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 약수(上善若水)

 

                                                                                          오덕렬

 

인사는 만사라 했다. 그만큼 인사 문제가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인사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인가. 이번 9월 1일자 나의 인사를 두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발표 전에 흔히 이야기되는 항간의 내용과 거리가 멀었다는 반응들이다. 의당 교장으로 나가려니 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현직 고등학교 교감에서 전직하여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2년 반을 근무했다. 그러는 사이에 교장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일선 교감으로 나가는 것이 얼른 납득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밖에서 보면 정년 단축으로 많은 자리가 빈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앉아 마땅한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다. 장학관에서만 교장으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이고, 장학관 자리는 나지 않은 상태여서 승진도 할 수 없으니 나의 인사는 꽉 막히고 말았다.

나는 풀리지 않는 인사의 물꼬를 스스로 터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다시 현장에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나의 이런 결정에 대해서 옆에서는 ‘명분’이냐 ‘실리’냐의 문제라며 깊이 생각해 보자고 했다. 장학사로 그대로 있는 것이 명분을 살리는 것으로 생각하며 한 말이다. 학교에 가면 주위에서 “장학관도 교장도 못하고, 왜 교감으로 다시 오느냐? 무슨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냐?” 할 것도 같아 여간 망설여지기도 했다. 실제로 어떤 분은 한 일 년 더 있다가 교장으로 바로 나오지 그랬느냐고 말도 한다. 또 다른 이는 이왕 교육청에 들어갔으니 장학관도 하고, 과장도 한 뒤에 크고 좋은 학교로 발령을 받으라고 주문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는 과정마다 그냥 지나가는 실체 없는 ‘자리’, 그것은 뜬구름 같은 것인데 그 자리 때문에 말도 많은 것이다.

인사 짜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을 때였다. 출장을 다녀오니 인사안(人事案)에서 내 이름은 빠졌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스스로 초라해지는 느낌은 어찌할 수 없었다. 태연한 척 집에 왔으나 그 날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 새벽이 되니 주르르 설사가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인체에 심한 불균형을 가져온 모양이었다.

이럴 때에 속사정을 식구들에게 알리는 일도 큰 일이었다. 아내에게 무어라 말하며, 더구나 세상 일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회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주말에 큰녀석이 대전의 연구소에서 왔다. 별 이야기 없이 아내와 셋이서 TV 앞에 있을 때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장학관을 하고 이삼 년 뒤에 교장을 나가는 것이 낫겠는가, 아니면 교감을 하다가 바로 교장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는가?”

이렇게 말은 했지만 장학관 운운한 앞부분은 너스레일 뿐이다. 이미 학교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의견을 몰아주기를 바라는 속마음을 알아줄까?

“얼른 교장 나가는 것이 좋겠제…….”

나는 슬그머니 운을 떼었다. 아내는 그게 좋겠다고 했다. 겨우 의견을 모은 셈이다. 식구들과 합의를 도출해 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적은 없었다. 아내와 자식이 어려운 상대임을 실감하는 순간이 되었다.

어렵기는 또 고향 마을 어르신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마을 회당에서 만나면 “어이, 덕렬이 왔는가? 자네, 대통령 나오소” 하며 어떤 큰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어르신들이 아니던가. 그런 분들께서 어디로 옮겼는가 하고 물으시면 무어라 답할 것인가. 자주 고향을 찾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냥 하시는 말씀일 것이지만…….

발표 전날 저녁에 드디어 ‘중등교육 공무원 인사안’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형님이 한번 보십시오.”

옆에서 인사안을 내밀며 말을 건넨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 상황을 확인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꼭 뭐라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왔다.

“내 이름은 잘 났소…….”

한참만에 말을 받았다.

벌써 사무실에는 인사안이 돌고 있었다. 을지훈련 중이라 많은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날이 밝으면 교육부에 인사 발령장을 가지러 떠나야 했다. 출발하기 전에 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나는 대뜸 본론을 말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지금 인사 발령장을 가지러 교육부 출장가는데…….

“나, 전남고로 발령났네.”

겨우 입을 열었다.

아내는 웃으며 말이 없었다. 나도 마땅한 할 말이 없어 수화기를 놓았다.

“너무나 정확합니다.”

통화가 싱겁게 끝나자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다. 이미 보름 전에 결정된 인사 내용을 입다물고 있다가 이제야 집에 말하는 것에 동감을 표하는 반응인 것이다.

마음이 심난할 때는 사무실에 있는 것보다 훌쩍 어디로 떠나는 게 더 낫지 않던가. 차는 달려도 뇌리에 감도는 한 마디가 자꾸 마음을 괴롭혔다.

“축하해야 한다고 해야 할지, 어떨지…….”

발령 사실이 알려지자 인사차 하는 말의 서두였다. 축하받을 만한 인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인사에 관한 한 “내가 해서 안 되는 일 없고, 남이 해서 되는 일 없다”는 말을 생각하게 했다. 그 동안 소홀했던 일이 없었나, 말을 앞세우며 남에게 잘못하지나 않았나, 생각은 편협하지나 않았나. 나를 알몸으로 되돌아보게 하였다.

교육청에 있는 동안 몇 차례 인사 발령을 겪었다.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나에게는 있다. 인사 결과에 불평하는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남이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가만히 있으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가 이루어질 텐데…….

그렇다면 이번 인사에 나는 어떠했는가? 한 발짝 물러나서 생각을 바꾸면 마음이 편안하다가 한순간 마음이 딴 곳에 머물면 괴로웠던 것이다.

노자 도덕경에 상선 약수(上善若水)란 말이 있다. 알다시피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인사는 물 흐르듯이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늘 말하던 내가 아니던가.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사…….

나는 가만히 뇌어본다. ‘상선 약수’라고.

 

오덕렬

<한국수필>로 등단. 현재 광주 운남중학교 교장.

수필집 『복만동 이야기』 등.