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韓龍雲)의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일  시 : 2001년 3월 17일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문우회 회원 23명

사  회 : 허세욱

정  리 : 권일주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2001년도 여름호(통권 24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합평에 올린 작품은 ‘님의 침묵’의 시인인 한용운 님의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입니다. 1927년 8월 <별건곤(別乾坤)>지에 실렸던 것으로, 지금부터 75년 전의 작품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분에 대한 생평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용운 님은 아명이 유천(裕天)이고, 본명은 정옥(貞玉) 그리고 법명이 용운이고 법호는 만해(万海)입니다.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44년 성북동 심우장에서 작고했습니다. 대략 네 개의 시각으로 이분을 볼 수 있는데, 첫째가 문인, 둘째가 승려 그리고 사회운동가와 출판인으로서의 한용운입니다. 그러나 출판은 거의가 불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승려 부분에 포함시키겠습니다.

먼저 문학적인 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분은 1819년 9월에 <유심(惟心)> 잡지 1호에 ‘심(心)’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26년에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을 동서관에서 발간했으며, 1935년 조선일보에 장편 『흑풍』을 발표하면서 4편의 소설을 썼습니다. 1913년부터 1944년까지 평론을 포함해서 이분이 쓴 수필은 133편으로 집계됩니다. 이 속에는 기행수필, 불교 강론 등이 많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잘 아시는 ‘북대륙의 하룻밤’, ‘명사 십리행’, ‘시베리아를 거쳐서 서울로’ 등 유명한 기행수필이 있습니다.

그 다음, 이분의 승려생활을 살펴보면, 1896년에 18세의 나이로 오세암에 들어갔다가 이듬해에 오세암을 나와 원산(元山)을 거쳐 시베리아로 방랑을 했습니다. 1905년에 백담사에서 김연곡(金連谷) 스님으로부터 봉완(奉琓)이라는 계명을 받았고, 2년 후인 1907년 건봉사에서 만해 선사로부터 만해(万海)라는 법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분을 하나의 빛깔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승려생활을 하면서도 일본, 만주, 시베리아 등지로 긴 방랑 또는 독립을 위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 다음이 사회운동가로서의 한용운 선생입니다.

제가 굳이 사회운동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최근에 시인 고은이 『한용운 평전』에서 ‘그는 권력이 없는 정치가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분의 사회운동이 상당히 광범위하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1896년 18세의 나이로 의병에 가담했다가 실패한 후 오세암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1910년, 만주에서 독립투사들을 만나 독립군 훈련장을 순례한 바 있고, 1913년에는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는 강론을 했으며, 1919년에 3·1운동에 33인 대표로 참여하여 공약 3장(公約三章)을 직접 쓰셨습니다. 그 후 3년간의 투옥생활을 했으며, 옥중에서 『조선 독립 이유서(理由書)』를 썼습니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를 발족, 경성지회장으로 있었으며,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 서울에서 민중대회를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1930년 <불교> 잡지 사장에 취임하여 불교 청년운동, 불교 대중화운동에 힘을 쏟았으며, 1942년에는 일제의 창씨개명과 학병 권유를 거절한 바 있습니다.

이상으로 한용운 선생의 다양한 사회운동 업적과 발자취를 돌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토론에 약정이 되신 분은 이응백 선생님, 김시헌 선생님, 김규련 선생님, 오경자 선생님 이렇게 네 분입니다만, 김규련 선생님께서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시지 못하셔서 대신 서면으로 약정 의견을 피력하신 글을 받았습니다.

오늘 합평도 틀은 비슷합니다. 먼저 주제를 찾아주십시오. 주제가 상당히 숨어 있는 듯합니다. 두 번째가 내용입니다만, 이 글의 많은 부분이 허구일까 진실일까 의심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문제를 살펴주시고, 또 승려나 독립운동가 또 시인적인 이분의 생평과 이 내용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도 아울러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교 문제에 관한 토론을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을 읽고 본격적인 합평에 들어가겠습니다.

문혜영 선생님께서 읽어주십시오.

 

 

(본문)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그것도 벌써 20년 전 일이니 기억조차 안개같이 몽롱하다. 조선 천지에 큰 바람과 큰 비가 지나가고 일한(日韓)이 병합되던 그 이듬해이니 아마 1911년 가을인가 보다. 몹시 덥던 더위도 사라지고, 온 우주에는 가을 기운이 새로울 때였다. 금풍(金風)은 나뭇잎을 흔들고, 벌레는 창 밑에 울어 멀리 있는 정인의 생각이 간절할 때이다.

