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煙家)

                                                                                                    정부영

 강변도로를 달리다가 강물색 같은 하늘을 본다. 구름 몇 조각 떠 있는 하늘가에 하얀 연기가 뭉글뭉글 솟아오른다. 무심결에 하늘 속으로 흩어지는 운해 같다는 착각에 운치가 있다는 생각도 잠깐, 당인리 발전소 굴뚝에서 연소되어 나가는 연기란 것을 알고 나니 쓴웃음이 나온다. 저 멀리 영등포 쪽 하늘가 여기저기에서도 회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수많은 굴뚝들은 빌딩보다 조금씩 높게 세워져 공해인 연기를 계속 토해 내고 있다. 원기둥의 굴뚝은 도시와 산업사회가 낳은 볼썽사나운 뿔과 같다. 기능만 살린 것이라서 멋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내 어릴 적 시골 마을 굴뚝이 아른거린다. 그곳은 버스에서 내려 5리 넘게 걸어 들어가는 서해 쪽의 자그마한 마을인데, 대부분이 정씨 성을 가진 옛날 촌이었다. 거기에는 산영만큼이나 사라지지 않는 추억의 그림자가 있다. 작은 모래들이 깔린 반듯한 신작로를 지나 논뚝길인지 밭뚝길인지 분간 안 되는 황토흙길로 접어들면 잡초들이 발목을 잡고 맞이해 주었다.

때마침 여름날이라 움집 같은 초가집 뒤 굴뚝에서는 하얀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곤 했다. 가까이 다가서 보면 흙으로 지은 나지막한 굴뚝이 강아지 뒷다리만큼 앙증스럽고 소박했다. 그때의 저녁 연기에는 밥물 끓는 속삭임 같은 소리가 섞여 있었고, 밥이 잦아질 때의 구수한 냄새도 새어나오는 듯했다. 그때 가슴 속에 배어드는 그리움과 정감은 주위의 하늘과 나무, 물과 돌멩이까지도 생명 있는 사물로 내게 다가왔고, 그것은 그 후의 세월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 살아 숨쉬는 체험이 되었다.

굴뚝은 불로 산화되고 연소되어 재를 남기고 떠나 버릴 연기의 통로이다. 무언가를 위해 타서 이루어놓고 궤적도 없이 홀연히 떠나버리게 길을 터주는 곳이다. 아궁이에서 굴뚝에 이르는 과정은 작은 소우주의 원리와도 통하는 듯하다. 그것은 젖줄 같은 시냇물을 닮아 있고, 도를 깨우치는 수도승의 뒷모습도 연상시킨다. 커피 포트의 여과지와도 같다.

굴뚝 중에서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경복궁에 있는 자경전(慈慶殿)의 십장생 굴뚝은 우리의 보물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지어놓은 굴뚝은 처음 보았다. 흥선대원군이 조대비를 위해 지었다는 전각의 뒤뜰에다 목조 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여 10개의 연가(煙家)를 지었는데, 그 조형미는 옆의 꽃담장에 못지않게 멋이 있다. 몸체에는 십장생의 무늬를 정교하고 살아 움직이듯이 조각하여 넣었다. 해나 산, 물,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삭, 포도, 대나무, 국화, 새, 연꽃 등이다.

그 둘레에는 날개짓하는 학이 보이고 나비, 불가사리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박쥐는 부귀를 뜻하여 새겨 넣었으며, 당초 무늬의 고결함도 엿보인다.

그 옆의 중궁전인 건순각(建順閣)의 후원인 아미산의 굴뚝에도 매료되어 갈 적마다 들르곤 했다. 인공으로 만든 아미산이라는 뒤뜰은 조촐하고 꾸밈없이 자연스러운데 비해 굴뚝의 우아함과 정교함은 매우 돋보인다. 팔각 기와 지붕을 얹은 6각의 몸체에는 역시 십장생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여인의 처소만큼이나 뒤쪽에까지도 미적 감각을 느끼게 하는구나 싶어 옛날 궁중 모습이 눈앞에 선연했다.

언젠가 전라도 지방의 낙안 읍성에 찾아든 적이 있는데, 동헌 뒤쪽 연가도 소박하고 아름다웠다. 연통을 길게 가로로 뽑아내 방과 거리를 두게 하였는데, 끝에 작은 기와 지붕의 굴뚝 집을 나란히 여러 개 지어 뒤란은 마치 연가의 기능성과 조형미만을 강조해 보이는 듯했다. 그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예술적 감각이 스며든 굴뚝 길에 앉아서 초가집 위에서 연기가 피어 오를 적에 느꼈던 그리움과 반가움에 젖어 보았다.

한옥의 굴뚝은 뒤나 옆쪽 외부에 별도로 설치한 것과 달리 서구식 주택의 페치카는 실내로 통하게 되어 있다. 불을 지피고 불꽃이 피어나고 이지러지는 모양을 운치 있게 볼 수 있고 따뜻하여 집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거기에 연결된 넓고 큰 굴뚝은 지붕 위에 뾰죽이 나와 있다. 연가의 모양과 이미지는 동서양이 살림살이만큼이나 다른가 보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던 어릴 때는 그곳으로 드나든다는 얘기가 의아스러웠고 수수께끼만 같았다. 동화 속 이야기에서 굴뚝은 환상과 꿈을 선사하는 곳이기에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아련한 추억의 연기가 피어 오른다.

삶의 여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 빌딩이나 집의 굴뚝이라면 죽음의 연소가 이루어지는 곳은 화장터 굴뚝이다. 추구하고 헤매고 난 후의 그 여과가 이루어지는 곳이 거기이다. 살아가는 동안 동경하고 희망과 이상을 가지며 의욕과 야망 속에서 그리고 사모하면서 그렇게 추구하는 동안 내내 헤맨 인생살이를 홀연히 여기를 통해서 날려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굴뚝은 천상으로의 길을 터 준다. 죽음은 연가의 징검다리를 통하여 무(無)로 화하고, 바람같이 물같이 되어 다시 흙같이 되는 것은 아닐까. 삶의 현장이나 보금자리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화장터에서 솟아나오는 연기는  하늘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두 가닥은 한 가닥이 되어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