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치마

                                                                                                 李翊燮

 “선생님, 이게 무슨 꽃이에요?”

“그러게, 이게 무슨 꽃이지?”

생전 처음 보는 꽃이다. 그래도 어디선가 본 듯한 꽃이기도 하다.

“이게 무슨 치마 아니야?”

처녀치마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국문학과 1학년을 데리고 김유정의 ‘동백꽃’을 찾아서 관악산 골짜기를 오르고 있는 길이었다. 4월 10일경이었을 것이다. 관악산을 곁에 두고도 졸업할 때까지 그 정상을 한 번 넘어 보지 못하고 마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 안타까워 체육 학점에 이게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창하곤 했는데, 적어도 국문학과 학생들에게는 나라도 앞장서서 이런 기회를 만들어 보려 했던 것이다. 등산복 차림으로 수업을 끝내고 우리는 저수지가 있는 골짜기로 하여 등산을 시작하였다.

이 골짜기 코스는 우선 호젓해서 좋다. 학교 구내에서 시작하는 코스이므로, 간혹 저쪽에서 이리로 내려오는 등산객이 없지 않으나, 대개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한적하다. 그리고 개울이 좋다. 골짜기 양편으로 솟은 바위들이며 깨끗하고 넓은 암반들이 갑자기 먼 심산(深山)에 들어선 느낌을 주고, 개울이 그 암반 위를 졸졸졸 너무도 좋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수종(樹種)이 풍부하고 귀한 종류의 꽃이 많다. 팥배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철쭉도 진홍색의 산철쭉이 아니라 연분홍색의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의 철쭉이 고향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기나리, 산부추, 구절초, 남산제비꽃 등 들꽃도 이 서울 하늘 아래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나 싶도록 철 따라 너무도 순수한 모습으로 핀다.

그러나 그 날 우리는 생강나무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김유정의 ‘동백꽃’을 피우는 바로 그 나무다. 우리 고향에서도 이 나무는 ‘동박’이라 하므로 우리는 ‘동백꽃’을 읽으며 아무런 혼란을 겪지 않았다. 그 꽃은 산수유와 흡사한 꽃으로 당연히 노란색이요 그 냄새가 ‘알싸하다’는 묘사에도 쉽게 수긍이 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사투리 꽃 이름 때문에 혼란을 겪어 왔다. 국문학도들도 예외일 리 없다. 그렇게 유도해서 이루어 낸 산행(山行)이었던 것이다.

골짜기에는 때마침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전부 코를 갖다 대고 알싸한 냄새를 맡느라 바빴다. 강하면서도 특이한 냄새에 새 세계를 접하는 흥분들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가지를 꺾어 생강 냄새도 함께 확인하며 생강나무의 어원을 알게 됨을 신기해 하였다.

이제 길 막바지에 이르러 개울도 끝나고 길도 제대로 없는 가파른 비탈이 시작되었다. 처녀치마를 만나는 것은 거기서도 한참 더 올라가 모두들 숨이 차 헐떡이며 잠시 쉬던 자리에서였다. 잎은 겨울에도 살아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추위에 얼어 후줄근하게 땅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곧은 꽃대가 하나 올라와 보라색 꽃들이 땅을 향해 옹기종기 모여 귀여운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글쎄 작은 부채를 반쯤 접어 놓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신기하게 생긴 것이 분명 처음 보는 꽃인데 그 이름이 무슨 치마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 사진으로라도 보았던 것일까?

다음 날 부랴부랴 인문대 휴게실에서 식물도감을 뒤지다 드디어 그것이 처녀치마임을 확인하였다. 환호 작약! 온갖 사물과의 인연이 다 그렇지만 꽃과의 인연도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인문대 동료들 중에는 고맙게도 들꽃에 관심이 남다른 분이 몇 분 계셔 이쪽 화제가 끊일 날이 없지만, 이분들 덕에 휴게실에 식물도감도 여러 종류 갖춰져 있다. 그것을 뒤적이며 처녀치마도 한두 번 스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머리에 남아 있어 첫 대면에서 이것이 무슨 치마인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까. ‘운명적’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그래도 근래에도 운명적이라는 사념(思念)에 자주 이끌리곤 한다.

그 후 그 자리의 처녀치마를 몇 번 더 보았다. 나중 대학원생들과 그 코스를 갔던 길에 바로 그 자리에서 모처럼 반가운 해후(邂逅)를 하였고, 다른 제자들과 갔을 때도 다시 만났다.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부르며 만나는 만남은 사뭇 다른 만남이었다. 이제 나는 이미 이들의 지기(知己)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한편으로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그들을 이름을 불러주며 알은 체를 할 것인가. 오, 그 귀여운 것들. 특히 꽃을 피울 4월이 오면 거기를 가 봐 주어야 할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며 조바심이 일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행여나 하고 뒤늦게나마 갔을 때는 역시 꽃은 다 지고 없었다. 그러나 처녀치마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꽃은 졌지만 그 꽃자리에 씨를 달고 곧추 서 있는 꽃대의 모습이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더욱이 새로 난 잎은 겨울을 난 잎과는 달리 얼마나 반짝이며 생기발랄하게 윤기가 흐르는지 처녀치마는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새 모습에 대한 내 묘사에 현혹되었던지 하루는 교수회관서 점심을 먹은 후 거기를 가 보자고 하여 영문과 김명렬 교수와 함께 넥타이 차림으로 5월의 처녀치마를 한 번 더 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역시 지난해는 내 임무를 다한 것이 아니었다. 내내 그 아쉬움이 커서 금년에는 좀더 일찍 서둘기로 아래쪽 것들만 겨우 노랗게 첫눈을 뜨려 할 뿐 위쪽 것들은 봉오리가 도툼해지기는 하였어도 아직은 겨울 모습이었다. 이때의 처녀치마 모습은 어떨까. 유난히 길고 추웠던 지난겨울에 어떻게 된 것을 아닐까.

드디어 마음을 설레며 그 자리에 왔다. 그러나 한참은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더 올라가며 분명히 이 부근이었는데 하고 샅샅이 살펴 보아도 낙엽만 쌓였을 뿐 처녀치마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되돌아 내려오며 낙엽을 긁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추위에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갑자기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때였다. 저쪽 안쪽에서 희끗 한 놈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저쪽에도 한 놈, 그 위쪽에도 한 놈이 있었다. 역시 추위에 시달린 모습이 역력하였다. 잎이 유난히 더 후줄근하게 퇴색해 있어 눈에 잘 뜨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얼마나 대견한가. 그 혹한(酷寒)을 이 가냘픈 몸으로 이렇듯 당당히 이겨냈으니.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럽게 주위의 낙엽을 쓸어 주며, 잎을 어루만지며 나는 더할 수 없는 맑은 기쁨에 떨었다. 그리고 잎들을 살포시 헤치며 속을 들여다보았다. 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빼꼼, 맑은 연둣빛 새 눈이 저 안쪽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 경건한 모습이라니! 새 우주가 열리는 모습이 아닌가. 이 순간, 이 찰나를 보다니.

올 봄은 이렇게 기분좋게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올 봄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알뜰히 보내려 하고 있고, 2월 하순부터 한순간 한순간을 만끽해 가며 보내고 있다. 여기에서 처녀치마를 빠뜨릴 수는 없다. 앞으로 몇 번이라도 더 찾아가 올 봄만은 그 고운 자태를 좀더 알뜰히 살피고 싶다. 누가 거기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별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던가. 관악산 그 깊은 골짜기에 처녀치마가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이익섭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저서 『국어학 개설』, 『국어표기법 연구』, 『영동 영서의 言語分化』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