이때에 나는 대삿갓을 쓰고 바랑을 지고 짧은 지팡이 하나를 벗삼아서 표연히 만주 길을 떠났었다. 조선의 시세가 변한 이후로 조선 사람이 사랑하는 조국에서 살기를 즐기지 않고, 그 무슨 뜻을 품고, 오라는 이도 없고 오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는 만주를 향하여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막막한 만주 벌판으로 건너서는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는 고국에서 먹고 살 수 없어 가는 사람도 있었고, 또 그 무슨 뜻을 품고 간 사람도 많았다.

나는 그때에도 불교도이었으니까 한 승려의 행색으로 우리 동포가 가서 사는 만주를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우리 동포를 만나보고 서러운 사정도 서로 이야기하고 막막한 앞길도 의논하여 보리라 하였다. 그곳에서 조선 사람을 만나는 대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이역(異域)생활을 묻기도 하고 고국 사정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곳 동지와 협력하여 목자(牧者)를 잃은 양의 떼같이 동서로 표박하는 동포의 지접할 기관, 보호할 방침도 상의하였다.

근일에는 그곳에 가보지 못하였으나 그때의 그곳은 무슨 이상한 불안과 감격과 희망 속에 싸여 있었다. 낮에는 장산에 올라 풀뿌리를 캐고 조를 뿌리어 가을에 길이 넘는 조를 베어들여 산 밑에 있는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에 거두어들여서 조밥을 배불리 먹고, 관솔불 켜고 천하 대사를 통론하며 한편으로 화승총(火繩銃)에 조련을 하는 때이었다. 그리고 조선 내지에서 들어온 사람을 처음에는 불안으로, 그 다음에는 의심으로, 필경에 의심이 심하면 생명을 빼앗는 일까지 종종 있던 때이다. 내가 죽다가 살아난 일도 이러한 주위 공기로 인하여 당한 듯하다. 그때는 물론 어찌하여 그런 일을 당하였는지 모르고, 지금까지 의문에 있지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내가 조선서 온 이상한 정탐이라는 혐의를 받아서 그리 된 듯하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만주에서도 무섭게 두메[山間]인 어떤 산촌에서 자고 오는데 나를 배행한다고 2, 3인의 청년이 따라섰다. 그들은 모두 나이 20 내외의 장년인 조선 청년들이며, 모습이나 기타 성명은 모두 잊었다. 길이 차차 산골로 들어 ‘굴라재’라는 고개를 넘는데, 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서 백주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길이라고는 풀 사이라 나뭇군들이 다니던 길같이 보일락말락하였다. 이러자 해는 흐리고 수풀 속은 별안간 황혼 때가 된 것같이 캄캄하였다.

이때다! 뒤에서 따라오던 청년 한 명이 벼란간 총을 놓았다. 아니, 그때 나는 총을 놓았는지 무엇을 놓았는지 몰랐다. 다만 ‘땅’ 소리가 나자 귓가가 선뜻하였다. 두 번째 ‘땅’ 소리가 나며 또 총을 맞으매 그제야 아픈 생각이 난다. 뒤미처 총 한 방을 또 놓는데 이때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잘못을 호령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말로 목청껏 질러 꾸짖었다. 그러나 어찌 한 일이냐? 성대(聲帶)가 끊어졌는지 혀가 굳었는지 내 맘으로는 할 말을 모두 하였는데 하나도 말은 되지 아니하였다. 아니, 모기 소리 같은 말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피는 댓줄기같이 뻗치었다. 그제야 몹시 아픈 줄을 느끼었다. 몹시 아프다. 몸 반쪽을 떼어 가는 것같이 아프다! 아! 그러나 이 몹시 아픈 것이 별안간 사라진다. 그리고 지극히 편안하여진다.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다만 온몸이 지극히 편안한 것 같더니 그 편안한 것까지 감각을 못하게 되니, 나는 이때에 죽었던 것이다. 아니,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죽는 것과 꼭 같은 기절을 하였던 것이다.

