 마구 돌려야 비로소 픽픽 모터에 전기를 격발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성난 돼지처럼 엔진의 콧소리가 진동하면 우리 꼬마들은 와~ 함성을 질렀고, 그 커다란 차체가 움직이면 손을 흔들어 전별을 아쉬워했다. 그럴 때마다 두메의 신작로는 시끌짝했다.

닷새마다 장날이면 어른들의 나들이가 많았다. 빨랫비누 몇 장에 당성냥 서너 갑, 거기다가 소금에 절인 갈치 한 마리가 고작인 봇짐을 어깨에 걸치고 거나해서 돌아오다가 때마침 산판길을 오가는 군용 트럭을 만나면 장꾼들은 모두 환호했다. “서도~” 하고 손을 들면 멋쟁이 운전수가 차를 멈춘다. 사람들은 금세 다람쥐처럼 목재나 곡물 위를 기어올랐다. 그들은 높은 화물더미서 왁자지껄 신이 난 것이다. 그들은 다람쥐처럼 엎디어 요동치면서도 명색이 차를 타고 돈 한 푼 쓰지 않은 것을 횡재요 은혜로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때 트럭에 매달리던 장꾼도 아니요, 더구나 트럭을 몰던 운전수도 아닌데다, 운이 좋아서 하루에 기껏 서너 번 차가 들어오는 꼬불꼬불 신작로 자갈길이었음인지 도시 차가 흉기로 보이지 않았다. 날마다 하늘의 흰구름이 산턱에 내려와서 졸다가는 두메, 그 무겁던 적막을 깨고 붕붕거렸던 차는 한 폭의 그림이요 한 가지 위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