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잡상(病床雜想)

                                                                                                    고봉진

 감기가 들어서 근 한 달 동안 앓았다. 오래 앓은 것에 비해 가끔씩 오르는 열로 아주 괴로웠던 시간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자연히 열이 나지 않을 때에는 이런저런 잡념에 잠겨 지낸 경우가 잦았다.

어릴 때는 잔병이 많은 편이었다. 감기도 자주 앓았다. 내가 자란 지방에서는 좀 심한 독감을 고뿔이라고 불렀다. 열도 많이 나고 두통도 심한 병이라 걸리기만 하면 무척 괴로웠다.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 한 번은 며칠을 아주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이웃집 할머니가 식칼과 바가지를 들고 와서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서 고뿔 귀신을 쫓아내는 푸닥거리 비슷한 것을 해준 적이 있다. 내가 약을 먹고도 높은 열이 오래 떨어지지 않자, 그때 20대 초반이었던 젊은 어머니가 당황해서 부탁을 했던 일인지, 그 할머니가 평소의 동네 말썽꾸러기가 고뿔로 몹시 고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자진해 와서 베풀어 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 할머니 집 마당에 가서 놀 때마다 “이놈! 땅 꺼지겠다” 하고 야단을 쳐서, 집에 돌아와서는 ‘미운 할머니’라며 흉을 보았던 분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 낯선 의식이 무서워 큰 충격을 받았었지만, 그래서 그랬던지 바로 그 다음 날 고뿔이 떨어졌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그 신통한 일종의 살풀이 처방을 뭐라고 했던지, 아무리 생각해 내려고 해도 그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는 어느 집이나 절구통이니 맷돌, 다듬잇돌 같은 석기 시대 유물들을 당연하게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별 뚜렷한 원인도 없이 느닷없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를 전염성 바이러스 탓인 줄 몰랐을 때였으니, 노인들을 비롯해 일부 사람들이 감기 귀신 때문이라고 믿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는 이야기다. 그들은 감기 귀신뿐만이 아니라 도처에 여러 가지 귀신이나 정령들이 할거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대개 집집마다 각종 부적이 붙어 있었고, 골목을 지나다 보면 짚에 쌓인 음식이 담 밑에 버려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미신이 활개를 치던 때다. 특히 그때 아이들은 애니미즘(animism) 적인 세계에 살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집문 밖은 잡귀들이 노니는 세상이었다.

대략 같은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색종이 접기를 하고 놀다가 바지와 저고리를 접어서 도화지에 이어 붙이고 얼굴을 그려 넣고 보니, 스스로도 아주 잘 만든 색종이 인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대청 한쪽 벽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장난으로 “색종이 어른!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색종이 사람이 갑자기 무서워져 밤에는 마루에 나갈 수가 없었다. 낮 동안 떼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감히 실행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랄 때는 아버지의 전근이 잦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행히 그 집에서 이사를 떠나게 되어 그 괜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이들도 달라졌겠지만 사람들의 속신(俗信)도 크게 바뀌었다. 유일신을 믿는 교도도 많이 불어났다. 그러나 절이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변덕스러운 자기 운명의 지배자를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 달래고 회유하기 위해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그렇다면 사물을 바라보는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아직도 그리 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 “사람이 그래서는 못쓴다”거나 “사람은 똑똑하다” 하는 등 ‘사람’이라는 통칭으로 시작되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사람’에 대한 일반론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즉 그때의 ‘사람’은 주연(周延) 개념이 아니라 일부 사람이나 특수한 사람 또는 ‘너’를 지칭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보편적으로 고찰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고, 그때그때 단발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의 여인이 시어머니로서의 경우와 친정 어머니로서의 경우를 겸할 때도 동일한 사안(事案)에 대한 가치 판단이 며느리와 딸 어느 쪽에서 일어났느냐에 따라서 매우 다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거니와 탓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적합한 진리나 법칙, 기본 개념이나 윤리가 있다고 하는 생각에 우리가 익숙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 발전하지 못하고 사회 윤리가 바로 잡히지 않는 토양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감기 자체를 치유할 특효약이 없는 세상을 살면서 그 감기 탓으로 여러 가지 반성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