평생에 있던 신앙은 이때에 환체(幻體)를 나타낸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아름답다! 기쁘다! 눈앞이 눈이 부시게 환하여지며 절세의 미인! 이 세상에서는 얻어 볼 수 없는 어여쁜 여자, 섬섬옥수에 꽃을 쥐고, 드러누운 나에게 미소를 던진다. 극히 정답고 달콤한 미소였다. 그러나, 나는 이때 생각에 총을 맞고 누운 사람에게 미소를 던짐이 분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상이 설레었다. 그는 문득 꽃을 내게로 던진다! 그러면서 “네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느냐?” 하였다.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려 눈을 딱 떠보니 사면은 여전히 어둡고 눈을 내둘리며 피는 도랑이 되게 흐르고, 총 놓은 청년들은 나의 짐을 조사하고, 한 명은 큰 돌을 움직움직하고 있으니 가져다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듯한 나의 복장에 안기려 함인 듯하다. 나는 새 정신을 차리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대로 오던 길로 되짚어 가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나의 피 흘린 자국을 보고 따라올 때에 내가 쫓기는 길로 간 흔적이 있으면 그들이 더 힘써 따라올 것이요, 도로 뒤로 물러간 것을 보면 안심하고 빨리 쫓기를 아니하겠기에 그들을 안심시키고 빠져가자는 한 계책이었다.

한참 도로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떻게 넘었던지 그 산을 넘어서니 그 아래는 청인(淸人)의 촌이 있었다. 그리고 조선으로 치면 이장 같은 그곳 동장의 집에서 계(契)를 하느라고 사람이 많이 모이어 있었다. 나의 피 흘리고 온 것을 보고 부대 조각으로 싸매 주었다. 이때에 나에게 총 놓은 청년들은 그대로 나를 쫓아왔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총을 놓을 터이면 다시 놓으라”고 대들었으나 그들은 어쩐 일인지 총을 놓지 않고 그대로 달아나 버리었다.

나는 그 집에서 대강 피를 수습하고 그 아래 조선 사람들 사는 촌에 와서 달포를 두고 치료하였다. 총알에 뼈가 모두 으스러져서 살을 짜개고 으스러진 뼈를 주워내고 긁어내고 하는데 뼈 긁는 소리가 바각바각하였다. 그러나 뼛속에 박힌 탄환은 아직도 꺼내지 못한 것이 몇 개 있으며, 신경이 끊어져서 지금도 날만 추우면 고개가 휘휘 돌린다. 지금이라도 그 청년들을 내가 다시 만나면, 내게 무슨 까닭으로 총을 놓았는지 조용히 물어보고 싶다.

 

 

 

 

사회 : 감사합니다. 먼저 주제에 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응백 : 선문답 같은 글이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잘라 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한일 합방 직후 지식인, 종교인으로서 느끼는 것을 만주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해서 현실적인 것과 상상을 교직해서 전개시킨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 그러니까 강제 합방된 후의 소요와 혼란을 간접적으로 그린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이응백 : 그렇습니다. 1911년을 기점으로 느낀 것을 그린 것입니다.

김시헌 : 이 글의 주제를 저는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하나는 독립운동을 하는데도 의심을 하는, 불신감을 가진 인간의 속성, 즉 믿어야 될 사람을 의심하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그린 것과 또 하나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관음보살이 나타났다고 하는 이분의 믿음, 즉 철저하고 깊은 신앙심을 그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깊은 신앙심과 인간에 대한 불신감, 이렇게 두 가지를 그린 것입니다.

오경자 : 한 마디로 하면, 망국의 설움에 잠겨 갈팡질팡하는 민족의 싸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충돌하는 것을 그렸다고 봅니다. 총을 쏜 사람과 총을 맞은 사람의 입장은 다르지만, 모두 나라를 잃은 설움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방황을 그린 것이 이 글의 주제라고 봅니다.

 

사회 : 상황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당시 한용운 선생은 이미 『님의 침묵』을 낸 뒤이니까 문학적으로 기교나 심도, 성숙도가 상당히 무르익어 있는 시기입니다. 그만큼 이 글은 상징성이 많이 내포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글 속에 숨겨진 주제가 좀더 있지 않을까요.

