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월

                                                                                       이옥란

 유년의 추억으로 제비 부부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봄이 되면 찾아와서 처마 밑에다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던 제비 부부는 하루 해가 다하도록 먹이를 물어다가 새끼들 입에 넣어 주곤 하였다. 먹이를 받아먹은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때가 되면 아늑한 둥지를 뒤로 하고 비바람 몰아치는 창공을 향해서 뿔뿔이 떠나 버렸다.

새끼들이 떠난 뒤 빈 둥지를 지키는 제비 부부의 애잔한 모습이 지금도 잔상으로 남아서 가끔씩 나를 쓸쓸하게 한다. 모두들 제 일에 열중하느라고 마음은 다 있어도 몸이 함께 하지 못해서 제비 부부의 삶은 외로웠으리라.

둘째가 석사 논문집을 가지고 왔다. 제 권속들과 함께 집에 왔다. 그는 스무 살 앳된 나이에 바다의 지킴이가 되겠노라고 사관학교에 진학하였다.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군인의 길은 아무나 선뜻 선호하는 길이 아닐 터인데 그 길을 선택하였다. 다른 직종에 비하여 힘들고 위험도 따르며 보수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항상 활의 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때 왜 그 길을 선택하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마음의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서 아이의 무운(武運)을 빌고 있다. 옛 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과 같이 내가 그의 인생을 대신할 수 없다면 그가 선택한 길을 주저없이 갈 수 있도록 뒤에서 조용히 그림자 노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섯 식구가 오손도손 서로 의지하며 살았었는데 제 길을 가겠노라고 여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던 날은 몹시도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일월 어느 날이었다. 가입교를 하기 위하여 떠나던 날, 아이 아버지가 동행을 하겠다고 하여서 나도 따라 나서고 싶었지만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은 헤어질 때의 감정을 잠재울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 동안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느라고 자식들과 다정하게 손 한 번 잡아볼 겨를이 없이 살아온 세월이 후회스러워서 오랜만에 부자(父子)가 오붓한 밤을 맞고 보니 만감이 교차하여서 잠을 이룰 수가 없더라고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부자가 손을 잡고 교문 앞으로 갔더니, 먼저 나와서 기다리던 교관이 이제부터는 나라의 아들이니 잘 맡아서 교육시키겠노라고 하고, 아이들을 버스에 태운 뒤 바람처럼 떠나 버리더라고 하였다. 황망중에 아이를 떠나 보낸 아버지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나절을 아무도 없는 교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아이가 떠난 길을 망연히 바라보다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세수를 하려고 안경을 벗어 놓은 것도 잊고 그냥 돌아왔다.

드는 자리는 표가 나지 않아도 나간 자리는 커 보인다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빈자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일기예보를 듣곤 하였다. 칼바람 같은 바닷바람을 받으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따뜻한 방에서 발을 펴고 자는 것조차 미안해서 보일러의 온도를 낮추고 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그 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을 한다.

진해 벚꽃이 절정을 이룰 때 우리는 입학식에 초청되었다. 입학식 날 만나 본 아이는 집을 떠날 때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고, 양 볼은 동상을 입어서 불에 데인 흉터처럼 번들거리고, 손등은 터서 피가 삐죽삐죽한 것이 마치 늙은 소나무 등걸 같았지만, 눈동자만은 초롱초롱하였다. 사관학교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던 날이었다. 멋진 해군 제복을 입고 나타날 줄 알았던 아이가 해병대 제복을 입고 나타나서 “부모님, 둘째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습니다” 하며 거수경례를 하였다.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니 서운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대견스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세월은 내게 아픔도 주고 기쁨도 주면서 흘러가는 요술쟁이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옥란

<수필문학>으로 등단(90년).

한국문인협회, 송현수필 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