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티슈 한 장

                                                                                                  안인희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모든 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것들이라고. 어릴 때 일어난 일들이 두드러지게 기억난다는 것은 하나같이 예외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말을 바꾸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기본 질서가 가능했다는 말이 된다. 순탄하게 잘 자란 아이에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기껏해야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져 피가 나서 아팠다는 기억 정도가 아닐까? 즐거웠던 추억은 오래 가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날이 그 날처럼 잘 굴러가는데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이 뭐 있겠는가! 일기 쓰기를 강요당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숙제 중에 가장 어려웠던 숙제가 일기 쓰기였다. 선생님께 보이는 일기라 함부로 쓸 수도 없고 쓸거리도 없이 골머리를 싸매던 기억이 난다. 글을 솔직하게 정직하게 써야 한다고 하는데 숙제가 된 일기 쓰기는 결과적으로 그 반대가 되었다.

계간 수필에서 김태길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비행기 안에서 식사 때 주는 큼지막한 종이 냅킨 이야기가 나온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 차곡차곡 접어 호주머니에 넣고……. 읽는 동안 나의 안막에는 글자 대신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던가 콧물을 자주 흘리시는 아버지에게 예쁜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티슈 한 상자를 사드렸다. 아버지는 무슨 대단한 사치품이나 받으신 것처럼 머리맡에 놓고 애용하셨다.

아버지는 티슈 한 장을 조심스럽게 뽑아들고는 앞뒤를 살피신다. 이미 마른 가지처럼 뻣뻣해져 손놀림이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티슈 한 장의 양면을 가르고 계셨다. 그때까지 나는 그 종이가 두 겹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찢어질까 조심스럽게 가르는 동안 콧물은 이미 바지에 떨어져 소용이 없어진 것을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차곡차곡 접어 조끼 호주머니에 넣고 계시지 않은가!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버럭 상자를 내 앞으로 끌어당겨 한 장, 두 장, 석 장을 연거푸 꺼내 호주머니에 꾸겨 넣어드렸다.

“아버지 제발 이렇지 마세요. 이깟 휴지도 마음대로 못쓰시면 어떻해요.”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은 아버지의 좋은 버릇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뿐만 아니라 자상하고 겸손한 아버지의 장점도 언제부터인가 째째하고 비굴하게 보이게 되면서 착한 딸 노릇을 그만두었다. 그게 언제부터인가는 일기를 뒤져보면 알 수 있다. 참 오래된 이야기다. 일기를 쓰기 전에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아무리 늦어도 과자 한 봉지를 들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고, 잠든 동생들에게 이불을 덮어주시는 아버지가 좋았다. 종기가 나 뻘겋게 부어오른 내 다리를 보시고 약을 붙여 주시고, 피부병에 좋다는 약수터를 찾아가시던 아버지. 집 근처 삼청동 계곡에서 함께 목욕하던 일, 그때의 아버지는 나의 유일한 남성이고 우상이었다. 하루 종일 집안 일에 매달리는 어머니보다 아버지에게 할말이 많았고, 아버지는 내 말에 귀기울이고 들어주셨다. 성적표에 도장을 꾹꾹 정성스럽게 찍어주시며 “네가 아들이면 얼마나 좋겠니!”를 되풀이하셨다. 나는 장차 아들 노릇을 해야겠다고 장래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 노릇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안을 세우는 나에게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 생긴 아이가 아버지의 아들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제 아들 타령이 끝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제쳐놓고 앞에 나서서 소동을 부린 사람은 나였다. 상주보다 복제가 더 서럽게 운다는 게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처음으로 매맞은 일이 기억난다.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꽃을 내가 죽였기 때문이다. 한겨울 따뜻한 방에서 선인장 꽃은 탐스러운 꽃술을 뽐내면서 야릇한 향기를 품어대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 꽃 화분을 나는 아무도 모르게 툇마루 구석으로 옮겨 놓았다. 고드름이 떨어지는 밑에서 꽃잎은 시커멓게 변색이 되어 고개를 떨구고 꼬부라져 처참한 꼴이 되었다. 아버지는 분노에 떨며 나를 때렸다. 아무렴 내 분노보다 더 할까! 마음대로 하시라지! 이상한 것이 처음 맞아본 매는 아프기보다 시원하고 통쾌한 느낌이 든다. 지금 생각해도 그 느낌에는 변함이 없다.

글쓰기라고는 숙제밖에 없었던 그 시절, 나는 밤마다 내 마음을 일기책에 담아 보았다. 그런 것도 글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아닌지 생각할 여유도 없다. 속을 털어놓으면 시원해지고 어쩐지 그 글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처럼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는 버릇이 지금은 일기책이 아닌 활자화된 책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염치없는 짓인 줄 알지만 여간해서 고쳐질 것 같지 않다.

입을 꼭 닫으시고 티슈 한 장을 조심스럽게 뜯어내는 아버지 모습을 이번에는 좀더 따뜻하고 섬세하게 묘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된다. 그것은 아마도 글쓰기 버릇 때문이 아니라 내 본성이 거칠고 무디어 그런 것 같다.

 

 

 

안인희

문학박사. 전 이화여대 교수.

저서 『루소의 교육론』, 『루소의 자연교육 사상』(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