오늘 이 자리에 참석을 하시지 못했지만 김규련 선생님께서 편지로 보내 주신 내용을 보면, 이 글 속에 들어 있는 주제가 지닌 상징은 불가의 자비이며, 그리고 기본적으로 깔린 것은 조국 독립과 민족 해방을 염원하는 독립운동가의 감개와 돈독한 신앙생활에 따른 기적의 출현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윤모촌 선생님께서도 오늘 이 자리에 참석을 못하셨지만 FAX를 통해서 “무척 감동한 글이다. 이 글의 마지막 문단, ‘지금이라도 그 청년들을 내가 다시 만나면 내게 무슨 까닭으로 총을 놓았는지 조용히 물어 보고 싶다’라는 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시며,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고 사랑해서 한 이야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객석에서도 활발히 말씀해 주십시오.

유경환 : 한 마디로 조국이 없으면 개인도 없다는 것이 주제라고 봅니다. 총을 맞았는데도 기댈 곳이 없잖습니까. 우리가 말할 때 흔히 ‘한일합방’이라고 하는 것을 이 글에서는 ‘일한합방’이라고 했고, 또 만주로 건너가는 것을 ‘고국에서 먹고 살 수가 없어서 가는 사람도 있었고, 또 무슨 뜻을 품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독립운동을 말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글을 일제시대에 쓰면서 조국이라는 것, 조국애라는 것을 밑바닥에 깔고 조국이 없으면 개인이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쓴 것입니다.

박재식 : 이 글은 사건 전말이 주된 줄거리로 이루어진 글이어서 주제를 파악하기가 적이 어렵습니다만 굳이 주제라고 말을 한다면, 이역 땅에서 동족조차도 믿지 못하는 망국 유민들의 불안정한 생태를 작가 자신의 수난 체험을 통해서 소개함으로써 한일합방 후의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를 말해 준 작품이라고 봅니다.

문혜영 :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같은 민족끼리 불신을 품은 것에 대한 연민이 깔린 것 같습니다. 이분이 나중에 독립운동의 33인 가운데도 들었지만, 큰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라를 잃은 우리 모두에 대한 연민과 자기에게 총을 놓은 사람도 품에 안는 것과 같은 관용을 그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치 부모가 철없고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식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 같은 연민과 그래도 나중에는 품어 안게 되는 관용입니다. 아까 김규련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자비’와는 다른 관용입니다만, 그것이 주제라고 느꼈습니다.

김태길 : 지금까지 여러분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이 글은 나라 잃은 백성의 참담하고 비극적인 상황이 주제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기록에 좀 남기고 싶은데 이분이 굉장히 조심을 한 것입니다. 붓 조심을 한 것이지요. 그 당시 우리 어린아이들도 ‘일한합방’이라는 말을 안 썼거든요. 그런데 대사상가인 이분이 ‘일한합방’이라는 말을 쓴 것은 무척 조심을 했다는 이야기이고, 또 제일 마지막에 ‘무슨 까닭으로 내게 총을 놓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는데, 그거야 아주 뻔한 것이지요. 일인이 실수로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쓸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말조심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심해서 썼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글에서 주제로 찾는데 고심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진권 : 저는 이 글이 동족이 동족을 의심해서 총을 쏜 비극을 말한 것이고, 그 비극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면 조국, 나라를 잃은데서 온 것이라는 것을 쓴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말, ‘왜 나를 쏘았는지 묻고 싶다’라고 한 것도 지금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일인이 시켜서 쏘았으리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태길 : 나는 그것을, 이분이 사상가이니까 일인들이 시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진권 : 이 글에도 밀정이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밀정이라고 본 것이지요.

 

사회 : 이 글에도 밀정이라고 밝혀있습니다만, 또 그러한 증거도 몇 가지 찾았습니다. 만해가 블라디보스토크에 갔을 때도 이와 비슷하게 친일파로 몰려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청년들을 용서하고 이유를 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관용이나 자비로도 표현되기도 합니다만, 결국 이 글은 조국을 잃은 비극 속에서의 조국에 대한 사랑, 즉 조국애로 주제가 좁혀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후에 이 글의 내용 문제를 분석, 검토할 때 다시 주제 문제가 정리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글의 내용문제에 대한 말씀해 주십시오.

이응백 : 이 내용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허구와 현실을 짜서 그려 넣은 것 같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회 : 그러니까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응백 : 그렇습니다.

