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에 웬 벌들이

                                                                                                 이오라

 얼마 전 어느 수필 계간지 여름호에서 모란에 대해 쓴 글을 서너 편 읽은 적이 있다. 그 글들은 한결같이 모란에 향기가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비록 향기는 없을지라도 모란은 그 향 없음의 약점을 모두 덮어 버리고도 남을 만한 귀부인의 품격을 갖추고 있어서 좋아한다고 했다. 또 다른 한 편의 글은, 선물로 받은 모란화에 나비가 잔뜩 그려져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모란이 향기가 없는 것을 모르고 그렸거나 아니면 꽃과의 조화를 위해 일부러 나비를 그렸는지도 모르겠다며, 그것이 오히려 모란의 운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말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쓴 이와 다른 생각을 했다. 오히려 그 화가에게 신뢰가 갔다. 나처럼 그 화가는 적접 모란꽃 향에 그윽이 취해 봤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모란에 대한 전문성을 보여 준 그들의 수필을 읽고 나니 슬며시 자신이 없어졌다. 모란꽃에 정말 향기가 없는가, 나는 동료 직원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도 매한가지였다. 선덕여왕의 고사까지 들며 모란은 향기가 없는 꽃이란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선덕여왕의 고사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삼국유사에서 처음 읽어 알았다. ‘향기 없는 모란’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중국의 당태종이 홍·자·백 삼색으로 그린 모란과 그 씨를  보내왔는데, 왕이 그 꽃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필시 향기가 없을 것이라” 하고 이어 그 씨를 뜰에 심었더니, 과연 그의 말과 같이 꽃이 피어 떨어질 때 향기가 없었다. 훗날 선덕여왕은 그 그림에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당태종이 희롱한 것이라고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선덕여왕의 이 일화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 글을 통해 나도 한동안 모란은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신기하게도 모란의 향기를 강렬하게 맡은 몇 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로 옮겨 살기 전 단독 주택이었던 우리 집 뜨락에는 모란이 두 포기 심어져 있었다. 꽃은 짙은 자줏빛 홑모란이었는데 품종명은 알 수 가 없었다. 그 모란은 5월이면 어김없이 피었지만, 워낙 개화 기간이 짧아서 바쁘게 지내다 보면 얼떨결에 활짝 핀 모란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웠다.

5월의 맑은 일요일, 중간고사 시험 공부를 하느라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바둑이조차 오수를 즐기고 있는 한낮의 적요한 뜨락에는 유독 만개한 모란과 꽃 주위를 붕붕거리며 날고 있는 벌과 왕파리들만이 살아 있는 듯싶었다. 모란에 웬 벌들이 그렇게 많이 날아드는지 의아했다. 나비는 없었지만 벌들은 모란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노란 수술 속에 한참 동안 묻혀 있기도 했다. 꽃이 커서인지 한 송이에 대여섯 마리가 앉아 있기도 했고, 이꽃 저꽃 날아다니는 벌 다리에는 노란 꽃가루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짙은 청록색 잎으로 덮인 떨기나무 위에 핀 예닐곱 송이의 큰 모란꽃들은 마치 무거운 턱을 이파리에 간신히 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넓게 펼쳐진 꽃잎의 겉은 암자홍빛, 속은 암홍빛이었다. 성장(盛裝)을 한 동양의 왕비 같은 화려한 모습, 꽃이 큰데다 색깔이 너무 강렬하여서 감히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가운데 있는 황금 수술들은 내리쬐는 태양을 향해 되쏘는 지상의 큰 불꽃 같았다.

열린 방문으로 훅 향기가 끼쳐들었다. 메마른 듯한 분 냄새, 청량하고 은은한 다른 봄꽃 향기와는 다르게 모란의 강렬한 향기는 원숙한 여인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 바로 그것이었다.

바라보고 있는 사이, 눈앞에서 김영랑의 시에서처럼 그 큰 꽃잎이 뚜욱뚜욱 떨어지는 게 아닌가. 모란의 발치에는 먼저 떨어진 꽃잎이 햇볕에 타들어가듯 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뜨거운 햇볕과 강렬한 모란의 향기를 함께 기억하게 한 광경이었다. 그것을 혼자 보고 있으니 희비가 교차되는 듯하였다. 큰 꽃잎만큼이나 떨어진 자리는 공허했다. 시인은 그것을 보고 삼백예순 날을 하냥 섭섭해 울었을 것이다. 그 땡볕이 내리쬐는 5월 한낮, 나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란 시를 깊이 공감했다.

그런 계기로 모란이 내게 깊숙이 자리해 버린 것일까. 나는 근처에 모란이 피어 있으면 그 모란 향기를 곧잘 알아차리곤 했다.

내친 김에 식물도감을 뒤져 모란의 향기에 관해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다행이 책 한 권에서 향기에 대해 언급이 되어 있었다. ‘5월에 꽃잎 5~8개인 자홍색의 양성화가 5~6일 동안 향기를 낸다’고 했다. 다른 식물도감에서는 개화 기간을 좀 다르게 적고 있는데, 내가 본 홑모란은 겨우 이삼 일간 필 뿐이었고, 겹꽃인 천엽모란은 일주일을 넘어가기도 했다.

홑꽃이 개량이 되어 겹꽃이 되면 그 향기가 많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겹매화가 그렇고 겹벚꽃도 그러했다. 모란도 겹겹이 꽃잎을 달고 있는 개량종은 개화기는 더 오래 가는데 대신 향기가 거의 없다. 외양의 아름다움에 치중하느라 향기를 잃어버린 것일까? 나는 향기를 가지고 있는 홑모란이 좋다. 김영랑 시인처럼 짧은 만남을 위해 오랜 날을 기다리고 또 떠남을 아쉬워하면서 모란의 향기에 흠뻑 취하고 싶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향기 없는 모란’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 모란이 원래 향기가 없는 꽃이면 벌, 나비를 그리지 않은들 뭐가 이상했겠는가? 모란은 향기가 강한 꽃인데도 그림에 응당 그려져 있어야 할 나비가 빠진 것은, 선덕여왕이 부귀한 분이고 아름다우나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거나 배우자가 없음을 당태종이 빗대어 말한 것을 선덕여왕이 눈치챈 것이 아니었을까?

봄꽃이 지면서 녹음이 짙어가는 화단을 내려다 본다. 모란이 어린 잎 사이로 꽃봉오리들을 뾰족이 밀어 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꽃을 보려면 아직 보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작년에는 바빠서였는지 모란의 개화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가까이 두고서도 정을 깊이 주지 않으면 꽃도 잘 보이지 않듯이 그 향기도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런 이치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란은 향기가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그 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쩌면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었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무관심하게 바라본 사람들 중에는 또 진짜 향기를 가진 좋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새삼스레 주위를 둘러본다.

 

 

 

이오라

<계간 수필>로 등단(97년).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