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장갑 

                                                                                           염정임

 어느 날 지하철 3호선이 을지로3가에 섰을 때에 안경을 끼고 얼굴이 둥근 여자가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발로 밀면서 지하철에 탔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큰 소리로 말하기를, “장내에 계시는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은 요술장갑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하며 가방에서 아기들 손이나 들어갈 만한 조그만 장갑을 꺼낸다.

“저는 손이 특별히 큰데도 이렇게 쑥 들어갑니다” 하면서 손에 장갑을 낀다.

“이 장갑은 아이들이 끼다가 엄마도 낄 수 있고, 아빠도 낄 수 있습니다. 면 80%에 울 20%의 천연 소재이며, 백화점에서는 3,000원씩 팔지만 저는 단돈 1,000원으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요즈음은 자식들과도 대화가 멀어지고 공감대도 줄어드는데, 그 장갑만큼은 자식들과 공유할 수 있다니 얼마나 신통한 장갑인가?

우리 집 서랍장에는 노란 플라스틱으로 된 손바닥 지압기 두 개가 있다. 언젠가 2호선을 탔을 때에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하나 샀다가, 남편도 같이 장수(長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나를 더 샀는데, 둘 다 서랍 속에서 굴러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무 대롱처럼 생긴 마늘 까기는 집에 와서 써 보니까 도무지 되지를 않아서 버렸다. 그러나 선풍기 커버, 미니 앨범, 바늘 쌈지들은 얼마나 유용하게 쓰는지 모른다.

구내 방송으로 종종 지하철 내에서의 상행위는 금지 사항임을 상기시키고 있지만, 국가적인 경제 위기가 계속 되면서 지하철의 장사들은 점점 많아져 간다. 그리고 그들이 취급하는 품목도 다양해진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은 각각 딴 생각에 젖어 있다가 상인이 나타나서 연설을 하면 무심한 표정 가운데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의 등장으로 승객들 사이에는 엷은 공감대가 생기고, 마치 시골의 장터나 어느 공연장처럼 호기심과 기대가 섞인 분위기가 형성됨이 느껴진다.

그들은 물건을 많이 팔고 않고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민첩하고 멋있게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승객들을 매료시키기 위해 한바탕 연설을 한 다음 사용법을 시연해 보이고, 지나가며 물건을 내밀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마치 주연배우의 등장을 위해 무대를 비워주는 조연배우처럼 신속히 객차를 떠난다.

그들의 얼굴은 상품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으로 꽉 차 있고 연설은 열정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그들은 승객들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다. 승객들은 관객처럼 앉아서 끝까지 구경을 하든, 물건 하나를 사므로써 그들의 공연에 동참하든 각자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다.  비록 한두 사람의 지지자(支持者)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사라진다.

지하철의 잡상인들에게서 물건을 사는 심리의 이면에는 아마 금지된 행위를 할 때에 느끼는 은밀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마치 한적한 동네에서 횡단보도가 아닌 곳을 슬쩍 건넌 후라든지, 길바닥에서 반짝이는 은빛 동전 하나를 주워서 호주머니에 넣은 후에 느끼는 그런 즐거움 말이다. 거기에다 실패한 사업가를 돕는다는 자부심까지 얹어 주니 그 누구인들 상인을 외면하랴.

장갑을 팔던 여자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승객들도 웬일인가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옆 객차에서 초록색 점퍼를 입은 지하철 순찰대원 두 사람이 막 우리 차 쪽으로 건너오고 있다. 나는 혹시나 그 여자가 잡혀갈까봐 은근히 마음을 졸이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여자 옆을 지나면서 슬쩍 미소를 짓고, 그 여자도 웃으면서 남동생에게라도 하듯 반말로 무슨 말을 주고받는다. 그들이 사라지자 그 여자는 다시 장갑을 팔기 시작한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장사들로부터 물건을 사는 순간 공범자끼리 가지는 친밀감을 느낀다. 순찰대가 오기 전에 재빨리 돈을 주고 물건을 건네받으면서 게임의 같은 편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여자와 순찰대의 수작을 보면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여자가 붙잡혀가지 않아서 안심하기보다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 여자는 게임의 법칙을 어기고 적과 내통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나는 요즈음 신문에 자주 나는 고위 공직자들의 청탁과 비리가 생각나서 기분이 씁쓰레하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나마 요술장갑을 산 것을 후회하였다.

그녀는 커다란 가방을 발로 밀며 다음 객차로 향하고 있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공생(共生)이란 말을 떠올렸다.  

악어와 악어새, 말미잘과 집게… 그녀와 승객, 승객과 순찰대 그리고 순찰대와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