김시헌 : 이것은 소재가 하나의 단일한 사건입니다. 앞에 것은 그 단일한 사건을 쓰기 위한 전제입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고 했는데, 그것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예수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처럼 신앙의 세계에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쨌든 단일한 사건인데, 거기에다가 믿음에서 오는 세계를 그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허구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보았는데, ‘피가 댓줄기같이 뻗치었다’라든지, ‘피는 도랑이 되어 흐르고’라는 표현은 허구라기보다는 창작상 실감나게 하기 위한 과장법이라고 저는 봅니다.

 

사회 :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의 불가적인 신앙으로 일관되었기 때문에 묘사된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충돌될 일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정진권 : 관세음보살을 본 것은 사실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관세음보살이 다죽어가는 나에게 정답고 달콤한 미소를 던지는 것이 분하다고 했는데, 이것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절을 해서 환상 속에서 관세음보살을 보는 것인데, 분한 것을 느낄 정도로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이 조금 걸립니다. 또 그 밑에 보면 피가 철철 흐르는 대로 오던 길로 되짚어 갔다고 했는데, 그렇게 피를 흘리는 사람이 되짚어 가도록 그 사람들이 가만히 놓아두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째 몇 구절이 빠졌는지, 생각의 비약이 있었는지 여기가 잘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강호형 : 저도 이분이 꿈을 꾼 이야기를 쓰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꿈에서는 얼마든지 비현실적인 일들도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꿈을 꾸시고 그 꿈에 의탁해서 민족의 비극을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전부가 논리적이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뿐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정선모 : 한용운 선생님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면 허구라든가 상상이라든가 하는 것은 거의 없고, 그분의 삶이 수필과 일치하는 것을 상당히 느꼈거든요. 꾸밈도 없고 가식도 없는 삶과 글이 일치하는 부분을 많이 발견했는데,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이 글을 허구나 상상으로 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글을 쓰는 시점이 사건이 일어난 지 17년이나 지났으니까 그 당시의 심정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진권 : 몇 년 후에 썼더라도 쓰는 당시에 생각을 해도 모순이나 비논리적인 것은 없어야 되는데 아무래도 논리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이 쫓아오기에 그들에게 ‘총을 놓을 테면 다시 놓아라’ 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고 했는데, 그거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여러 사람이 있었지 않습니까. 또 그들이 어느 길로 따라왔는지 여러 가지가 맞지 않습니다.

강호형 : 그리고 2, 3인이 나를 배행했다고 했는데, 만일에 죽이려면 거기서 죽이지 왜 따라왔겠습니까. 또 끝까지 그냥 따라온 것도 아니고 중간에 총을 놓은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사회 : 상충되거나 모순되는 점을 한꺼번에 묶어보았으면 좋겠는데요.

오경자 : 저는 허구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이 글을 좀 특별나게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고향이 국경에서 한 백 리쯤 되는 곳에 있었는데, 이 시절부터 그 뒤 몇십 년을 마적이라든가 독립군들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런 시대 상황을 볼 때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회 : 여기서 잠깐 김규련 선생님이 보내 오신 것을 보겠습니다. 필시 이런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비록 참석은 못했지만,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분들이 허구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라는 전제를 하고,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출현해서 모든 것을 주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사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은 불교에 굉장히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유경환 : 저도 한용운 선생의 인격을 믿고 싶습니다. 허구나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에서 ‘총을 쏘았다’라고 하지 않고 ‘총을 놓았다’라는 표현을 세 번 썼습니다. 1910년대에 만주에서 한국 청년이 만든 총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총, 즉 당겨서 쏘는 납 탄 총이 아니고 화약에 불을 당겨서 쇠붙이가 나가게 되는 조총, 즉 화승총입니다. 그러니까 총을 쏘았다가 아니고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총알이기 때문에 맞았어도 치명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분은 이 글에서, ‘피는 댓줄기같이 흐르고’, ‘피는 도랑이 되게 흐르고’, ‘피는 철철 흐르는 대로’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그런 총이기 때문에 표피조직을 상하게 해서 피가 많이 나온 것입니다.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한참 도로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떻게 넘었던지 그 산을 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설명이 된 것입니다. 치명타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정신력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문혜영 : 저도 한용운 선생님의 인품이나 신앙, 또 여러 가지 그분의 사람됨을 볼 때 무용담 같은 이런 이야기를 허구로 꾸며서 쓸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죽다가 살아난 경험이 없으시지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그러한 절명의 경지에서 자기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쉽사리 거짓이다, 허구다 라고 판단하는 것은 자기 편견에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 속에서 나타난 논리 모순이라고 지적을 하시며, 어떻게 청년 세 사람씩이나 쫓아와서 총을 놓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도망을 치는데 그 피 흘리며 도망치는 사람을 도망가게 놔둘 수 있겠는가 하는 것으로 허구다, 과장법이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총을 놓은 그 청년들도 이분이 밀정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밀정으로 보고 혼을 내려는 의도, 겁을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 잔인한 속성을 가진,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마치 산짐승을 사냥하듯이, 뒤에서 여유  있게 몰이하는 식의 그런 심리작용을 저는 이 글에서 느꼈거든요. 그러니까 살인이 목적이 아니라 밀정으로 보고 혼내 주려는 의도가 청년들에게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 : 본인도 그렇게 이야기했고 또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충분히 밀정으로 보여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박재식 : 이 사건이 한용운 선생의 전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사회 : 전기에는 없습니다만, 이 작품에 근거를 두고 다루기는 했습니다.

박재식 : 이 글은 한용운 선생 본인이 쓴 것 아닙니까. 이 사건은 상당히 중요한 사건인데, 이것이 전기에 빠졌다는 것은 이것 자체가, 아까 강호형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꿈을 꾼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 저는 사회자 입장을 떠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 이분이 중국 문학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었고, 한국 문학에서도 이렇게 이미 명작을 낸 즈음입니다. 『서유기』 등의 구성을 보면 악마나 요괴를 등장시키고, 그것들과 접전을 하는 등의 험난한 일들을 겪는 일이 있습니다. 이 글의 구성에서 그런 것들과도 패턴이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별로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느낍니다.

문혜영 : 또 글 속에서 보면, ‘상처 입은 자리가 아직도 날이 궂은 날이면 아프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상처가 그 증거가 된다고 봅니다. 허구가 아니라는 이야기이지요.

정진권 :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허구라는 뜻이 아닙니다. 허구야말로 가장 논리적입니다. 허구인 줄 모르는 것이 허구입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은 세 사람의 청년이 있었는데, 다친 내가 되짚어 가도록 놔두었다. 그것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렇기 때문에 허구라는 뜻은 아닙니다. 무슨 말이 한 마디 빠졌는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형주 : 그 점에서는 자기 자신이 뭔가 착각한 것입니다. 잘못되었습니다.

변해명 : 제 상상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때의 화승총이라는 것은 1~2미터에서 쏠 수 있는 것이지, 1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쏘면 총의 효험이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이분이 스님으로 오랫동안 사셨기 때문에 산을 타고 넘어가는데는 청년들이 이분을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리를 다쳤건 어쨌든, 이분이 능히 도망갈 만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총이 지금 총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한형주 : ‘귓가가 선뜻하였다’, ‘목소리 안 나온다’ 뭐다 하는 것은 뇌와 연결되어 다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 또 큰 돌멩이를 움직움직 했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 어떻게 했는지 설명도 없고 맞지도 않습니다.

 

사회 : 이 문제는 과잉 분석, 과잉 추측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제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이응백 : 제가 맨 처음에 현실이냐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할 때 허구라는 말을 썼는데, 허구라는 말은 비논리적이라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구라는 말 대신 비논리적이라는 말로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형주 : 허구가 아니라 나는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착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사회 : 황당한 위기 상황에서의 기억이란 불충분할 수도 있고 선후가 도취될 수도 있습니다. 자, 시간이 너무 지났습니다. 세 번째 기교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응백 : 먼저 ‘금풍’이라는 말은 요즈음 쓰지 않는 말이지요. ‘승려의 행색’에서 ‘행색’도 그렇습니다. 또 ‘장산’은 큰 산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밑에 가서 ‘20 내외의 장년’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20 내외면 청년입니다. 이것은 ‘장정’의 오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뭇군’은 ‘나뭇꾼’이 맞습니다. 또 ‘별안간’과 ‘벼란간’ 두 가지 단어가 나오는데 요즈음은 다시 한자음 그대로 ‘별안간’으로 씁니다. ‘굴라재’라는 아주 인상적인 이름이 나왔습니다. ‘총을 놓다’는 ‘총을 쏘다’의 구식 표현이고, 또 ‘그제야 생각이 난다’라고 했는데, ‘그제야’라고 했으니까 현재로 ‘난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과거 표현인데 여기만 현재 시제로 썼습니다. 묘사 면을 보면, 목소리를 크게 지르려고 했는데 안 나왔다고 했는데, 생리적으로 귀나 몸을 다치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목소리가 안나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거기에 비해서 관세음보살에 대한 묘사가 자세히 잘 되어 있고, 또 어떤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은데, 세월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기억이 아리송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 아리송한 것을 묘사, 즉 표현 기법으로 한 듯한 감도 있습니다. 일부러 모호하게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김시헌 : 구성을 보면, 앞 페이지의 대부분이 그 당시 나라 잃은 사람의 형편과 상황에 대해 쓰고 끝 부분 즈음에 ‘어느 가을날이었다’로 시작해서 사건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두 단계로 잡아 의도적인 구성을 한 것입니다. 또 표현 문제를 보면, 이 글은 묘사와 설명이 섞여 있는 글입니다. 묘사에서는 적극적이고 독자로 하여금 긴박감을 느끼게 하는 묘사가 많습니다. 이 글의 제목이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인데, 글의 시작도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또 그 몇 줄 아래도 ‘그 무슨 뜻을 품고’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냥 반복이 아니라 의도를 갖고 강조하기 위한, 강조법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글의 결미가 좋습니다. ‘내게 무슨 까닭으로 총을 놓았는지 조용히 물어보고 싶다’고 운치 있게 의문을 던져놓고 끝난 것이 좋습니다.

오경자 : 다 말씀을 하셔서 별로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만, 첫 줄에 ‘20년 전 일이니 기억조차 안개같이 몽롱하다’라고 했는데, 보통 이만한 사건이면 더 뚜렷하게 기억되는 것일 텐데 이렇게 쓴 것은 아까 이응백 선생님의 말씀처럼, 약간 여운을 두려고 일부러 이렇게 쓰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 김규련 선생님이 보내 오신 편지에 의하면, 이분도 역시 ‘금풍’, ‘표박’, ‘지접’, ‘배행’ 등의 고풍스런 낱말들이 흠이라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또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았을 때 ‘기 승 전 결’이 확실하다. 더 줄여서 이야기하면 ‘현재, 과거, 현재’로 돌아오는 구성법이 상당히 명료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역시 윤모촌 선생님도 FAX에서, ‘총을 놓는다’ 등의 구투의 용어와 표현이 있으나, 이러한 것은 시대적인 언어이므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한 마디만 더 한다면, 1977년 민음사에서 나온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라는 책에서 김우창 씨가 이분의 문장, 즉 구성과 표현을 마감하는 말을 한 것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만해의 문장은 차원 높은 종교의식과 예술의식의 교차점으로, 진정한 개인의식과 치열한 사회의식의 천명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아까 몇 분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시대 상황과 개인 체험의 융합이라는 의견과 일치하는 말이 됩니다. 이분 문장의 구성과 표현에 대해서 혹시 다른 시각을 가지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정진권 :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우리가 한용운 선생의 시를 읽고 매료되었기 때문에 자꾸 시를 보는 안목으로 산문을 보니까 기대에 못 미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75년 전의 글이라고 생각해서 읽으면 상당히 문장이 근대화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옛날 표현이지만, 첫째 문단에, ‘금풍은 나뭇잎을 흔들고 벌레는 창 밑에 울어 멀리 있는 정인의 생각이 간절할 때이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는 내재율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곳이 몇 군데 더 있는데, 시만큼 전개되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뛰어난 산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덕룡 :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이 문제삼지 않는 것을 한 가지 픽업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소재가 단편소설 소재입니다. 그래서 같은 소재를 가지고 단편소설로 쓰는 경우와 수필로 쓰는 경우에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설은 시대나 환경, 위치 같은 것이나 지리적인 조건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필 혹은 에세이는 소설에 비해 인포메이션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 글도 하다못해 지명이라도 나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수필로 치면 인포메이션이 부족하고, 소설로 치면 제시만 했지 상황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상황이 비구체적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고임순 : 제가 최근에 ‘만해 한용운 문학의 근원’이라는 논문을 읽었습니다. 그런 것을 본 후에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 것은 이분이 우리말에 대한 관심, 사고, 상상력과 수사적인 표현력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님의 침묵’과 같은 한국의 명시를 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한용운 선생은 불교 시인답게 종교적, 철학적이면서도 이 글은 그 당시 시의 특징이었던 서정성이 농후한 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이것은 특이한 체험을 경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으로 체험이 문학적인 상상력으로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한용운 식의 독특한 문장을 만들어 냈다, 그러니까 한용운 문장의 특수성을 이 글에서도 높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식 : 명시 ‘님의 침묵’에서 볼 수 있는 선생의 완벽한 시문(詩文) 구사에 비해 산문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흠점이 눈에 띕니다. 어휘의 선택과 문장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고 구성 면에서도 작품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군더더기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례를 들면 ‘금풍은 나뭇잎을 흔들고 벌레는 창 밑에 울어 멀리 있는 정인의 생각이 간절할 때이다’는 이 글의 내용이 음산하고 처절한 분위기인 것과 괴리되는 불필요한 대문이며, 또 사건의 시기가 가을이라는 것을 서두에서 밝혀놓고, 다시 중간에 ‘어느 가을날이었다’라고 중복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정선모 : 한용운 선생님의 다른 수필을 읽어보면 페미니즘 적인 표현이 많거든요. 지금 말씀하신 ‘정인’도 그렇고, 뒤에 ‘관세음보살’에 대해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한용운 선생이 속세를 떠난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에 대한 묘사가 무척 사실적입니다. 하필 죽는 순간에 부처님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관세음보살이 나타났으며, 그것을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묘사하듯이 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인간적인 면에서 한용운 선생의 재미있는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경환 : 조국도 죽다가 살아난다는 사실을, 1930년대에 아주 완만하게 자기가 겪은 사건을 비유해서 암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응백 : 한 마디만 더하겠습니다. 첫 페이지 중간에 ‘동포의 지접할 기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칠 지(止)와 접할 접(接)자로, 거기에 머물러 산다는 이야기지요. 왜 ‘지접’을 지적했느냐 하면, ‘안절부절하다’가 맞느냐, ‘안절부절 못하다’가 맞느냐 할 때 ‘안절부절 못하다’가 맞습니다. 왜냐면 ‘안절부절’이라는 말은 ‘안접부접’에서 온 말입니다. ‘안접’은 편안히 접하는 것, ‘부접’은 붙여서 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못하다를 붙이는 것이 맞는 것이지요. ‘절대절명’은 ‘절체절명’이 맞습니다.

 

사회 : 오늘 후반부 토론은 숲은 멀리 가고 나무만 떠오르는 기분입니다. 시간도 많이 갔습니다.

김태길 : 시에 비해서 많이 떨어진다는 말에 공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20년대 이전의 우리 나라 수필은 대체적으로 시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걸 감안해서 본다면 수필 가운데 비교적 성공적인 수필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 이분의 수필집을 보면 한문 투가 백 가운데 사오 십은 넘습니다. 이 수필은 그래도 거의 주로 한글로 된 것입니다. 또 구성 면에서도 과거 회고나 미래 개진의 문제에서 비교적 확실히 했기 때문에 좋게 보았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한 토론의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주제 문제에 대해서는 나라 잃은 상황, 혼란과 불신 속에서도 오직 조국에 대한 사랑을 깊이 풀어헤친 작품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내용 문제에 대해서는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이 상당히 있어서 심지어 허구일 것으로도 오해되는 부분도 많으나, 그것들은 이분의 불가 신앙 속에 펼쳐진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들은 과장으로 볼 수 있으며 오히려 그 시대, 그 상황에서는 이러한 구성이나 내용들이 사실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끝으로 구성과 기교, 표현에 대해서는, 비록 구식 표현도 있고 내용상 모순이 드러나는 등 그분의 대표적인 장르인 시(詩)에는 미치지 못하는 흠이 있기는 하지만, 생동한 묘사와 적극적인 표현, 여운이 있는 결미가 이 작품을 상당히 문학적인 수필로 이끌어갔다, 상황 설명 끝에 사건을 개진한 구성 같은 것은 상당히 탄탄한 구성으로 보여진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합평회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